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연행된 사람들 697명,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 601명, 구속된 사람들 56명, 재판 건수 200여 건, 부과된 벌금액 3억여원.
제주의 작은 마을 강정에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된 지난 8년의 시간동안 확인되는 또다른 통계수치들이다. 2007년 4월, 국방부는 화순에 이어 위미에서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제주해군기지의 다음 후보지로 강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은밀한 방법을 동원했다. 당시 마을회장은 안건에 대한 공고도 없이 임시총회를 열었고, 1900여 명의 주민 중 고작 87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해군기지 유치의 건을 통과시켰다. 유치신청이 있자마자 정부와 국방부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다음 달인 5월,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후보지로 강정마을을 발표했고, 6월 초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 강정마을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통보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임에도 필수적 검토사항인 입지타당성 조사는 생략되었고, 해당지역의 여론조사는 졸속으로 진행되었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강정마을 주민들은 임시총회를 열어 자신들도 모르게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추진한 당시 마을회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다시 투표를 진행했다. 1000여 명의 투표권 보유자 중 과반이 훨씬 넘는 725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680명의 주민들이 반대표를 던졌고, 단 35명만이 찬성 의사를 보였다.(무효표 9) ‘94%의 반대’. 압도적인 수치로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이같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뜻은 정부와 국방부에 의해서 간단히 부정되었다. 이미 그들의 손에는 주민들에 의해 직위가 박탈된 전임 마을회장이 갖다 준 주민 87명의 서명이 담긴 유치신청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제주도민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제주해군기지를 경제적으로 제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민항의 기능을 추가해 건설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15만톤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입항할 수 있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후 수차례의 검증과정에서 이같은 계획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정부와 국방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를 왜곡하고 감추었다. 그리고 이같은 일방적인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진압과 탄압을 자행했다. 제주해군기지사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201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정부는 12만 8천여 명의 육지경찰을 제주에 파견했고, 이들은 해군의 경비용역 역할을 자처하며 제주해군기지사업의 추진을 가능케 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한 국가권력은 폭력을 필요로 했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그 폭력의 주요대상이 되었다. 지난 12월 10일, 서울지방법원은 2012년 6월 수백 명의 경찰이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2시간이 넘도록 감금한 사건에 대해 경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국가폭력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기지, 제주해군기지의 역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가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 주장한다.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주 남방해역은 한중일의 울타리 없는 앞마당과 같은 지역으로 상시 보호가 필요하며 도서 영유권, EEZ(배타적 경제수역) 등 해양분쟁 발생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어도의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및 중국과 비교해 지리적으로 우위에 있어 해양분쟁시 군사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해군의 이같은 주장은 역설적으로 제주해군기지가 이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우선 해군이 지칭하는 제주 남방해역이라는 곳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일련의 해양수송로를 의미한다. 이 해역은 한국뿐 아니라 인근 모든 나라들의 교역물이 오가는 핵심지역으로 이 지역에 관계된 어떤 나라도 특정 국가의 군함이 이 해양수송로를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제주해군기지가 완성되고 해군의 구상대로 이 지역에 수시로 군함을 파견한다면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함은 물론, 새로운 군사적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이어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어도는 독도와 달리 섬이 아니라 해상암초에 불과하여 누구도 영토임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2001년 한중어업협정 당시 한국과 중국은 이어도를 공동수역으로 설정했고, 2006년에는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의한 바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양국이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주장할 수는 있으나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한중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즉 이어도 문제 역시 외교적 방법을 통해 풀 문제이지 군사력을 동원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군사기지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지어지고 있으며 이후 미국의 주요한 군사적 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12년 9월, 장하나 의원실(당시 민주통합당)이 공개한 문건 <08-301-1 제주해군기지 시설공사시방서-해군본부 발행>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의 수심과 관련해 “CNFK 요구조건 (DL.(-)15.20m)을 만족하는 DL.(-) 17.40m로 계획”이라고 적시되어 있었다. CNFK는 주한미해군사령관을 의미하며 요구 수심 17.4미터는 미 해군의 상용 핵추진항공모함(CVN-65급)의 입항 기준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예산상의 문제와 주변국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향후 10년간 항모 보유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공사시방서에는 항공모함의 접·이안 시뮬레이션까지 실시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미 항모의 입항을 염두에 둔 설계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정황이다. 한 달 뒤인 2012년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은 또 하나의 문건을 공개했다. 해군본부에서 발행한 <06-520 제주해군기지 기본계획 및 조사용역보고서>로 잠수함 계류부두의 수심과 관련해 발주처의 요구에 의해 수심을 12미터로 설계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우리 군이 보유한 잠수함의 경우, 계류부두의 수심이 9미터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더 깊은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되는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12미터의 수심을 확보한 이유를 조사한 결과, 역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SSN-776급)이 필요로 하는 수심이 12미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국이 제주해군기지의 설계와 공사에까지 ‘구체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정치군사적 목적에 기인한 것이다. 미 육군전쟁대학(U.S. Army War College)이 수행한 전략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 해군 장교인 데이비드 서치타(David J. Suchyta)가 2013년 작성한 ‘제주 해군기지: 동북아의 전략적 함의(Jeju Naval Base: Strategic Implications for Northeast Asia)’라는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적시되어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센카쿠 열도에서 일본과 중국의 무력 충돌 발생 시 일본을 지원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 동부 대륙붕의 약 70%는 서해와 동중국해에 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하는 미국 함정과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은 남쪽으로 향하는 중국의 북해함대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동해함대의 측면을 공격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서치타는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에게 커다란 유용성을 제공할 것”이고, 반대로 “제주기지 건설로 가장 위협을 받을 나라는 중국”이라고 밝혔다. 서치타의 분석은 미사일 방어의 문제에까지 이어진다. “제주에 배치된 군사력은 남한의 지역적 탄도미사일방어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해상 배치 탄도미사일방어는 북한 미사일로부터 해안지역과 남한의 남쪽 3분의 1만을 방어할 수 있다.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들(KDX-III)에서 발사하는 요격체제는 중국 미사일들에 대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제주에 배치된 전함들은 북한과 중국의 탄도미사일들로부터 류큐열도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들을 포함한 일본 남부를 방어할 수 있다.” 서치타는 미국정부에 대한 조언까지도 잊지 않았는데,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국정부는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을 지켜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으면 제주기지는 중국을 자극해 중국의 전략적 억제력을 증강하고 그 결과 동북아 군비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사실, 서치타의 보고서는 제주해군기지사업이 본격화할 즈음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진영에서 제기했던 문제점을 확인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서치타는 미국의 입장에서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을 위해 군사안보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위와 같은 사실들을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같은 사실들이 반대의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시작할 즈음보다 지금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1년, 미국은 자신의 군사전략을 수정하며 미군의 주력인 해군전력의 60%를 아시아로 집중하는 ‘아시아 회귀전략’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주된 목적은 중국에 대한 압박과 봉쇄이다. 하지만 중국도 이젠 더 이상 미국의 군사적 압력에 굴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에 힘입어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지위에 설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기존의 방어적 군사전략인 반접근·지역거부전략의 범위를 확장하며 미국과 맞서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중간의 군사적 힘 겨루기는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점에 완성되는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의 전개에 필요한 주요 구성요소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항상적으로 감시하고 유사시 제거해야 할 군사적 목표에 제주해군기지를 추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안보를 위해 건설했다는 군사기지가 오히려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다.
생명평화 강정마을의 기운을 온 나라에게로
지금 강정마을은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지난 12월 1일, 제주해군기지 전대가 창설되었다. 여기에 제7기동전단과 잠수함전대까지 이전하게 되면 총 3,200여 명 정도의 병력이 제주해군기지에 주둔하게 된다. 강정마을 전체 주민보다도 많은 숫자다. 현재 97%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는 제주해군기지는 내년 1월 말경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주해군기지 인근에는 72세대 규모의 군관사가 지어지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그리고 방문객들이 들르고 머무는 공간인 삼거리식당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조만간 있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제주해군기지의 존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며 8년간 외쳐온 ‘공사 중단’이라는 구호는 현실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강정마을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 존재하는 기지촌과 같은 곳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와는 다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2월 16일, 강정마을에서는 새 마을회장을 뽑는 총회를 열었다. 근래 드물게 4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주민이 참가한 투표에서 강정마을의 주민들은 지난 8년간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헌신해온 현 마을회장을 다시 선택했다. 앞선 11월 초, 강정마을과 함께 해 온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석회의에서 강정마을회는 제주해군기지 완공 이후 강정마을의 상과 관련한 일련의 안을 제출했다. 안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 완공 이후 강정마을은 ‘생명평화 문화마을’로 선포하며,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군사문화를 생명 살림과 보편적 사랑을 실현하는 평화의 문화로 막는다는 취지하에 기지가 마을 내로 더 이상 확장되는 것을 막고, 기지·환경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평화기행과 평화학교사업을 진행해나가면서 해외연대활동도 확대할 것이다. 물론, 2012년부터 진행해온 강정생명평화대행진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강정마을회의 제안에 시민사회단체의 참석자들은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요즘 강정의 사람들을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강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강정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만들고 그 생명평화의 기운이 온 나라로 펴지게 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