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덧씌운 불법 올가미
박래군의 구속은 평화의 구속이다. 멋 부린 표현도, 박래군에 대한 칭송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 평화를 향한 소박한 행동일지라도 불법의 올가미에 걸려 구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군기지 예정지 285만평을 285리 우리의 걸음으로 되찾자는 뜻의 평화행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 걸음 걸음의 수고로움을 피해갈 수 없다. 때문에 그 길은 수고롭지만 평등하고, 평등한 만큼 힘이 모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곧 보편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어내자는 평화행진이 구속을 감수할 만큼 ‘도발’적인 운동은 결코 아니다. 때문에 그 길에 어린이도 연로한 사람들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고 재미있고 의미있게 어깨를 나란히 했다.

▲ 어린이도, 청소년도 함께 한 평화의 걸음 <사진 출처: 285리 평화행진단>
평화의 길 틀어막은 경찰의 장벽
박래군의 구속은 경찰국가의 발악이다. 평화행진은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마을로 가려면 보통 2-3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무슨 일 때문에 출입하는지조차 심문당한다. 외부인이면 몇 시간 실랑이를 벌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며, 웬만한 수완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 몇 년 전 보았던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체크 포인트> 그대로이다. 이스라엘 검문소 통과는 모든 수모와 인권침해를 동반한다. 조문을 가려고 해도, 병원을 가려고 해도, 심지어 학교를 가는 것조차 군인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날이 추워도, 더워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군인들은 나 몰라라 상부의 명령만 기다린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진입로가 그렇다.

▲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전쟁기지 건설은 인권과 평화에 대한 사망선고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평화적인 저항 활동’에 깡패같은 경찰을 풀어 뭇매를 때리고 구속시켜 버렸다. 정부는 행진단의 항의행동이 불법이라고 딱지를 붙이지만 경찰력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자신의 ‘불법성’을 정의의 가면 뒤에 숨기는 짓이다.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저항권은 마치 효모와 같다. 누룩이 숙성되고 확장되는 것처럼 저항의 실천도 그렇다. 자해의 고통을 감당하면서 ‘지문날인 거부 신념’을 지켰던 행진단원 김자현 씨의 행동이 저항이 숙성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물리력 앞세우는 정부는 명이 다한 정부
박래군의 구속은 정부의 자승자박이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른 전쟁기지 건설은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 이미 수차례 지적되었다. 또한 대추리 도두리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군병력을 상주시키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도 이미 밝혀졌다. 더불어 주민들에게 어떤 동의절차도 밟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 낸 농토를 강제수용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배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는커녕 권력의 힘만 믿고 전쟁기지 건설을 밀어붙인다.
285리 긴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행진단이 건네는 선전물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 적지 않은 후원금을 건네는 사람, 잠자리를 제공하고 한 끼 밥을 대접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계란으로 바위 치는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화행동은 이미 ‘국민 여론’에 싹을 틔우고 있었다. 오직 경찰과 군대, 강압적인 물리력만이 미군기지 이전을 밀고 갈 수 있는 동력이다. 군대와 경찰로 방패막이 하는 정부는 이미 그 명이 다한 권력이라는 것을 현 정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 평화를 향한 평화의 행진은 들풀처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