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의 한계와 가능성
미국의 부시 정부는 그동안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하면서 지속적으로 북미 관계를 악화시켜왔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는 정책적 기조라는 점에서 오히려 변화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언급하면서 조금씩 드러났다. 이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불법자금 문제’로 알려진, 사실상 미국의 대북 금융봉쇄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6자회담에서 2.13합의가 나오면서 미국 대북정책의 기조는 가시적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BDA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비로소 남북정상회담도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미국에 의해 규정된 국제관계 패러다임에 상당 부분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는 주요하게 북미관계를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13 합의 이후 급진전되고 있는 북미관계 속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남북의 주체들에게 새로운 한반도 상황에 걸맞는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이 요구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 당국은 정상회담 의제를 △한반도의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 등 3가지로 결정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지난 김대중 정부 당시의 1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다음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남북문제 해결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정기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회담이 정치적인 이벤트로 전락하거나 각 정치 정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와 통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속에서 장기적으로 남북 통합과 공존을 전제로 민중들의 참여를 통해 꾸준히 의제를 형성해나가고 50년 이상 분단과 냉전적 대결로 인해 발생한 인권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권의제들이 적극적으로 다루어지고 논의되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되어야 할 인권의제들
첫째, 한반도에서의 군축을 목표로 남측이 주도적으로 군축을 실천해야 한다.
현재 남측 정부는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첨단공격무기의 증강을 계획하는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하는 등 오히려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적 대결의 상황에서 한 쪽의 군비증강은 필연적으로 다른 쪽의 군비증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한-미-일 동맹의 강화에 따른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은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초래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경쟁에 의한 견제를 넘어 스스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욕망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어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 역시 군비경쟁을 포기할 리가 없다. 악순환적인 군비경쟁은 각 사회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강화한다. 최근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민족주의적 대결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국가’와 ‘안보’는 더욱 중요해지고 그 속에서 군사비밀주의와 안보독점주의는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예비군 폐지 등과 같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인권의 목소리는 거부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군비경쟁은 북의 경제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고 그 결과는 북 인민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군비 경쟁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군축에 대한 서로간의 합의가 중요하지만, 합의를 위한 전제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군축에 대한 한 쪽의 용기 있는 결정도 중요하다. 화해, 협력, 평화와 군사적 대결은 함께 할 수 없다. 이미 과도하게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남측 정부는 화해, 협력과 평화를 구호로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군축이라는 결단을 주도적으로 내려 주변국들에게 평화에 대한 신뢰를 먼저 보여야 한다.
둘째, 남북 경협 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남북 경협을 거론한 바 있다. 남북 경협은 일부에서는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서 긍정적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북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북 경제의 대남 종속 심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남북 경협을 주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제기하고 있는 ‘평화경제론’은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를 통한 무역과 통상의 증대가 국제관계의 전환을 가져오며 자유시장과 번영의 전망 위에서 평화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자본주의평화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 북의 경제구조는, 내부적인 자본 축적이 거의 고갈된 상황에서 경제구조의 초기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한 외부 자본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또한 미국에 의한 대북 경제봉쇄가 아직은 지속되고 있고 그나마 남측과 중국의 자본이 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남북 경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자본이 스스로의 구조를 형성하고 난 후엔 시장 이외에 누구도 자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남북 경협에 대한 우려의 눈길을 거둘 수 없다.
개성공단에는 이미 1만5천여명의 북측 노동자들이 남측 기업에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고, 개성공단 3단계 개발계획이 마무리되는 2012년경에는 35만여명의 북측 노동자가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거대한 노동자 도시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노동환경, 산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여전히 정부 발표에 의존하고 있을 뿐, 민간에 의한 조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동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물론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들이 북 사회의 다른 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다는 점은 이해할만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북 사회 내부에서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계층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우려를 낳기도 한다. 게다가 남북 경협이 북의 개혁 개방의 포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면, 이미 중국 등에서 보인 바와 같이 극단적인 빈부격차,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부정부패의 심화 등 일반적으로 개혁 개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도 높다.
경협의 확대에 따른 북의 대남 경제종속도 우려된다. 현재 남북경협은 북 대외무역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다고 한다. 남측의 대북지원 역시 이미 북의 경제구조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경제협력강화약정(CEPA)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중국 대륙과 홍콩 간의 사례를 모델로 남북 경제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강화약정을 제안했다. 삼성연은 약정 체결의 목적으로 북 경제구조를 재편하여 수출지향형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라는 주장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남북 경협으로인한 경제적 과실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경협이 야기할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셋째, 소위 ‘납북자’ 문제는 냉전 상황 하에서 남북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소위 ‘납북자’ 문제, 즉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문제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납치냐, 아니냐’에 대해 남과 북의 주장이 다르고 남쪽의 ‘납북자’와 비슷한 맥락에서 북쪽 역시 ‘납남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납치’ 여부에 관한 진실은 남과 북 공동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규명해야 할 문제이다. 오히려 남과 북의 냉전적 분단 상황 하에서 국가에 의한 구조적 폭력으로 인해 서로 ‘납치’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남쪽 사회의 경우 반공적인 군사 독재정권 시기, ‘월북’ 혹은 ‘납북’자 가족 성원을 두고 남쪽 사회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월북’이든 ‘납북’이든 그 자체의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월북/납북 여부를 떠나 반공주의적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납치’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맥락이 있었다. 심지어 ‘납북’이라고 주장한 경우에도 남은 가족들이 국가 폭력에 의해 겪은 정보기관에 의한 일상적인 감시와 잦은 경찰 출두 명령 등과 같은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월북’이든 ‘납북’이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문제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십년 동안 국가 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배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족 및 지인들이 원할 경우 생사 확인 등과 같은 ‘소식’을 상호간에 확인해주도록 해야 한다. 한편 현재까지 남과 북에서 가족들이 각각 생존해있는 경우에는 가족 결합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경우 각 사회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송환을 추진할 경우 새로운 이산가족을 낳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적 조건들을 인정하는 속에서 ‘가족 결합’의 문제는 이산가족에 준해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국가보안법과 같은 냉전적 법제를 공존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법제로 개편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쪽 사회에서 사상·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왔다. 국가보안법이 공존과 평화·통일의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 이상 존재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질곡하고 인권침해를 낳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기회는 어떠한 정권이나 정치세력의 기회가 아니라 남북 민중들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민중적인 관점에서 민중들의 참여를 통해 인권의제를 설정하고 논의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 과정은 그 자체로 분단 모순으로 인한 남북 각 사회의 인권침해를 개선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