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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아니, 저 어린 것이?”

청소녀/년, 보호주의에 묻힌 성적 자기결정권

시간이 좀 흘렀지만, 촛불집회에서 연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 그 때 기사가 났었는데, 대부분 기사 내용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여중생' 뭐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고 그런 적 없는데…. 그 때 언론들에서는 모두들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저 보내주세요 흑흑….’, ‘한 여중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았었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린 10대 소녀로, 그 기사들은 절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은 보호해줘야 할 약자,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언제부터 나는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을까요? 왜 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일까요? 연행당할 때 '미성년자는 풀어줘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남아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때, 항상 따라오는 건 내가 '청소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이 유해환경인가요?

청소녀/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난다 님

▲ 청소녀/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난다 님

청소년이라 못하고, 안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일단 술 담배 마음대로 못 삽니다. 찜질방도 10시 이후로는 보호자 없이는 출입 못 하고요. 숙박시설도 보호자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잠 못 자고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밖에 나와도 잘 곳이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은 다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건데, 그 유해환경에 '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돼 우리가 다시 한숨 쉴 수밖에 없게 만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관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고,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해주겠다는 말 속에 권력 관계가 있는 거고,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나 억압, 지배가 있게 됩니다. 보호라는 말로 차단시켜 놓음으로써 격리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고요.

보호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보호만 싹 없앤다면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만 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노력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성을 통제해서 막겠다는 것은 문제를 덮어 놓거나 어느 선에서 눌러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청소년의 성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너희들, 잘못하면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이죠.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낙태'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낳아서 어쩔 건데?'가 되어버리는 거죠. 또 사회적인 시선들, '아니, 저 어린 것이!' 하는 비난의 눈길. 하지만 청소년이 임신했을 때, 낳아서 양육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사실 낙태 비율만 놓고 보자면,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제일 높다고 해요. 임신을 하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아이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육 문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는 사회의 문제인 거죠.

보호주의에도 성별 차이가 있어요

여자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밤이 위험해지는 환경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니까 그냥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건 안 되겠죠. 어찌 보면 밤길 이야기는 청소년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보호'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청소년기를 벗어나도 여성인 경우 집 안에서 외박을 금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지요. 제 연행 사건에 대한 기사도 사실은 제가 남성이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호'에 있어서 청소년 사이에서도 성별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요.

특히 성, 섹스에 관해서는 나이보다 성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당연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주위에 숨겨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청소년이 섹스하기엔 사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 등등. 그런데 청소년의 성을 금기시하는 것도 있지만 비혼의 성, 그것도 비혼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혼부는 없고, 비혼모는 있지요. 임신 후에도 여성 청소년에게만 더 많은 성적 통제가 가해지고, 남성 청소년의 경우는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고요. 남성 청소년의 성경험이 여성 청소년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통계도 있고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성 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에게 훨씬 관대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만 주어져 있다면 권리가 아니라 권력이죠!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 섹스를 하지 않을 권리는 어쩌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에게도, 청소년에게도, 성적 자기결정권 있는 거야! 당연히!”라는 이 당연한 말이 왜 현실에서는 부정되는 걸까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게 남성들에게만 허용되는 권리라면 그건 권리가 아니라 권력이잖아요? 성적 자기결정권이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권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성폭력이 일어나게 되거나 상대적으로 여성이 착취당하하거나 하는 구조적인 폭력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끄덕끄덕 맞장구]

난다 님의 글을 읽으니 여러 가지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왜 청소년의 성을 사회가 금지할까, 언제부터 금지되었고 왜 금지되었어야 했나, 청소년에게 성이 과연 위험한가, 위험하다면 누구에게 위험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그동안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 내부의 성별 권력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학교가 두발규제를 하면서도 여학생의 머리 길이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할까? 여학생에게 머리를 더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은 과연 관대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통제일까? 왜 청소년 인권활동가 중에는 십대 여성이 별로 많지 않을까? 왜 청소년 인권모임 안에서도 연애가 깨지면 여성이 활동을 그만두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는 걸까? 학교 안 성희롱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생리결석 문제는 왜 청소년 인권운동 안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나?

아직 우리 사회에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만들어지지 못했지요.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국제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난다 님이 얘기한 것처럼 나이주의나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억압 등 넘어할 고개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청소년과 관계된 성폭력 사건이나 청소년의 성경험 등을 다루면서도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들을 흔히 보게 되고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성에 대한 솔직한 자기 경험과 어떨 때 성별 권력관계에서 억압을 느끼는가에 대해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요? 그게 중요한 첫 출발이 될 수 있겠지요. [배경내]
덧붙임

* 난다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청소녀입니다. 이 글은 8월 20일에 열린 ‘청소녀/년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한 쟁점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고쳐 쓴 것입니다.

*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