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학교에도 있네!
만일 학교 밖의 작은 집회(웬만한 정보로는 파악하기도 어려운 소규모 집회)에 어떤 중고등학생이 참가해서 ‘국가주도의 획일적 학교교육’이 문제라고 주장이라도 편다면, 그 학생은 교칙에 따라 징계의 위협에 시달릴 것을 감수해야 한다. 학생신분에 맞지 않는 집회에 참석한 것, 학교교육을 비하 발언하며 학교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것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 혹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의 모임에라도 참여하고 있다면 ‘허가 없이 단체나 서클을 조직했거나 이에 가입한 학생’, ‘학교 질서를 문란 시킬 목적으로 학생들의 모임을 꾀한 학생’으로 징계 항목은 늘어간다. 그것뿐인가, 집회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참가 했다면 ‘선전선동’의 징계까지. 뭔들 불가능할까? 두발자유에 대한 설문조사도 선전선동이고, 교내 질서 문란을 꾀한 행동이요, 한마디 말대구라도 하면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대한 불응이고, 교권모독이다. 학교밖에 소문이라도 나면 곧 학교 명예실추가 된다. 전단지 배포, 버튼 착용, 시험거부… 웬만한 것은 모두 가능하다.
교권모독, 학교 명예 실추, 선전선동 등과 같은 항목은 퇴학 이전 단계의 징계처분인 ‘특별교육이수’에 해당하는 중징계이다. 퇴학을 시킬 수 없는 의무교육기간인 중학교에서는 특별교육이수가 가장 무거운 징계가 된다. 설문조사 한 번 하고 중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학교 징계는 인권침해이다. 실제로 2007년, 외부 단체가 개최하는 학생인권토론회에 관한 전단지를 학교에 배포한 것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고등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고, 인권위는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헌법에 명시된 인권보장을 근거로 ‘진정인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중도덕·사회윤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학교가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 절차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학교 징계의 기준과 내용이 학생의 권리를 보호․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학생 인권침해 도구로 활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멋대로 해석’의 여지가 많은 학교의 모호한 징계규정은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에서 밝히고 있듯 학생 징계도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과 방법이어야만 한다. 학생 권리에 대한 포괄적 보장을 전제로, 징계는 구체적인 최소한의 금지규정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하게, 적법하게, 그렇게 어렵나요?
학교 징계에서 기준과 내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발생이후 벌어지는 조사 및 징계절차도 인권침해의 지뢰밭이기 일쑤이다. 사건의 발생과 인지는 조사의 시작일 뿐인데, 시작부터 공개되는 개인정보와 징계의 협박은 징계라는 구체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상처와 낙인으로 남게 된다. 사건의 공개는 지극히 제한적이어야 하고, 이후 징계 기록의 보관도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징계 과정에 있어서 학생은 징계가 결정되지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 모욕적인 언행과 협박 금지는 물론이고 개인 정보의 비밀유지도 지켜져야 한다. ‘사건 발생과 동시에 범죄자 취급’의 잘못된 인식, 교사․학생에 의한 사건 중계방송과 같은 잘못된 문화가 근절되도록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교당국은 징계의 사유가 발생한 상황에서 학생의 나이 성별, 성정체성 등과 건강 및 심리적 상태 등을 충분히 고려해 조사를 시작해야 하고, 일과 중의 사건 조사는 객관적인 긴급성이 인정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사건 조사와 징계 절차에 대한 규정이 교칙으로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사와 징계 대상이 됨과 동시에 권리 박탈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문화된 규정뿐 아니라 교사 및 학교 당국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5월, 고등학생이 집회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로 찾아가 수업중인 학생을 불러내 조사를 한 경찰에 대해 인권위가 집회 자유와 학습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더불어 인권위는 해당 교육청에 ‘학내에서 학생의 학습권 보장 및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지침 및 매뉴얼 마련 등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담당 지도교사에 대한 교육’을 권고했다. 애초 형사조사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사건임에도, 경찰 방문에 놀란 학교당국이 학생을 내어 주며 인권침해를 발 벗고 나선 부끄러운 사례이다. 학교 내 징계 조사 사건뿐 아니라 형사조사 대상의 사건일지라도 학생의 학습권을 중단할 긴급성에 대한 판단과 당사자의 신변공개에 대한 주의는 학교 당국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부족한 재심 청구권! 돌리도~
초중등교육법에서는 ‘학생에 대한 징계에서 학생 또는 학부모에게 의견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적정한 절차를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의 변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경우 관련 자료의 제공, 보호자나 보조인의 동석, 학교 안팎의 조사활동도 보장되어야 한다. 마땅히 학생의 변론을 ‘예의 없고, 뻔뻔한 행동’ 등으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당사자의 변론을 보장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 될 것이다.
자기변호의 기회 뿐 아니라 재심의 권리도 학생과 보호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상 퇴학조치에 대해서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퇴학이외의 징계에 대해서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많은 단위 학교의 교칙에서 퇴학이외의 징계에도 재심청구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그 청구권한을 학교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징계를 받는 학생도, 보호자인 학부모도 아닌 학교장에게 주어진다는 것. 그나마 지난해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의 재심청구 규정에 따라 교칙에 학생과 학부모의 재심청구 기회를 부여한 학교가 더러 있지만, 여전히 학교의 교칙에서 학생의 재심청구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재심청구는 학교장의 시혜가 아니라 학생의 권리이다. 징계의 정도에 관계없이 재심의 청구는 영향을 받는 당사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종종 ‘학교의 징계가 사회의 법체계, 처벌과정과 다름’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은 적법절차보다는 ‘반성과 용서’를 말한다. 하지만 공정함도, 정당성도 갖지 못하는 징계에 어떤 반성과 용서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아홉 번째 소절 : <사건 조사와 징계>
○ 학교의 징계 기준과 내용은 국제인권기준과 헌법, 국내 법률에 부합해야 하며, 학생이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 학교의 조사․징계는 공정한 기구를 거쳐 이뤄져야 하며, 적법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 조사 및 징계과정에서 학생의 권리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정신적 육체적 학생 상태에 대한 학교당국의 사려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 징계규정에 대한 정보는 모든 학생에게 미리 알려져야 하고, 징계중인 사건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학생의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
○ 징계사건과 관련해 권리의 회복, 치유, 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학교의 조사․징계는 공정한 기구를 거쳐 이뤄져야 하며, 적법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 조사 및 징계과정에서 학생의 권리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정신적 육체적 학생 상태에 대한 학교당국의 사려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 징계규정에 대한 정보는 모든 학생에게 미리 알려져야 하고, 징계중인 사건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학생의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
○ 징계사건과 관련해 권리의 회복, 치유, 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덧붙임
*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