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표현이 있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르니까 실험을 해야 하고 모색해야 한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열기와 나이가 있음직한 강연자의 혈기 넘치는 목소리. 오가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새로움을 갈구하는 강연자와 참여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사회운동포럼에서 마련한 피터 워터만의 강연이었다. 강연장의 열기만큼 노동운동의 변화에 대한 갈구가 진보진영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 정의의 무기로 부활하라’는 제목으로 마련된 그의 강의는 노동운동과 지구적 정의운동과의 관계, 노동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의 관계, 21세기 노동해방과 관련한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제언 등으로 이루어졌다.
인간해방운동에서 노동운동의 역할을 다시금 일깨우다
그는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이 인간해방운동에서 초기 자본주의 시절의 민주주의 운동, 민족해방운동 등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해방운동에서의 노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전운동, 반WTO 운동 등 반자본주의 운동은 노동운동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있다”며 우려 섞인 비판을 한다. 더구나 그러한 운동을 노동조합이 이끌지도 않으며 이끌려고 하지도 않기에 더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조운동은 제도적 안정화를 이루었지만 임금협상투쟁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투쟁에 한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파괴되고 있는 생태 문제, 자본이 전쟁으로 위기를 관리하려는 경향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제기되는 평화 문제,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기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여성과 성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내고 실천하고 연대하면서 상호교류하지 않는다면 인간해방운동에서의 자기 역할을 찾아 갈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이 자본의 개발 사업으로 얻는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이라는 자기 이익 때문에 생태문제에 침묵한다면 노동운동은 이익집단의 운동일 뿐, 사회변화를 이끄는 운동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수용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해방운동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다른 운동의 횡단대화,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노조 안에 갇힌 노동운동을 넘어서야
지구 남반구에서 먼저 시작되어 전세계로 펼쳐지고 있는 반세계화운동, 다시 말해 전세계 인민의 이익을 지향하는 세계화운동을 ‘지구적 정의 운동’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구적 정의운동’은 국제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노조와 같은 공식기구의 연대가 아닌 작업장, 풀뿌리 공동체의 직접 대면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연대운동을 지향한다. 탈중앙화하고 수평적이고 민주적이고 유연한 세계적 네트워크 모델을 지향한다.
그의 ‘지구적 정의 운동’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다양한 조류 중 두 가지를 비판한다. 하나는 국가와 협력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노조가 사회운동을 이끌어 가는 방식의 운동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번 강연에서도 드러났다.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의 연대를 이야기하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확보가 주요한 요구였던 메이데이 집회는 노동조합이 주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에 기반한 노조가 결합하긴 했지만 사실상 노조로 조직화되지 않은 비정규, 일용직 이주노동자들이 공세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강연회에서 한 참여자가 한국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조운동을 외면하고 있다며 의견을 묻자, 그는 “주변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되는 것이 맞는가”라며 노조로 조직하여 노동문제를 푸는 방식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그가 보기에 “노동계급의 약한 부위가 힘 있고 경험 있는 기존의 노동자들과 같은 조직으로 합해지면 보통은 힘이 약한 노동자들의 의견과 요구는 묵살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 여성노동자조직처럼 자치적인 조직체를 만들어 자기들의 생각을 발전시켜 대화한다면 오히려 상호 협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 비공식노동자 등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있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운동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때 노조운동은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이 있는 노동자집단의 영향력으로 새로운 층위의 운동이 성장을 가로막힐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노동운동이 다른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현실을 돌파하려면 노조가 변화하여 사회운동을 펼치는 것만이 아니라 노조 밖의 조직운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펼치며 주요한 사회의제, 사회쟁점으로 만들어가고 여기로 많은 대중, 노동자들의 실천을 모아 노동운동의 내용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상상력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노동운동의 변화를 위해서는 ‘노조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해방은 단순히 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대안들
세계사회포럼에 노동운동이 참여하며 노동해방에 대한 지구적인 다양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국제적 차원에서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대화는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각종 토론과 생각들을 교환하는 것을 통해 구체적인 국제 노동헌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새로운 강령이란 몇몇 혁명적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집단지성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 가부장제, 위계주의, 소비주의,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등의 문제들이 다양한 노동자들의 소통과 토론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해방이 단순히 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진보진영의 운동이 해방을 준비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지구적 정의 운동’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소통과정에서 투쟁만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선 실천, 해방의 내용과 대안사회의 상을 마련하는 실천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운동포럼의 문제의식인 ‘소통을 통한 연대와 변혁의 밑그림 그리기’와 닮아 있었다.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
한국의 경제주의적 노동운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며 비정규노동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었다.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비정규직을 결합해서 표현한 ‘프리캐리아트’는 신자유주의 시대 새로운 현상”으로 최하층 노동자들만이 아닌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직종도 포함하기에 대응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더 착취당하고 더 고통 받기 때문에 더 혁명적이라고 말 할 수도 없다”며 변혁적 역량, 해방적 역량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분에 한정하여 사고하기보다 개방적이고 호혜적인 연대의식 속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 사이버공간 등이 국제적 연대의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기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초기 노동운동이 임노동 자체에 대해 도전했던 것처럼 해방운동이 남미에서의 연대 경제와 같은 새로운 경제, 새로운 지역사회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은 혁명이 수평선 위가 아닌 현실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의 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방식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그의 제언은 변화된 현실에 착목하여 운동의 내용을 만들고 변혁적 역량을 키워 운동을 모색해야 길은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보편적인 해방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동자운동을 그려보며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로 흔들리는 미국경제와 불안정노동을 끊임없이 양산해야 유지되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보편적인 해방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이라는 과제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해지면 그 결과로 자본가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그 위기로 더욱 고통 받게 된다. 그 위기를 민중의 세력화로 대안 사회의 맹아를 만들며 대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운동진영의 현재의 실천으로 준비될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정형화된 물의 모양만 보인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은 언제나 새로우며 강물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물길도 어제와 다른 것처럼, 한국 노동운동은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물꼬가 가리키는 방향도 현재진행형이다. 몇 세기를 지난 세계 노동운동의 현재와 불과 1세기도 안 된 한국 노동운동의 현재를 보며 우리는 한숨과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내용, 과제와 주체는 변화하는 것이기에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물꼬를 제대로 트기 위해 모색하는 것, 실천하고 연대하는 것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그 이후’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