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보라매병원에 가본 적 있거든요. 아세요? 거기는 행려(*) 환자들을 받아요. 주소지도 없고 보호자도 확인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겨울이면 행려 응급실로는 환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와서 환자용 침대가 부족할 지경이에요.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숨을 밭게 쉬면서 응급실로 들어오더군요. 침대가 없었고 의사는 급한대로 바닥에 눕혀서 진찰을 했지요. 호흡곤란이 무척 심해서 급하게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군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의사는 아저씨의 병력을 물었어요. 이렇게 숨이 찬 건 처음이냐고, 언제부터 호흡곤란을 느꼈냐고, 숨이 찰 때는 어떻게 했냐고, 오늘은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됐냐고. 한 마디 한 마디 어렵게 아저씨가 대답하더군요. 숨이 차서 힘든 거는 오래 전부터였는데 가끔 동네병원에서 약 지어다먹으면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고, 많이 힘들 때는 가지고 있는 진통제 먹으면서 견뎠다고,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경찰서에 찾아갔다고요.
그런 거 알아요? 행려로 진료 받으려면 경찰이 먼저 ‘행려’라고 확인해줘야 하는 거? 아플 때 병원 가기 전에 경찰서 들러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 이 아저씨 검사 결과는 뭐였는지 알아요? 폐암이었어요. 심지어 온몸에 폐암이 번져 어떤 치료도 시도해볼 수 없는 단계였어요. 참고 참고 참다가 병원에 왔더니 이미 병원이 필요 없는 단계였죠.
시민 씨는 혹시 숨차고 그럴 때 없어요? 아, 맞다. 정기적으로 직장건강검진 같은 거 하니까 몸에 이상 있으면 알고 있겠구나. 요즘은 웬만한 암 검진 다 하니까, 불필요한 암 검진항목이 많아서 오히려 문제라니까, 폐암이 혹시라도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네요. 그 아저씨, 응급실 들어온 후 이틀 지나 인공호흡 시작했고 일주일이 못돼 돌아가셨어요. 미리 검진이라도 한 번 해봐서 조기에 발견했더라면, 행여 남들 다 하는 검진이라도 행려가 검진받는 건 사치라고 한다면 자꾸 숨차서 힘들 때 큰 병원 한번만 와봤더라면. 요즘, 폐암 진단받고 일주일만에 죽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시민 씨. 가난한 사람들이, 공짜라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너무 병원에 자주 가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대요. 그러면 그 아저씨는 너무나 ‘도덕적’이어서 죽기 전에야 큰 병원에 한번 누워보고 돌아가신 거네요? 빛도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혼자 가슴 부여잡고 진통제 삼키면서 병을 삭히고 삭혀서 병마에 야금야금 갉아먹힌 몸 이끌고 경찰서에 가서 나 좀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애원하는 게 ‘도덕적’인 건가요.
보건복지부는, 그래서 병원 갈 때 돈 내게 하고, 대신 한 달에 6천 원씩 카드에 넣어준대요. 그 이상은 자기가 부담하래요. 시민 씨, 작년에 저는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 하는 주거인권학교에 참여했어요. 그 아저씨들, 보라매병원에서 봤던 아저씨와 다르지 않은 아저씨들이죠. ‘행려’로 살아가다가 다행히 좋은 동료들 만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도 신청하고 그래서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가 된 아저씨들이에요. 그 아저씨들더러도 행여 공돈 들어온다고 다른 데 쓰지 마시고, 냉방에 전기스토브 하나 사들이는 것도 참으시고, 고기 구워먹는 거 탐하지 마시고, 그 돈 아끼고 아껴서 ‘도덕적’으로 죽었다는 얘기 들으시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그럼요. 아껴야죠. 보라매병원에서 만난 그 아저씨, 만약 의료급여 1종 대상자였으면 입원할 때 입원보증금(***)도 내야했을 거고 퇴원할 때 비급여(****) 항목 청구서 비용만도 수백만 원 했을텐데, 안 쓰고 모아도 부족한 돈을 어떻게 쓰겠어요?
지난주에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대요. 국가의 역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최저 수준(social minimum)을 보장하는 거라구요. 아무래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권교육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사회권규약만 읽어봐도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걸 알 텐데요. 그러니 건강권에 ‘최저 수준(minimum)’ 같은 게 있을 수 없죠. 건강권을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국가가 즉각 이행해야 할 의무와 좀더 장기적으로 이행할 의무를 나눠본다면 모를까, 뒤로 후퇴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요. 예산을 아끼려면 쓸데없이 낭비되는 눈먼 돈부터 줄여야지, 어째 지금도 부족한 걸 더 줄이겠다고 나서는 걸까요? 가난하기 때문에 더 병에 걸리기 쉽고, 가난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죽어갈 것을 권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면, ‘상식적’으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요?
시민 씨, 사실 이 얘기는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 씨뿐만 아니라, 내가 낸 돈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짜라고 병원 함부로 다니면서 돈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시민 씨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 행려 :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일정한 거소가 없는 자로서 행정기관이 응급진료를 받게 한 경우 경찰관서로부터 무연고자임을 확인받아 행려환자가 발생한 시장·군수·구청장이 수급권자로 인정한 자”를 말한다. 행려환자로 인정되면 1종 의료급여를 적용받게 된다. 하지만 흔히들,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행려’라는 표현은 적절하지도 못할뿐더러 의료이용절차나 진료기관에서의 차별 등으로 의료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의료급여1종 : 의료급여수급권자는 1종과 2종으로 구분되는데 행려환자나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중 일부가 의료급여 1종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병의원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았고 2종은 1,000원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냈다. 물론 이는 급여항목에 대해서만 해당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 1종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2만원을 초과하면 50%, 5만원을 초과하면 전액보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역시 급여항목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 입원보증금 : 의료기관에서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요구하는 보증금을 말한다. 물론, 이는 명백히 불법적인 진료거부이나 관행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인 의료급여환자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문제다. 작년 12월, 입원보증금을 청구하는 의료기관에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의료급여법이 개정되었으나 실제 진료현장에서의 관행이 사라질 지는 두고볼 일이다.
(****) 비급여 : 의료비는 크게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으로 나뉜다. 급여항목은 건강보험에서 보험자가 피보험자와 함께 부담하는 항목이며 비급여항목은 선택진료비와 더불어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항목이다. 급여확대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고 참여정부 역시 말로는 급여확대를 약속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비급여항목 본인부담은 소득 수준이 낮을 수록 의료이용을 어렵게 하는 주요한 장벽이 되고 있다.
(**) 의료급여1종 : 의료급여수급권자는 1종과 2종으로 구분되는데 행려환자나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중 일부가 의료급여 1종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병의원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았고 2종은 1,000원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냈다. 물론 이는 급여항목에 대해서만 해당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 1종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2만원을 초과하면 50%, 5만원을 초과하면 전액보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역시 급여항목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 입원보증금 : 의료기관에서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요구하는 보증금을 말한다. 물론, 이는 명백히 불법적인 진료거부이나 관행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인 의료급여환자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문제다. 작년 12월, 입원보증금을 청구하는 의료기관에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의료급여법이 개정되었으나 실제 진료현장에서의 관행이 사라질 지는 두고볼 일이다.
(****) 비급여 : 의료비는 크게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으로 나뉜다. 급여항목은 건강보험에서 보험자가 피보험자와 함께 부담하는 항목이며 비급여항목은 선택진료비와 더불어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항목이다. 급여확대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고 참여정부 역시 말로는 급여확대를 약속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비급여항목 본인부담은 소득 수준이 낮을 수록 의료이용을 어렵게 하는 주요한 장벽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