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누가 나를 이 높은 곳에 /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 / 같은 얘기를 목이 쉬게 / 같은 길을 발이 부르트게 / 걸어도 벽이 높아서 / 나도 오를 수밖에 없어 (...)”
- 오지은 3집 수록곡,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지난주 목요일(2일),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경기공투단)은 ‘비택’을 한다고 했다. ‘비택’은 ‘비밀 전술(tactic)’의 줄임말이다. 그들은 며칠 전에도 여러 차례 비택을 했었다.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점거했고, 국회 행사에 참여하러 온 도지사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또 ‘비택’을 한다고 하니 이제는 더 이상 비밀 같지도 않았다. 사실, 이제는 한 달이 다 되도록 경기도청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는 그들의 행동 전술에 나 자신도 벌써 심드렁해져 버린 것이었다.
경기공투단은 지난 달 13일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확대 등을 요구하며 경기도청을 점거 중이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해서 지난해 경기도가 저상버스 300대 이상 확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법정대수 대비 200% 도입 등을 약속한 바 있었지만, 약속이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에는 장애인콜택시 운영비 지원 예산 39억 원이 일몰 처리되어 사라지는 등 이동권 보장에 있어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하철 엘리베이터도 늘어났고, 시내 곳곳에 샛노란 장애인콜택시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묘기 부리듯 버스 차체가 기울어져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저상버스도 간간히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일부에선 “장애인들 살기 좋은 세상 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콜택시 한 번 타기 위해 여전히 3~4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저상버스 도입율은 경기도 전체 버스 중 12%에 불과하니 장애인에게 대중교통은 여전히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경기공투단은 수십 년째 깊어져 가는 자신들의 박탈감과 세상 사람들이 고작 몇 대의 장애인콜택시와 저상버스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는 그 평범한 감각 사이의 괴리를 깨기 위해 온 몸을 굴려 싸워왔다.
하지만 경기도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오히려 ‘농성을 풀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굳혔다. 그러는 사이에 그저 공투단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을 뿐인 내 마음 한 켠에서도 “도청 시멘트 바닥에서 공무원들 눈치 보며 잠을 청해야 하는 이 농성은 접고, 다른 방법으로 하면 안 되나?”하는, 다소 무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경기공투단이 새로운 비택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당일 오전이었고, 그날은 이런 저런 일정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취재일정을 수원으로 돌리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그들이 하겠다는 새로운 ‘비택’의 내용을 듣고 나서, 나는 두 시간 후 수원역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공투단의 한 장애인 활동가는 수원역 앞 육교 위에 자신의 몸과 휠체어를 밧줄에 묶은 채 위태롭게 매달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장애인 차별 철폐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메가폰을 잡은 채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실상을 알렸다. 경기공투단의 다른 활동가들도 그의 온 몸을 건 시위를 위해 시민들과 차량 통행을 막았다. 이 기이한 광경을 보기 위해 갑자기 육교 주변으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갑작스레 길 위에 갇히게 된 택시기사들은 장애인과의 약속을 파기한 남경필 도지사를 함께 규탄해 달라는 장애인들의 호소에 육두문자로 화답했다. ‘XX년’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고, 어떤 기사 분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던 한 장애여성 활동가의 전동휠체어를 강제로 밀치려 하기도 했다. 한 중년 여성은 “병원 예약되어 있어서 빨리 가야 하니 제발 길 좀 열어 달라”라고 부탁조로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수원 시민들의 ‘평화’롭던 도로의 일상을 찢고 들어왔다. 그들은 1시간 여 동안 시민들의 훈계, 애원, 욕설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시민들은 분명, 시위를 벌이는 활동가들을 지지하기는커녕 매우 적대적이었다. 얼핏 보면, 그들은 대놓고 욕을 먹으려고 나온 것 같았다. 조금은, 아둔해 보였다.
그러나 119구급대원들이 육교에 매달려 있던 장애인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그는 끌어내리려는 구급대원들의 손길을 마지막까지 뿌리치면서도 메가폰을 입에서 떼지 않았다. 성미 급한 버스 한 대가 매달려 있는 그를 칠 수도 있는 높이로 다가와도 그의 목소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그는 인도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귀를 붙잡아 두었다. 비록 그 답장으로 욕을 먹을지언정.
그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이 육교에 매달려 말한 것은 무엇이었나. 비장애인들이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대중교통을 장애인들에게도 허락해 달라는 것, 그뿐이었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 한 달을 경기도청 찬 바닥에서 잠을 잤고, 지난해부터 남경필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벌을 주면서까지 그 말을 전하고자 했다. 부끄럽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장애인 언론에서 일한다는 나의 귀에도 그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를 저 높고 위험한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같은 얘기를 목이 쉬게” 떠들어도 들어주지 않았고, “같은 길을 발이 부르트게” 다가와도 외면했고, 결국엔 그들에게 ‘벽’을 쌓아올렸던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무감각이 그런 것은 아니었는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난 오지은의 저 노래를 곱씹으며, 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던 그가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바래왔던 건 아주 작은 /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 따스한 집에 돌아가는 것 / 바래왔던 건 아주 작은 / 땀방울의 소중함을 알고 / 아름다운 미소를 알며 / 따스한 내게 돌아가는 것” 그 뿐이지 않았을까. 그걸 소망하는 게 그토록 스스로에게 벌을 주어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왜 그 소박한 바람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덧붙임
하금철 님은 장애인인터넷언론 비마이너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