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지역 차별금지법 제정 네트워크(이하 지역차제연)'와 함께 전국간담회를 진행한 것도 작년 10~12월이라니, 벌써 까마득합니다. 부천, 대전, 충북, 충남, 광주, 전남, 전북, 대구·경북, 부산, 경남, 제주까지- 그래도 간담회가 열린 11개 지역을 떠올려보니 4개 지역을 다녀오고도 마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것 같았던 가을과 겨울 풍경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제정운동의 지난 궤적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전망을 찾기 위해 시작된 전국간담회, 거의 모든 개혁 입법들이 번번이 국가에 의해 거부되고 또 거부될 것이 예상되는 시대에 어디에서 다시 차별에 도전할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실마리를 찾고 또 모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작된 간담회이기도 했습니다.
든든한 순간도 막막한 순간도 함께
지금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주(州)를 중심으로 공립 교육기관 및 공공기관에서 다양성·평등·포용(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금지 정책이 점차 확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백인이 역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특정한 집단이 처한 구조적 조건들을 고려하는 조치들이 보다 노골적인 공격에 놓이고 있습니다.
전국간담회를 다녀오고 나니 정말로 한국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페미니즘 정치 활동이 증가하며 여성정책의 목표와 대상이 남성으로 대체되는 반동도 공공영역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2023년 역대 가장 많은 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고 강제출국 시키면서 농·어업이 중심인 지역들은 대응에 고심이 깊습니다. 게다가 시민들의 힘으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서울과 충남에서 직접적인 폐지 위협에 놓였고(다행히 며칠 전 충남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를 넘겼습니다), 여성·이주·장애·노동 등 각 영역에서 대대적인 예산 삭감 내지는 지원 축소가 휘몰아쳤으니까요. 지역차제연 단위들이 모두 모여 간담회를 열기까지도 너무 쉽지 않은 조건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역에서 인권시민사회의 오랜 요구로 축적해놓은 예산과 시스템이 계속 사라지고 그에 따라 운동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또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막막한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고 나니… 어디서부터 발을 딛어야 할지 저 역시 헤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순서대로 전북간담회, 충남간담회
"그래도 차별금지법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다들 알고 있어요. 지금은 너무 버거운 상황이지만, 제정운동이 다시 시작된다면 저희도 꼭 함께할게요."
전북간담회에서 한 여성활동가의 마지막 다짐 같은 말을 듣고 오히려 '괜찮은 걸까' 더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저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별금지법이 국회 앞을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계속 불러 세우던 시기에도 늘 지역차제연과 함께 해왔지만… 바로 삶의 터로서 지역을 지키고 있는 단위들 각자가 어떤 전망과 어떤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지지를 구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문제로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며 달려왔는지를 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지역이라는 추상적인 장소로 뭉뚱그리지 않고 또 지역활동가라는 타자화된 위치로 거리두지 않고, 제정운동의 동료로서 한 사람 한 사람 이전보다는 자세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생겼다는 점이 어쩌면 전국간담회에서 제가 배운 가장 소중한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든든한 순간도 막막한 순간도 함께 하는 것이 동료라면, 제정운동의 다른 국면을 더 적극적으로 떠올리고 이후에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사실 시대가 암담하긴 하지만, 당연히 암담한 이야기만을 나눈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제정운동의 과정에서 성과로 남긴 것은 무엇인지 함께 평가를 나누고, 그 위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무엇일지를 폭넓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았어요. 입법 운동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들만의 운동’이 되기 쉽다는 위기의식, 그래서 현재 대중들이 마주하고 있는 삶의 이슈와 제정운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필요성만큼은 모두가 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양당 구도의 제도정치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낄수록, 우리 삶을 둘러싼 정치에 대한 기대도 함께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나 인권, 평등이 이제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우리가 더 동력을 잃어가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를 그리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우리가 함께 그리고 만들어가는 '그다음' 세상에 대한 모습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차별금지법이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더 때때로는 암담한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차별금지법을 향할 수 있을까요. 여러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제안들도 많이 나왔지만, 부산의 오랜 활동가가 건넨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를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그 세상의 풍경을 차곡차곡 채우고, 그 풍경으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는 제안이 좀 더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양당 구도의 정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저들이 대안이 아니라고 지목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은 길을 우리가 먼저 내는 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제정운동의 방향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변화를 향해
"차별금지법은 기본을 만드는 과정인데, 이것 자체로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노동의 문제는 노동조합이 있으면 해결될 것 같거든요. 하루에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기도해야 하는 종교를 가진 노동자가 있다면, 단체협상을 체결하면 끝나는 문제이기도 해요. 노동조합이 있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노동조합이 없으면 불가능한 구조이기도 하다는 거죠. 그렇다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논의와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담긴 평등에 대한 권리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만이 아니라, 온전한 권리로서,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로서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가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고민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필요할 때는 결합을 하다가도 평소에는 등을 돌리고 있잖아요. 노동조합에서도 현장에서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할 때 비정규직 문제만 이야기하고 끝나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노동조합에서는 단체협상안을 만들거나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지원계획을 다시 만들거나 하는 방식으로, 비록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 법의 지향으로) 너무나도 많은 곳의 차별들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걸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충북의 한 활동가가 건넨 제안입니다. 참 신기하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로 가슴이 뛰기도 했습니다. 전국간담회의 제목처럼 '평등과 존엄의 전망'을 찾아갈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하고 단일한 통로가 보장되는 걸까요? 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확보할 방안 없이 차별금지법이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반대로 차별금지법이 담고 있는 평등에 대한 감각 없이 보편적인 평등과 존엄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을 일의 세계에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차제연 정책담론팀에서 최근 5년 이내의 국가인권위 차별진정 결과를 검토하며 쟁점을 톺아보는 세미나를 진행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용 영역에서 정말 많은 성별,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이 벌어지고 있는데, 적지 않은 경우 바로 그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이 상급노조의 단체협상이기도 했습니다. 단체협상이 계속 갱신된다 하더라도 워낙 전통적인 남성생계부양자 모델과 이성애·핵가족의 복지를 보장하는 틀로 기능해온 터라, 개별 노동자가 사측의 차별 관행에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사측은 '단체협상의 결과이기 때문에 회사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변명의 근거로 단체협상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비롯해서 우리의 권리를 보증하는 법제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걸까요?
순서대로 대구·경북간담회, 충북간담회
저에게 저 활동가의 말은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법제도 너머에서 결국 무엇을 해나가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은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인간의 권리란 결국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서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계로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직 법이 없더라도, 설사 입법의 가능성이 까마득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바로 그런 관계 양식을 공동으로 또 상호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서로를 부단히 일깨우고 연결해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최선의 것, 우리가 하고 싶은 최고의 것을 바로 지금 순간부터 우리가 발 딛고 선 곳에서부터 해 나가는 것이 평등과 존엄의 길을 내는 일이라는 것도요. 그 길 위에 당연히 차별금지법 제정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