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주민들이 진행해오던 항소심(절대보전지역 해제처분 효력정지 및 무효 확인소송)에서마저 법원은 국방부의 손을 들어주었고, 국회진상조사단이 공사 중단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은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하나둘씩 반대의견을 밝히던 5월 어느 날, 강정마을을 걱정하는 동네 사람들 몇 명이 마포 민중의집에 모여서 의논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예전에 반전운동을 함께했던 사람들, 지역에서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사는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강정마을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몰라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당장 강정마을에서는 활동가들이 포크레인 앞에 드러눕고 업무방해로 연행되고 단식하고 농성하고 해상시위를 하는 등 상황은 긴박했지만 서울에 있는 우리들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각자의 고민들을 나누며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제주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김포공항에 가서 강정마을의 상황을 알리자는 아이디어를 모아서 6월초 연휴기간에 김포공항에서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모든 군사기지문제가 그러하듯,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절차상의 문제를 비롯해서 생존권문제, 환경문제, 안보문제, 군사주의문제 등 제주 해군기지건설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해야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레바논에서 열리는 집속탄 금지 협약 2차 당사국회의는 고민 끝에 결국 참석하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정작 제주도 방문할 날짜를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분쟁, 현장의 국제회의는 활동에 도움이 되는 좋은 자리이자 연대의 기회라는 생각에 어렵게 방법을 찾아내면서도, 제주도는 바빠서 못 간다고 핑계 대는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했다. 그러다가 공사강행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다가 연행된 최성희 선생님이 구속되고, 송강호 선생님이 해군들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서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부끄럽게도 활동을 통해 만났던 분들의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강정 마을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다
같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제주도는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비용, 시간, 일정도 그렇고 함께 갈 사람들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우리가 가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태풍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비행기를 못 탈 뻔 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전쟁없는세상 회원 6명이 모여서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갔다. 며칠 전만 해도 공사를 막느라 하루하루가 전쟁 같던 마을 분들과 활동가들도 거센 파도와 바람 덕분에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다. 공사를 하려고 쳐놓은 오탁수 방지막이 파도 때문에 대부분 끊어졌고, 공사장 주변의 펜스와 슬레이트도 바람에 망가진 부분이 많았다. 마을 분들과 함께 의례회관에 모여앉아 강정천에서 잡은 은어튀김과 막걸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파도를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어렵게 찾아간 만큼 우리를 맞이하는 거대하고 멋진 파도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암바위 구럼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마을에는 전국각지에서 보내온 응원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주민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훨씬 많았지만, 그 중에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고, 종종 찬성주민들의 현수막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직접 달았던 현수막 중 병역거부자들이 보내는 응원현수막은 바로 다음날 훼손되기도 했다. 강정 앞바다는 제주 올레길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올레 7코스가 지나는 길인데, 해군에서는 금지팻말을 달아놓고 올레꾼들더러 우회하라고 하고, 마을사람들이 안내표시를 해놓으면 지우고, 다시 마을사람들은 안내표시를 해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군이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안가에 만들어놓은 농성천막 앞을 지나가는 올레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분들한테 물 한잔 권하며 지금 이곳이 해군기지 건설로 없어진다는 것을 알려드리면 다들 몹시 놀라셨다. 그 아름다움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 거다.
각자의 자리에서 강정마을을 지키자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종교인들과 문화예술인들, 평화활동가들이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고, 강정마을을 방문했다가 좋아서 그냥 눌러앉은 사람들도 꽤 있다. 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소식들을 개개인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 알리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움직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소규모 공연, 전시, 캠페인이 펼쳐지는 중이다. 7월 2일 해군기지건설 백지화 촉구 전국시민행동의 날에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제주도에서 평화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제주도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서울 성미산마을에서 강정마을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7월 7,8,9(목-토)일에는 홍대에서 인디밴드들이 참여하는 <나의 강정을 지켜줘> 콘서트가 열린다.(http://www.boosmusic.co.kr) 수익금 전액은 강정마을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방문을 한만큼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마을회장님은 그저 와줘서 너무 힘이 된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다른 것보다 그냥 여기 이곳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강정마을 중덕해안가의 아름다움에 반한 채 돌아오는 길에는 저절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6월 중 김포공항에서 몇 차례 캠페인을 하면서 놀랐던 것은 제주로 떠나는 여행객들도 제주 해군기지문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휴가철을 맞아 제주도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강정을 나눠주며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에 가면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답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강정 앞바다에 꼭 가보시라고, 올레길 중에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는 올레7코스를 꼭 걸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소박한 마음들이 응원하는 강정마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안 되는 이유는 많고 많다. 세계7대자연경관에 투표하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시멘트로 덮어서 기지를 만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제주도 남쪽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군기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 필요한 것인지,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주민들 90% 이상이 반대하는데 무시하고 진행해도 되는 것인지. 한번만 생각해봐도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정말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당연한 이유들을 다 떠나서, 내게는 소박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아름다운 구럼비의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운 바다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제주도에 가지 않아도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현수막 보내기, 항의글 올리기, 캠페인 참여 등 강정마을에 응원의 마음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강정마을과 관련한 소식이 올라오는 다음 까페(http://cafe.daum.net/peacekj)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덧붙임
여옥 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