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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 장애인의 날' 참혹한 풍경들

장애인들, 곳곳서 권리 확보 투쟁 벌여

12월 3일은 유엔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인권 보장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 한국의 장애인들이 정당한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현장을 둘러봤다.


▶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돼야"

'세계장애인의 날 근조' 현수막을 내건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쇠사슬을 두른 채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도로 한복판으로 나섰다. 3일 오후 2시 15여명의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최저 생계 보장하라"를 외치면서 용산역 부근 육교와 8차선 도로를 점거하며 약 30분간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이들은 서울역 앞에서 열흘간 진행했던 '빈곤문제 해결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 해단식을 가졌다. 이 날은 2001년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이었던 최옥란 씨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받는 한달 생활비 28만원으로는 도저히 생존해 나갈 수 없다며 농성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빈곤을 조장하는 이 법의 허울은 변함이 없고 내년 최저생계비는 고작 36만여원으로 책정됐다.

민중복지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은 "빈곤은 주거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노동권, 의료권이 박탈된 총체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애인 실업률 70%가 대변하듯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권은 물론, 여타의 사회적 권리의 획득을 위한 기초적인 이동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며칠 전 경남 고성의 한 할머니가 정신지체아 손녀의 의료비 문제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손녀에게 독극물을 떠먹이고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이들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생계형 자살과 범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농성을 마무리한 이들은 향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선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고, 국회에도 사회보장예산의 확보와 증대를 요구할 계획이다.


▶ "전동휠체어는 너무 먼 당신"

장애인들이 자신의 발인 휠체어를 불태웠다. 정부가 휠체어 값으로 5년에 한 번 고작 24만원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화형식을 집행한 단체는 '중증장애인 전동휠체어 국민건강보험 확대적용 추진연대'(이하 추진연대). 10여개 장애단체로 구성된 추진연대는 3일 오후 2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중증장애인들에게 전동휠체어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추진연대는 이날 오전에도 공청회를 열어 전동휠체어가 중증장애인에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

10년 전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된 이선희 씨는 외출이 거의 불가능했다가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외출이 가능해졌다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사회의 시선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따라다니는 장애인에게 무언가를 혼자서 해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처럼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자유의 발'이 되고 있지만 비싼 가격 탓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정책실장은 "가격이 최저 300만원이어서 평균 가구소득이 100만원도 안되는 중증장애인들이 구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은 4만여 명이지만, 실제 보급률은 1천대도 되지 않는다"며 "전동휠체어에 대한 건강보험금 보조지급액 상한선을 500만원 정도로 책정해 이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연대는 향후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의 개정을 위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투쟁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 장애인콜택시노조 싹쓸이 위기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이 지난달 26일 장애인콜택시노조 간부 6명을 포함해 콜택시 노동자 11명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해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조설립 필증을 교부받은 지 채 2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시 장애인콜택시노조의 주요 간부 대부분이 공단측에 의해 내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싹쓸이될 위기에 처한 것.

이와 관련해 3일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번 계약해지 조치는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노조를 말살하려는 명백한 노동탄압 행위"라며 공단측을 맹렬히 비난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콜택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고용안정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있어 서비스의 질 개선과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전했다. 또 "허울좋은 운전봉사원이란 명칭은 노동착취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장애인들을 봉사나 받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노조는 이달 5일 단체교섭을 통해 △계약해지 철회 △정규직으로의 전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공단측에 요구할 예정이며, 공단측이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향후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 장애인권리조약 제정 발걸음

장애인의 인권을 체계적으로 증진하기 위해서는 국내법뿐 아니라 국제법의 정비도 절실하다. 이와 관련 최근 활발히 일고 있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아래 조약) 제정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조약은 지난 2001년 유엔총회에 공식 상정된 후 유엔특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어 올 7월 열린 제2차 유엔특별위원회에서 장애인조약 초안을 만들기 위한 실무분과(Working Group) 구성이 결의되면서 지역별 제정 논의가 활발해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지난 6월 '아태지역전문가회의'를 연 데 이어 10월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모인 워크샵을 개최, '방콕초안'을 채택했다. 초안은 비장애인들에게 보장된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도 보장된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조약 이행을 위한 독립적인 국가기구의 설립 △장애인 영향평가제 도입 △조약이행감독기구의 설치 △개인 청원권 보장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9월 한국장애인연맹 등 13개 민간단체들이 모여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추진연대'를 결성하고 '방콕초안'을 기초로 '한국 민간단체안'을 작성, 내년 초 열릴 실무분과 회의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장애인연맹 이석구 사무처장은 "조약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장애인이 제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에 민간단체 공동으로 실무분과 제출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