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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빵과 장미”, 제임스 오펜하임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시

평소에도 그랬지만 신문을 보는 일이 더욱 싫어졌다. 셔터가 내려지고 쇠파이프로 용접질까지 했다는데,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그놈의 법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데, 밖에서 어린 자식들이 울먹인다는데, 그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소식 대신 대선 주자들의 구정물 싸움이 1면에 오르는 신문에 구역질이 난다. 그녀들의 고생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싣고 ‘빨리 빨리’만 외쳐댔던 이 사회에 염증이 난다.

이름 대신 나를 ‘비정규’라 불러달라는 노동자인 그녀, ‘제발 자르지 말라고, 화장실도 못가고 내내 서서 일했다고, 그 형편없는 임금에 온 식구 목숨이 달려있다고’ 고립된 매장 안에서 타전을 보내는 그녀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연대’로 대답해 달라고 한다.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보며 떠올린 말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그녀들에게 바치는 시이다.

dulle griet, Bruegel

▲ dulle griet, Bruegel


‘빵과 장미’라는 단어는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 있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복합 영화관 CGV를 같은 건물에 두고 있지만, 거기서 일해 온 홈에버 노동자들은 영화구경을 못했을 것 같다. 나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를 보지는 못했다. ‘남미 출신 미국 대도시 청소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라고만 알고 있다. ‘빵’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장미’는 존엄성을 찾고 싶다는 의미로 얘기된다. ‘빵’은 육체를 위한 양식을, ‘장미’는 정신을 위한 양식을 뜻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빵과 장미’는 이 영화보다 더 오랜 이야기를 갖고 있다.

‘빵과 장미’는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제목이다. 이 시는 1900년대 일련의 여성 노동자 투쟁의 구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9년에는 “일하는 중에도 우리는 굶주리고 있다. 파업을 해서 굶어도 마찬가지다”는 구호를 내건 뉴욕 의류 여성 노동자의 파업이 있었고, 1910-11년에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시카고 의류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 시의 제목에서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이라 했을 때 ‘서부’는 시카고 여성 노동자 파업을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와 연결되는 대표적인 사건은 1912년 로렌스 파업이다. 1912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로렌스 지방, 가혹한 조건 속에서 노동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었는데,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장주들은 생산에 사용되는 실과 바늘, 심지어 노동자들이 앉는 의자의 비용까지 노동자에게 값을 물렸다. 형편없는 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공장 환경 그리고 그와 다를 바 없는 비좁고 지저분한 주거 속에서 그곳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전국 최하위에 속했다. 참다못한 여성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임금상승,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실을 끊고 유리창을 깨뜨리며 파업에 나섰다. 그녀들이 손에 쥔 펼침막 속에 ‘빵 뿐만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는 구호가 있었고, 이 투쟁은 ‘빵과 장미의 파업’으로 알려졌다.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은 고난으로 점철됐다. 처음에 주류 남성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노동조합은 비숙련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은 조직화될 수 없다며 외면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또한 출신과 언어가 아주 다양한 이주노동자이기도 했다. 이 시의 두 번째 절에서 “남자를 위해서도 싸운다네”는 이를 꼬집은 말이며, 마지막 절의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또한 그렇다. 한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그들이 우릴 보고 여성들은 조직화될 수 없다. 여성들은 노동조합 회의에 나오지 않을 거다. 그리고 우리더러 ‘임시 노동자’라고 했죠. 글쎄, 두고 보라지요.”

공장주와 주지사는 민병대를 조직하고 인근도시들에서 경찰력을 꿔왔다. 그로 인해 수백명이 체포당하고 다쳤다. 그러나 처음 수백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10주가 되자 1만명이 넘어섰다.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지지자가 늘어갔다. 노동조건에 대한 의회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노동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 투쟁은 미국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영화 <빵과 장미>의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바로 이 투쟁을 이야기하며 “그녀들은 이겼어, 그녀들은 이겼어”란 대사를 읊는다 한다. 그처럼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빵과 장미의 파업’ 역시 ‘이겼다’라고 얘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당신들은 이미 이겼다.

‘빵과 장미의 파업’에도 한국 사회의 냉장고는 계속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빵과 장미’를 찾아 나설 것인가. 장미를 원하신다면 홈에버와 뉴코아, 킴스클럽에서의 쇼핑카트부터 멈추시라. “민주주의는 표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헤아린다”고 했다.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James Oppenheim)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 -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제임스 오펜하임)
(“Bread for all, and Roses, too"-a slogan of the women of the west)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시 번역: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덧붙임

류은숙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