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현장, 미쳐가는 징후들
영화는 ‘한미 자유무역 협정 토론장’에서 시작한다. 미국과 한국, 양국 모두에게 경제적.전략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청사진을 ‘사기’라고 말하고, 새만금 사업은 자자손손 물려줄 국토 대사업이 아닌 세계 최대 생태계 파괴 사업이라며 ‘어민은 바다로 가야 한다’는 비장한 외침으로 나아간다. 서러움이 뭔지 알고 싶거든 ‘나’를 보라며 850만 명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절규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투쟁에 나선 한 여성 농민의 절박함과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죽으려고 했다는 고향 친구들의 고백을 담은 영화는 암담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획의도에서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지금 현재’ 세상이 굴러가는 모습이 어떠한지 기록하고 있다. 기록의 즉각성과 현장의 진정성을 그려내는 데 애쓴다. 결국 영화는 ‘미친’ 현장을 담고 ‘더 미쳐가는’ 징후를 담으며 긴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개인의 삶과 사회가 무너지고, 자의식이 파괴되고, 양심과 정의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현실에 대한 진맥에 머물다
영화는 그 현장에서 현실을 건져 올릴 뿐, 현실을 양산하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단지 ‘기록’하기로 했다 하니, ‘못’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한 것이겠지만. 이 ‘미친’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반응만 끌어낸다면 서운하지 않을까? ‘미친’ 사회를 폭로하기로 작정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이 ‘미친’ 사회에서 벌어지는 16가지 사건을 논쟁의 대상으로 끌어 올려놓는 막중한 일을 시작했다. 영화는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건을 낱낱이 들춰내어, 사건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분석했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이성과 감성에 행동을 이끌어 낼 불씨를 점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것인가? 영화를 보며 감동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발견하고, 낡은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이 독립영화를 보는 이유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우리가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WTO와 APEC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명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시하고 강제 집행되는 평택 군부대 이전과 새만금 갯벌 사업, 화상 경마공원 설치가 앞으로 어떤 재난을 불러올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대적 빈곤과 난자 채취에 저항할 수 없었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카지노로 파괴된 개인에게 자신의 피에서 흐른다는 도박성이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조장하는 거대한 사기극임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2탄을 기대한다. 영화는 ‘미친’ 사회를 진맥하는 일로 1차 프로젝트를 끝낸 셈이다. 우리는 진맥만으로 이 몹쓸 병이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는 이 ‘미친’ 사회가 가속력을 내지 못하도록, 섬세한 기록의 축적을 계속하여, 스케치나 에세이가 아닌 객관적 분석으로 관객을 자극하는 성공적인 작품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논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