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한 언론은 대구지검 포항지청이 A4용지 338쪽에 이르는 ‘포항건설노조 불법파업사건 수사결과’ 대외비 보고서를 작성했음을 폭로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 내용이 가관이다. 검찰은 노조원들에 지급되는 실업급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집회 중 사망한 하중근 씨의 부검도 노조원들의 집결을 막기 위해 포항에서 80km나 떨어진 대구로 옮겨 시행하도록 하며, 이를 위해 하 씨의 친인척과 문중인사까지 동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포스코 본사 점거 노동자 70명에 대한 전원 구속영장을 받아내기 위해 영장실질심사에서 노동자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라는 내용도 있다. 그 결과 노동자 70명 전원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는 진기록을 세웠음을 보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경찰 공안부를 통해 노조의 동향을 철저하게 감시,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역 관계기관대책협의회를 주도하면서 여론 조작까지 감행하는 등 ‘노조 죽이기’를 총지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조직적 노조 탄압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1999년 불거졌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이 있다. 당시 진형구 검사의 ‘실언’으로 검찰이 조직적으로 조폐공사노조의 파업을 유도한 사건이 드러난 이후 검찰에 의한 공작적 노조탄압 사례들은 쏟아졌다. △ 장은증권, 원자력 병원, 한국중공업, 서울지하철 등 구조조정관련 공안검찰, 금감원 등의 공작적 개입 △ 강원산업, 영창악기, 삼환기업 등에서 나타난 검찰개입에 의한 주요노조 파괴공작 △ 통일중공업, 성남일용노조 등에서 나타난 부당노동행위 방조 및 검찰의 노조탄압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부는 오히려 검찰과 경찰의 비상식적인 노조 탄압을 부추기며 ‘엄정한 법집행’을 주문했다. 국가인권위가 포항건설노조원 하중근 씨의 사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 석 달이 지나고 있고 매달 전국의 경찰서 앞에서는 하 씨의 사인을 밝히라는 항의행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검찰과 경찰은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행태를 살펴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 선전 속에만 머물러있는 민주화는 필요 없다. 여전히 군사독재의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는 검찰과 경찰을 민주화하지 않고 무엇이 민주화되었다고 말할 것인가. 검찰 공안부와 경찰청 보안국이 처리하는 사건의 89%가 노동관계법이고 이중 대부분의 사건은 노사 간의 임금문제다. 80년대 학원사회와 학생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이들이 지금은 동일한 모습으로 노동 분야로 옮겨왔을 뿐이다. 치안인력이 모자란다는 경찰은 공안실적도 없는 공안부서에 아직도 2천명의 경찰 인력을 배치하고 있고, 검찰 공안부에는 전체 검사의 10%가 넘는 검사가 배치되어 있다. 검찰과 경찰의 공안부서 해체와 인적 청산 없이는 여전히 민주화는 실현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번에 폭로된 보고서에는 온갖 부당하고 불법적인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 내용들이 모두 ‘합법’이라는 굴레 속에 있다는 데 있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공안적 검찰과 경찰이 온갖 부정의한 일을 ‘합법적으로’ 자행하는 사이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노조, 학생운동 탄압을 너무 자연스럽게 내면화해왔다. 온갖 불법적인 행태들이 ‘합법’으로 보호되어왔고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검·경 관계자가 없다는 점이 현재 중형을 선고받은 12명의 포항건설노조원들과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이 폭로되어도, 집회 중 사망 사건의 배후가 드러나도 권력기관의 치부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공안부서 해체와 인적 청산 없이는 민주주의를 말하지 말라.
- 44호
- 논평
- 인권운동사랑방
- 200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