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타서 신문을 읽는데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요. 고개를 들어보니 세월호 가족들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반가움이 더욱 컸습니다. 세상 너스레를 다 떨며 반가운 티를 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인사는 했지만 그 다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례적인 질문을 주고받기엔 너무 가깝던 분들인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엔 이제 멀어진 느낌이랄까요?
"요즘 얼굴 잘 안 보이네?"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면 종종 듣는 말입니다. 사실이죠. 언젠가,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고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걸 깨닫고 놀란 적이 있어요. 농성장에서 매일 얼굴 보며 지내던 시간으로부터 우연에 기대야 만날 수 있는 시간까지 온 것을 받아들이는 게 제게도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제 몫의 그리움과 아쉬움도 있지만, 가족들에게는 함께 하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불안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노란리본인권모임 얘기를 꺼낼까 했어요. 마침 저녁에 모임이 있어 가던 길이었거든요. 얼굴 자주 안 보일지 몰라도 제 자리에서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큰 행사에서는 따로 인사 나눌 기회도 없고, 긴급하게 진행되는 기자회견은 일정을 쫓아갈 수 없다보니, 누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잘 모르실 수 있잖아요. 가족들이 먼저 내리면서 얘기도 못 꺼내고 헤어져야 했는데, 이 마음이 뭘까 헤아려보게 됐습니다.
4.16연대의 운영위원을 맡았던 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투쟁의 현안을 놓치지 않고 의미 있는 싸움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바라던 것에 한참 못 미치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짧은 시간에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을 때 이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모여 '4월16일의약속 국민연대'라는 단체가 창립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로 모였던 단체들은 저마다 당면한 현안들이 있으니 연대체로 힘의 집중을 이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거든요. 대책회의 상황실 파견을 마치고 저도 단체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운영위원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는 있겠지만 힘 닿는 만큼 함께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가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4.16연대의 이름으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제정하기 위해 전국에서 풀뿌리토론을 조직하면서도 정작 4.16연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로 여겨지는지 모르겠는 때도 있었습니다. 농성과 행진과 집회 등 현안투쟁에서 뭔가 거들거나 도우려고 할 때 귀찮아하는 듯한 반응을 느끼기도 했고요. 서운한 티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현안에 대한 책임을 가장 막중하게 떠안고 있을 사무처 활동가들에게는, 뭔가 물어보거나 의견을 내거나 역할을 맡으려는 것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할 분위기를 해치는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내 위치와 다른 위치에 있는 활동가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올해 4.16연대 안팎으로 불거진 여러 논란과 갈등으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사실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은 녹록치 않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국민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정권이 바뀌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하면서 뭔가 진전이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분위기도 생겼습니다. 앞선 정권처럼 포악스럽게 진상규명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재수사에 나서지도 않는 상황에서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가면 좋을지 복잡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죠. 사람들의 마음과 의견이 하나로 쉽게 모이기는 어려운 국면입니다. 세월호참사 당시 법무부장관으로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던 황교안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어 버젓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데 턱밑까지 책임을 따져묻는 힘이 쉽게 모이지는 않고 있으니 속은 더 타들어갑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은 더 지치기 마련이고 조직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에 더 예민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함께 힘있는 투쟁을 만들어가려 고민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마치 조직을 흔드는 시도인 것처럼 배척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5주기를 앞두고 대대적인 청원을 조직했던 특별수사단 설치 요구는 어디로 간 것인지, 자유한국당 해체 구호는 왜 갑자기 등장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나 의견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서명을 받으며 꾸준한 활동을 하던 분들이 제기하는 소통의 문제 등 6월경부터 4.16연대로 다양한 문제제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이 과정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이 문제제기들을 대하는 4.16연대 상임대표와 사무처 활동가들의 태도였습니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하게 세월호 투쟁만 고민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도한 비난으로 쏟아진 말들이 상처가 됐을 것은 충분히 짐작됩니다. 밖에서는 모르는 속앓이, 현안투쟁을 하는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겪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문제제기를 방어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오히려 더 공론장을 넓혀야 사람들이 함께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4.16연대 상임대표나 사무처장으로부터 듣게 되는 말은 '지난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절차상 문제 없다', '가족들의 생각이 그렇다', '오해가 있었다', '문제제기 하는 세력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류의 말이었습니다. '다같이 고민을 꺼내놓고 최선을 다해 토론해보자'는 말은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열일 하는 활동가들 힘든 줄도 모르고 발목 잡거나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처럼 되어버렸습니다. 4.16연대는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갈등을 외부화하기를 택한 것 같았습니다. 즉,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문제고 4.16연대는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비공식적인 비난이 공공연히 떠돌면서 서로 신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상태로, 우리가 정말 함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최전선에서 가장 많이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모든 의견이나 제안에 동의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의견들은 나름의 맥락을 가집니다. 별 문제가 없는데 자꾸 같은 질문이나 의견이 반복된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쳐내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번거로운 실무 하나 덜어주지 않으면서 말만 보태려는 사람들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와 토론하며 함께 책임을 나눠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활동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한 번 결정된 사항을 재논의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피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총회 결정 사항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함께 재논의하고 새로운 결론을 이끄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제가 특히 걱정됐던 반응 중 하나는 '가족들 마음이 그렇다', '가족들 생각이 그렇다'며 토론을 종결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마치 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정말 그럴까요? 누구도 '가족들은 어떻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투쟁하면서 내내 겪어야 했던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와 동전의 양면입니다. 게다가 주요한 투쟁 방향이나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가족들을 내세우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싸우지만, 가족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연대하기 위해서 싸웁니다. 곧 우리 자신의 싸움이기도 하므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6월부터 한달 간격으로 열린 운영위 회의에 참석하면서, 위상도 역할도 모호한 TF를 맡게 되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4.16연대 상임대표나 사무처 활동가들만큼 세월호 투쟁에 온힘을 기울이지 못했으니까요. 자격지심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토론하려고 했던 것은, 4.16연대가 제게 참 소중한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월호참사를 겪은 한국사회가 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책임을 안은 조직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4.16연대는 회원조직으로서 조직 내 민주주의와 회원들의 행동을 고양해야 할 책임도 있지만 회원 이상을 책임지는 조직도 되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4.16연대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협력 속에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운영위원을 사퇴하면서도 4.16연대가 위와 같은 조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의 조직구성에서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접게 됐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고 있었는데 제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최근 몇달 동안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더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4.16연대가 세월호 투쟁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와 안전에 이르기까지, 제가 쏟을 수 있는 열정을 4.16연대로 헌납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많은 분들이 여전히 4.16연대의 변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그 분들이 있어서 저는 슬쩍 발을 뺄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겠지요. 이 글을 빌어 미안한 마음과, 운영위원이 아니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 찾아가겠다는 약속도 드립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가족들과 헤어지고 나니 우리가 또 언제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금세 애닳는 마음이 됐습니다. 가족들이 환승하는 데까지 쫓아가며 안부라도 더 자세히 물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고요. 하지만 몇 분의 시간을 연장하든, 또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든, 제가 어디쯤에서 세월호 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지 모호하다면 제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제가 '잘 안 보이는' 사람일 뿐일 테고요. 어쩌면 그동안 수많은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 세월호 투쟁에 함께 해왔는데, 첫해 공동상황실장을 맡게 된 이유로 가족들 눈에 유난히 띄게 된 것이 제가 누렸던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숙제는 '잘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투쟁을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세월호참사 2천일이 되어갑니다. 천일과 이천일 사이에 이룬 게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자신의 삶에 세월호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전혀 상관없는 듯한 주제의 모임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전공을 바꾸게 된 사람, 직업을 바꾸게 된 사람 등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조금 희미해진 건 더욱 널리 퍼져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집중된 투쟁이 필요하고 그래서 더욱 4.16연대의 변화가 절실하지만, 이 싸움이 그리 쉽게 허물어질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상기해봅니다.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4.16연대 운영위원을 사퇴합니다.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인권활동가들과의 다양한 교류에서,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부터 이어진 활동에서, 함께 싸우려고 합니다. 또 어디에선가 가족들을 만나면 미주알고주알 제 고민을 털어놓고 수다를 떨고 당신들의 근황을 묻고 싶습니다. 보고 싶은 만큼 더 간절하게 제 자리를 지키면서 말이죠. 지금은 조금 멀리 있는 듯 보여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향한 투쟁에서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는 걸 기억하겠습니다.
4.16연대를 온몸으로 떠안고 있는 상임대표와 사무처 활동가들, 열과 성을 다해 지역에서 세월호 투쟁을 일구는 운영위원과 회원들, 다양한 부문에서 기억과 행동을 이어가는 운영위원과 회원들, 그리고 더욱 널리 퍼져 진실과 정의를 향한 변화를 일구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2019년 9월 28일
미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