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제라고 해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바로 그 제제 말이에요. 이번 달부터 ‘포비의 두리번 두리번’이 ‘제제의 박쥐놀이’로 변신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 분들을 위해 소개 좀 할게요. 나이는 다섯 살. 아, 학교에선 여섯 살이라고 해야 해요. 빨리 학교에 보내려고 나이를 속였거든요. 학교 가는 시간만이라도 사람들이 나한테서 자유로워져야 하잖아요. 장난이 심해서 ‘개망나니’ ‘억센 털 러시아 고양이’ ‘작은 악마’라고 하는데 뒤뜰에 있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신통력(!)도 있어요. 아빠는 실직자구요, 엄만 삐나제 인디언의 후손인데 방직공장에 다녀요.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대요, 후~. 나의 왕 루이스(동생)와 또또까라는 겁쟁이 형, 나를 가장 많이 챙겨주는 글로리아 누나, 그리고 랄라, 잔디라 누나가 있지요. 참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뽀르뚜까도 날 기억할 때 꼭 같이 생각해주세요. 근데, 왜 ‘박쥐놀이’냐구요? 달리는 자동차 뒤꽁무니에 매달려 시원한 바람을 맞는 거 그게 박쥐놀인데, 좀 위험하지만 기똥차게 재미있거든요. 박쥐놀이하면서 휙휙 지나가는 세상이야기 이번 달부턴 제제가 들려 줄게요.
헌법 1조가 죽었대요!
지난 7월 17일 인권활동하는 언니, 형들(이하 언니들이라고 할게요)이 떼거지로 국회 앞마당에 드러누웠다면서요. 그것도 태극기를 깔아뭉개면서 말이죠. 아~ 정말 재미있었겠다! 행정자치부 꼰대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또 하라고 시켜서 언니들이 항의하는 뜻으로 그랬대요. 35년 만에 ‘변화된 시대’를 반영했다고 만들었다는 게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랍니다. 이거, 뭐 순 사기죠. 나 같은 애들이 상한 떡볶이 다른 걸로 바꿔 달라 하니까, 거기다 계란 하나 달랑 더 얹어서 새로 만들었다, 먹어라, 안 먹으면 경찰 부른다, 라고 협박하는 못 된 떡볶이 집 주인이랑 다를 게 없잖아요. 국민이 뭐 국가의 종인가요? 충성을 다짐하라고 협박하게! 언니들은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1시간이나 드러누워서 버텼대요. 정부는 항의하는 언니들의 ‘주장’을 질질 끌어다 닭장차에 가둔 다음, 빌어먹을 ‘맹세’를 담은 시행령을 24일 발표해 버렸어요.
언니들 다음에 이런 일 꾸미면 나한테도 연락해줘요. 가서 꼰대들에게 할 말이 있어요. “이 우라질 놈들아, 세 끼 밥 다 (처)먹고 그것 밖에 못하냐! 난 크리스마스에도 아침도 못 먹고 구두닦이 하러 갔다.” (내가 입이 좀 걸어요~.) 그나저나 이제 새 맹세문이 유치원, 학교, 경기장 등에서 귀 아프게 흘러나올 텐데, 어쩌죠? 제제의 제안은, 일단 ‘생까’자구요. 인권활동가 언니들의 어려운 말 ‘불복종운동’ 있잖아요, 그게 우덜이 말하는 생까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히~. 어떻게 생까냐구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나오면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화장실 갔다올게요”라든지, 조회대에 뛰어올라가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분위기를 망치거나, 그럴 용기가 없으면 ‘껌 질겅거리며 씹기’ ‘문자질’ ‘유행가 흥얼거리기’ 등등등, 정말 무궁무진한데!
불볕 투쟁에 함께 해서, 우리 모두를 지켜요
제제도 7월 한 달 홈에버랑 뉴코아 쫓아 다니느라 정말 바빴어요. 우리 엄마 같은 아줌마들이 분통 터져서 싸우고 있는데 제제도 응원을 해야죠! 엄마는 6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대요. 사람들이 엄마를 작업대에 올려놓으면 쇠붙이를 닦고 훔치고 했는데 너무 어려서 혼자 내려올 수 없어서, 소변도 그 위에서 봤대요. 공장은 아침이면 사람들을 삼켰다가 저녁 늦게 토해내는 커다란 괴물 같아요. 홈에버, 뉴코아의 아줌마, 언니들도 우리 엄마처럼 일한다는 걸 점거 농성장에서 알게 됐어요. 농성 중이던 7월 14일과 15일 의사선생님들이 진찰을 해봤는데 소변을 너무 참아서 많은 사람들이 방광염을 앓고 있고, 위염과 근골격계(쉽게 말하면 ‘골병’이라죠?), 하지정맥류 라는 병을 가지고 있대요. 8시간 내내 서서 일하면서 관리자들의 감시에 시달리고 해고 당할까봐 하도 걱정을 많이 해서 그렇대요. 아줌마들이 원하는 건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건데, 인권활동가 언니들이 그러대요, 그건 ‘부탁’이 아니라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라구요. 우리 집도 아빠가 실직해서 엄마랑 누나가 공장에 다녀요. 죽어라 일해도 내 간식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는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는데, 그나마 엄마가 해고당하면 동생 루이스까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폐지를 주어야 할 거예요.
7월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우리 엄마 같은 노동자들을 먹잇감으로 집어 삼킬 것이라고 인권활동가 언니들이 ‘재앙’을 ‘예고’했었는데 이제 현실이 되어 꿈틀대는 거죠. 게다가 법원 꼰대들이 이번에도 노동자들 엿 먹였어요. 7월 25일과 31일 서울서부지법이 이랜드와 뉴코아 사측이 낸 영업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어요. 이게 무슨 악마의 주문인지 몰라서 꽤 애 먹었는데, 한 마디로 ‘돈 많으면 노조활동해라’ 이거예요. 전국 매장과 부대시설에서 시위, 현수막 부착, 유인물 배포, 피켓 게시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노동조합은 1000만원, 조합원은 100만원을 내라는 거예요. 이런 젠장할 놈들! 가진 거라곤 노동자의 권리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 무슨 개소립니까. 법원은 정의의 보루가 아니라 부자들의 철옹성입니다. 나도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기 예수가 왔다지만 크리스마스 때 선물은 부잣집 애들만 받아요, 쳇~. 다 립서비스죠. 암튼 경찰이 휘둘러대는 폭력에도 주저앉지 않고 아줌마들의 투쟁은 다른 매장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부딪히는 투쟁밖에 없어요. 나도 어른들이 괴롭히면 막 욕하고 대들면서 도망가요. 그렇게라도 해야 복수할 수 있고 나를 지키는 거예요. 여성노동자들의 불볕 투쟁에 함께 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를 지킬 수 있어요.
미대사관에 돌이라도 던지자
탈레반에게 붙잡혀 간 사람들의 죽는 소식이 자꾸 들려서 간이 콩알만해져요. 지난 19일에 잡혀갔으니 2주가 다 됐어요. 소식을 듣고 김선일 아저씨의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거 같아, 밥도 못 먹었어요. 그런데 벌써 아저씨 두 명이 죽었잖아요. 또또까 형이 미워도 형이 잡혀 갔다고 생각하면 하늘이 다 노래져요. 잡혀간 사람들 가족들의 마음은 지금 어떨까요? 어른들이 하는 피가 마른다는 말이 정말 뭔지 알겠어요. 근데 왜 이렇게 정부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파병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국회로 몰려가서 반대한다고 아우성을 쳤잖아요. 그때 노무현 꼰대가 ‘국익을 위해 파병’한다고 그랬는데, 봉사하러 간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국익’이는 뭐하고 있대요, 도대체! 이럴 때 ‘국익’이가 나서서 힘을 좀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부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하다가 31일, 한국정부가 할 일이 없다고 발뺌을 슬쩍 하더라구요. 그 꼰대 옆에 있었다면 배를 들이 받아버리는 건데! 포로 석방은 아프간 정부 소관이라고 하면서,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협력해달라고 하더군요. 치사하게,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은 못하고 국제사회 운운하며 비겁하게 말하다니! 지금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건 나 같은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잖아요. 지난 번 이탈리아 기자가 잡혀갔을 때 포로랑 교환했잖아요. 미국이 싫어 하니까 아프간 정부가 이젠 그런 일 안한다고 하는 거예요. 평화운동하는 어떤 언니가 “미대사관에 돌이라도 던지자!”고 했어요. 미국이랑 탈레반이랑 옛날엔 친했는데 지금은 싸우고 있고, 그게 알고 보면 미국이 석유랑 천연가스 가져 오려고 그러는 거다, 지금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건 미국 정부라구요.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아프간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대사관에 돌 던지는 건 나도 같이 갈래요. 새총으로 전등 깨는 건 내가 선수거든요~.
8월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추방도 있다는데, 언니들! 기온이 올라서 불볕더위가 아니라 분노가 타올라 더 숨막힐 거 같겠네요. 분노를 다스리면서도 그걸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제제의 생각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박쥐놀이’ 한 달 뒤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