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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비로소 완성된 호주제 폐지

국회 본회의 호적법 대처법안 통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폐지 위헌결정을 발표한지 2년여 만에 국회 본회의는 4월 27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아래 법률안)’을 가결해 ‘호주’를 정점으로 한 ‘호적’제도가 역사의 무대로 사라지게 됐다. 이로써 2007년 12월 31일까지 유보되었던 미완의 호주제 폐지가 2008년이 되면 사실상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4월 11일 국회 프레스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인터넷 홈페이지>

▲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4월 11일 국회 프레스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인터넷 홈페이지>


호주제와 호적제는 씨줄과 날줄처럼 가부장적인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유엔 자유권위원회와 사회권위원회로부터 수차례 폐지권고를 받아왔던 성 차별과 인권 침해의 대명사였다. 호주제와 호적제는 남성 우선적 호주승계 규정 등으로 가족 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규정해 성 평등에 어긋나며,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전체의 신분사항을 파악하도록 하고 있어 과도한 개인정보가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를 소위 ‘정상가족’으로 규범화시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차별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법률안은 호적법 대체법안으로 발의된 3개 법안(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안,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안, 정부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마련된 법제사법위원회의 대안으로, △신분증명서를 기본증명·가족관계증명·혼인증명 등 목적별로 분리한 점 △원칙적으로 증명서 교부 대상을 본인과 배우자·직계혈족 등으로 명확히 한 점 △신분 변동사항의 신고를 민원인의 편의에 맞게 개선한 점 등은 현행 호적법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부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안은 가부장제에 기초한 가족 중심의 질서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인권에 기초한 국가신분등록제를 설계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닌다. 이와관련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4월 27일 성명을 통해 법률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 김원정 정책연구원은 “법률 명칭부터 신분증명제도 전반을 ‘가족관계의 등록’이라는 이름 하에 설계했다는 점은 국민의 신분관계를 호주-가문을 중심으로 관리하였던 호적제도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에 상정된 3개 대체법안은 모두 개인별 1인1적을 신분증명제도의 편제원칙으로 삼았고, 이번 법률안 역시 ‘국민 개개인별로 국적 및 가족관계사항이 기록·공시’되는 개인별 신분증명제도이다. 그러나 이번 법률안은 개인별 신분증명제도라는 기본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법률 명칭부터 신분등록부 명칭까지 ‘가족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호적법의 아류에 머무르고 말았다.

또한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본적을 그대로 계승한‘등록기준지’를 만들어 호주제와 본적제의 폐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 △각종 증명서에 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원정 정책연구원은 “현행 호적법 상 본적은 실제 개인의 거주지나 가구 구성과 일치하지 않는 무의미한 기준자로, 호주제와 함께 혈연·지연을 따지는 한국 사회의 낡은 관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하며 “신분등록·관리·증명이 개인별로 이루어지는 이번 법률안에서 본적은 더더욱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제도”라고 꼬집었다. 그 이외도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이 강력히 주장했던 ‘현재의 신분관계 증명서과 신분 변동사항 증명서의 분리’는 끝내 포함되지 않아 민감한 개인 신분 변동사항이 굳이 증명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공개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이후 미흡한 법률을 개선해 나가고, 대법원 규칙에 대한 모니터링과 의견 개진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신분증명의 목적으로 수집·사용하지 않도록 정보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입학·취직 시 가족관계를 통해 개인을 판단하는 사회적인 관행을 바꿔내는 운동도 모색하고 있다.

한편,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6월 4일 워크숍을 통해 법안 및 연대 활동을 평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