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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낙태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

지난 10월 7일 정부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번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24주까지도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라서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언뜻 기존보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낙태죄 처벌 기준을 세분화하며 여전히 임신중단을 죄로 남겨두고 있지요. 새로운 낙태죄의 탄생을 예고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은 발 빠르게 대응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10월 12일부터 시작된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법무부 「형법」입법예고기간 마지막인 11월 16일까지 진행하고 있고, 동시에 각계 선언을 조직해 천주교 신자, 청소년, 청년, 장애여성,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의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사랑방은 10월 14일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의견과 지지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선언을 대독했습니다. 이날 선언된 의견들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2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1,015명의 천주교 및 개신교 여성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만든 선언들이었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지지 선언>이라는 특정 종교 신자들의 의견을 모은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천주교구가 ‘태아 생명 대회’ 개최와 같은 낙태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서서 2018~2019년 <낙태죄 합헌을 촉구하는 천주교 100만인 서명>을 조직하였고, 2020년 8월 ‘낙태죄 전면 폐지 반대 성명’을 발표 하는 등 수많은 여성·시민들의 낙태죄 폐지 요구와 상반되는 행보를 천주교 교구의 이름으로 지속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선언을 지배하는 정서는 분노였습니다. 여성 인권과 태아 생명이 마치 대치하는 듯 낙태죄 존치를 옹호하면서 실상 가톨릭 내의 성차별에 침묵하는 교회와 천주교에 실망과 분노가 쏟아졌습니다. 

선언에 참여한 일부 참여자는 직접 자신과 주변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하며 교회 내에서 임신 중지를 죄악시 하는 ‘교리’의 불합리함, 나아가 세속법인 「형법」에서도 여성만을 처벌하는 낙태죄의 차별적 내용을 지적했습니다. 태아의 생명을 이유로 낙태에 반대하지만 이미 태어나 존재하는 인간인 여성의 존재와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천주교회를 생명 존중이 아니라 반여성, 반인권, 반생명적이라 비판했습니다. 천주교내 낙태죄 존치를 지지하는 입장은 가톨릭 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여성의 지위와 노동권 등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조직된 선언이 주요하게 요구하는 바는 사랑의 종교인 천주교가 차별 받고 억압받는 여성들의 편에 서서 낙태죄 폐지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번 선언 중 인상적인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보았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이고, 현대시민이며,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입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제가 가톨릭이라는 사실에 의아해합니다. 제가 말하고 행동하고 주장해온 것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냐고요. 저도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여자는 신부가 될 수도 없고 중요한 제례에 미사포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랑하는 저의 동성애자 친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모욕당할 때, 페미니즘을 단순한 남녀갈등 조장이라고 생각할 때 많이 방황했습니다. 현대시민으로서 타인을 존중하고 제 권리를 주장해야한다는 생각과 교회의 인내와 순종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도 오랜 역사동안 많이 바뀌었습니다. 라틴어로만 할 수 있던 미사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하게 되고, 성당에 들어갈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가게 되고, 한때 식민 지배에 앞장섰던 교회가 이제는 식민지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교회가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여성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현대사회의 흐름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치를 지켜나가는 방법을 새로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한편 지난 20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 입법 예고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습니다. 지난해 4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정부는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를 지금까지 미루다가, 법 개정 기한인 12월 31일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습니다. 자연스레 의견 수렴 기간도 매우 짧은 상황입니다. 모낙폐가 제출한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대한 반대 의견서의 주요내용은 ‘중앙 임신ㆍ출산 지원기관 설치ㆍ운영’ 및 ‘임신ㆍ출산 상담 제공(의무)’ 등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드러내며, ‘재생산건강지원’을 위한 기관 설치ㆍ운영 및 사업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인공임신중절 요청에 대한 거부·수락’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의료인 교육 및 피임의 급여화’와 같이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조항을 마련할 것을 중요한 내용으로 요구했습니다. 

낙태죄는 68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국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낙태죄는 어떤 때는 살아있었고, 어떤 때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정부가 들고 나온 입법예고안은 낙태죄의 부활 아닌 부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인구 조절과 경제 부흥을 위해 여성에게 낙태를 강제하기도 하고, 혹은 그 반대로 처벌 해온 시간.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라고 말해온 이유입니다. 이번 입법예고안에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하지요. 누구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는 임신 중지를 이유로 여성을 처벌하는 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는 낙태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침이 결국 지금의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인권적으로 변화시킬 것임은 분명해 보이는 10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