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침공기가 쌀쌀한 계절이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봄에 있었는데 두 계절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래서 안산에 계신 사랑방 후원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게다가 사랑방이 작년부터 안산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자주 가다보니 왠지 친근 한 지역이기도 해 안산에 사시는 박채훈 님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있어 왠지 심지가 곧고 바른 분일 것 같아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역시나 박채훈 님은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이웃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분이었습니다. 다음에 안산에 갈 때 커피 한잔을 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안산에는 언제부터 사셨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주민들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2004년이요. 서울에 살다가 결혼과 함께 고양시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첫 아이를 낳고 친정 부모님이 이사하신 안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4월 16일 이후 안산 시민들은 매우 현명하게 이웃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너무 쉽게 공감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보단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생각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시민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제 주변은요.
◇ 사랑방은 안산지역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제대로 된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채훈 님이 계신 곳에서 활동을 한다고 하니 기대되거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안산 지역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아직도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세사업장에는 특히 더 그러하겠지요. 그러니 인권운동사랑방에 계신 분들이 큰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지 못해서 구체적인 당부는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항상 심사숙고하시면서 활동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직장도 안산이신지요? 하시는 일도 소개해주세요.
저는 안산으로 이사 오면서, 입시학원에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법 안산에 규모가 있는 학원이다 보니, 단원고등학교에서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이번 사고 희생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 꽤 오랜 기간 학원수강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현재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의 언니, 오빠도 있구요.
사고가 있은 후 학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인연이 닿았던 모든 학생들의 장례와 49재, 그리고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학원의 이사장님께서 모든 선생님과 현 재원 학생들에게 세월호 배지와 기억 팔지를 나눠주셔서 패용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자는 뜻이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대책위에서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고 계실 때, 우리 학원에서 부모님들께 서명참여를 부탁하는 가정통신문과 함께 빈 서명지를 보내드렸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부모님들께서 직장 동료, 아파트 이웃들에게 서명을 가득 받아 학생들 편에 보내 주셨어요. 그 서명지 회신이 계속되어서 제가 가족대책위에 네 차례나 나누어 전달할 정도였습니다. 학원에 전화해서 “왜 이런 통신문을 학생 편에 보내느냐?”라고 이의제기하신 학부모가 단 한분도 없었어요. 제 주변에서는 이처럼 사려 깊고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 올해 대형 참사가 많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마음이 아픕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만으로도 비극인데, 그 이후의 과정도 계속해서 실망과 절망을 더해주었습니다. 암울한 것은 앞으로도 같은 종류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치가 전도되고, 여기에 시간에 쫓기다 보니 뭐든 대충대충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진짜’가 아니라 빨리 ‘그럴 듯한 것’을 만들어내다 보니 ‘그럴 듯한 것’을 ‘진짜’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주변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사랑방 후원은 언제 어떤 계기로 하셨나요? 사랑방 활동에 조언하고 싶으신 게 있으면 말씀해주셔요.
남편이 미혼 때 시작했던 후원을 결혼과 함께 월급관리(?)를 제가 하면서 지금까지 후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이긴 했지만, 특별히 힘을 보탠 적이 없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항상 마음으로는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조금 더 참여하는 회원이 되려고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