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공동체의 갈등 안에서 공적 폭력은 갈등을 조장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므로 공동체는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나치 홀로코스트 이후, 그 죽음의 체험은 생존자 개인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전달한 무력감과 절망감은 홀로코스트 이후의 사회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공포와 좌절은 선과 악이라는 극단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게 하였고, 그 덫은 공동체의 관계를 옥죄었습니다. 때로 그것은 정의와 복수를 혼동시키고 폭력을 정당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학자들은 생에서 죽음으로, 합리에서 마비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한국사회의 국가폭력이 생존자의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역시 수많은 논의가 되었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계속되는 정치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는 듯 합니다. 진실을 직시하려는 힘 조차 여전히 미약하여 우리의 공동체 역시 이분법, 불신과 무관심이 이야기꺼리입니다. 그 안에서 생존자와 그의 가족들은 원망이 불타고도 남아 시커먼 체념의 잿더미로 식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체는 생존자와 가족들을 보듬지 않고 밀쳐 냅니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공동체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리고 어느 낯선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내면서, 국가폭력의 고통은 개인의 삶 속에서 빈곤과 갈등의 알갱이로 잘게 부서집니다. 그들의 고통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가려지지 못한 채, 그 원인인 국가폭력은 개인의 문제로 탈바꿈합니다.
폭력피해자의 고통이 그의 관계와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가에 대해서는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바가 있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들은(직접 겪지 않았어도) 생존자 부모가 체험했던 공포와 무력감을 전달받고, 타인을 향한 극도의 분노와 불신을 배우게 된다는 결론이었지요. 그 압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개인에게서 가족으로, 후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사회 국가폭력의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집안의 보호자를 몽땅 잃어 어린 아이들만 남겨져 버리기도 하였고요. 그 아이들은 이웃의 멸시와 비난을 견디면서 밥을 구해 먹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 더 어린 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시켰습니다. 어떤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생계가 막막해지기도 하고, 그저 먹고 살기에도 바쁜 나머지 아이들을 방임하고 아이들에게 가정폭력이라는 짐을 덧씌우기도 했습니다. 이웃과 학교에 소문이 돌면 가족들은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만약 당사자가 가족으로 돌아왔다면, 그는 관계 안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가족들은 말이 없어지고 냉랭해집니다. 소통할 수 없음은 이별과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생이별과 고통의 잔해는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때로 가족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당사자 가족들조차 국가폭력이라는 원인을 보지 못하고 ‘우리 집 둘째가 늘 문제다’, ‘엄마 때문이었다’, ‘아버지와는 통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둘째의 이야기를, 엄마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가폭력이 가족 안에서 곪았을 때 겪었던 말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가족들이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돌을 던진 사람은 도망가 버리고 깨어진 유리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칼바람 속에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집의 대문을 두드려 주기를 바랍니다. 그 집안에 불을 피워, 온기가 돌게 하여, 차갑게 얼어붙은 이들의 입술이 열려 소리나게 하고, 서려 있던 눈물이 흐르게.
덧붙임
최현정 님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