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스물일곱에 시설에 들어왔어요. 그 즈음엔, 세 형님들은 모두 결혼을 한 상태였고, 형수님과 조카들도 있었지요. 형들이 결혼하기 전엔 문제가 안 됐을 테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게 됐어요. 형수님들도 계시고, 형님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조카들도 꽤 컸을 때니까요.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차라리 시설이 낫겠다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겨질 내가 형제들 사이에서 우환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게지요. 아마도 집에 계속 집에 있었더라면 나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웠을 거예요. 내가 우리 집을 잘 아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별로 저항하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내가 안 간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이게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시설에 왔는데,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었지요. 대소변 못 가린다고 밥을 조금 주고, 나이 어린 선생들이 노인들한테 반말하고, 가족이나 교회에서 간식 넣어주면 창고에 들어가 안 나오고 그랬으니까요. 난 입소금 없이 들어갔는데, 직원들이 입소금 내고 들어간 사람들이랑 차별하더라고요. 입소금 내고 들어온 생활인에게 준다고 휠체어를 빼앗기도 하고, 6년 동안 수발한 방에서 쫓아내기도 했어요. 그 때 “아, 돈이 없으니, 세상이 무섭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뿐이겠어요? 시설에서 20년을 살았으니까 별일 별일이 다 있었겠지요.
그래도 신앙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하늘의 뜻이겠지’, 그렇게 10년을 지냈는데,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신앙인이어도 그렇지, 내 인생은 뭔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수동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도전적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혼자 컴퓨터를 배우고, 사람들과 얼마간의 돈을 모아서 인터넷을 설치하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엿보기 시작했어요.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결론은 내렸는데 무언가를 실천으로 옮기기 힘들었죠. ‘과연 내가 시설에서 나간다면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솔직한 이야기로,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도 10년 전만해도 시설에서 나간다는 거,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거든. 답답하지만 누가 해결해 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니까, 누구하고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해본 적은 없어요. 가족과 이야기해봤냐고요?
가족, 이해와 부담
어머니는 십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난 임종도 못 지키고. 명절 때 집에 갔다가 알았으니까. 다들 슬퍼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죠. 난 엄연히 가족인데. 근데 왜 나한테 이야기를 안했는지 알잖아요. 어머니가 살아계셨다 하더라도, 어차피 답은 뻔했을 거야. “그냥 거기서 살아라.” 어차피 빤한 답을 듣게 될 텐데 노인네 걱정하게 뭣 하러 이야기해요. 굳이 이야기 할 필요 없지. 서로 부담만 느낄 테고. 그렇다고 원망은 없어요. 난 그런 거 없어. 가족들도 나름의 생활을 가져야 하니까. 그 사람들이 나 때문에 자기 생활을 못하는 건 안 되잖아요. 그 사람들도 각자 자기 삶을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가끔은, 차라리 가족이 없었더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설에서 뛰쳐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솔직히 시설생활인비대위(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언론에 나간다면 혹은 요양원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해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골치 아파지잖아. 가족을 이해하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지만, 부담스러운 존재, 그것이 나와 가족의 모습이에요.
꿈이니까, 이해가 가나요?
막상 나가려고 하면 방법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 시설에 살면 영구임대아파트 분양도 안 되죠. 활동보조도 터무니없이 작잖아요.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 사실은 그것이 제일 걸림돌이지요. 그것만 아니라도 당장 뛰쳐나갈 텐데요. 하하.
물론 나가는데 성공하더라도 어려울 거야. 어려운건 나도 알아요. 먹고 살 걱정해야 되니까. 그건 아는데 그래도 나와야 돼. 뭐 시설에 있는 게 몸은 편할 수 있겠지요. 몸은 편할지도 몰라. 근데 그건 아니거든요. 장애인도 사람이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난 개나 돼지가 아니니까. 난 사람이라고. 난 세상에서 세상과 부딪치며 살고 싶지 남의 도움 밑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단 한 달만이라도 내 나이대의 평범한 남자처럼 밖에서 살아보고 싶고, 단 하루를 살아도 밖에서 살고 싶어요. 그게 내 꿈이야.
내가 당장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해도 꿈은 버리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꿈이니까. 이해가 가나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버릴 수 없지요. 설사 그게 안 이루어진다 해도 꿈을 버릴 수는 없지.
덧붙임
한규선 님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살고 있고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 름달효정 님이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