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발언 신청 받습니다.
이번호부터 자유발언대 꼭지를 신설합니다. 인권관련한 사안에 대한 주장에서부터 자신이 당한 인권침해 사실까지 어떤 내용도 좋습니다. 또 형식도 산문, 시, 수필 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받습니다. 다만 인권에 반하는 주장을 하려는 이들의 신청은 사양합니다. 자유발언대는 열려 있습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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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 교과서 개정논란의 흐름
교과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부터 교과서 수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왔다.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은 지난 5월 공개 석상에서 “현재의 역사교육은 편향돼 있다”며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어 7월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현재 교과서가 좌편향 돼 있어 청소년들이 반미․반시장적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 국무회의에서는 이러한 김도연 당시 교과부장관의 보고에 대해 한승수 국무총리 또한 “교과서를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각 부처가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취합해 교과서를 통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야권과 진보학계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하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각계의 교과서 수정 요청이 시작되었다. 교과서 개정에 대한 각계 요청은 항상 있어 왔지만 올해 정권이 바뀌면서 교과서 수정에 대한 보수단체의 주장이 한층 더 거세졌다. 지난 10년간 ‘좌편향’ 되었던 교과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전면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교과서 수정․보완을 요구한 기관 및 단체는 모두 19곳으로 수정을 요구한 수정 건수는 3732건이다. 논란의 핵심에 놓여 있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와 관련한 개정의견을 낸 곳은 국방부, 통일부, 대한상공회의소 세 곳이다. 특히 국방부는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고 제주4․3사건을 ‘좌익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상식 이하의 개정요구를 하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손발이 척척. 시․도 교육감들도 나서
또한 9월 초에는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편향된 교과서를 일선학교에서 선정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교장이 근현대사 교과서 채택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벌써부터 교육감들의 발언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교과부 장관에 이어 교육감들까지 나서 특정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은 집필자들의 ‘자기검열’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교육감들이 직접 나서 자기들 의도에 맞지 않는 교과서는 걸러지도록 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집필자들이 정부의 역사관을 고려해 스스로 사전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교과서들이 나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과부는 현재 교과서 수정 요구 의견을 모두 모아 국사편찬위원회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이고, 편찬위원회는 개정 요구 의견의 타당성 여부를 따진 뒤 10월 중순쯤 분석내용을 교과부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과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이념논쟁만 남고 학생을 위한 고민은 없어
교과부의 역사교과서 개정 발언이 나온 이후 수많은 논쟁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논쟁 속에서 그 누구도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에 대한 고민은 제기하지 않았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이념을 뜯어 고치기 위해 ‘교과서의 의미’를 운운하며 학생들을 망칠 것이라고, 저마다의 이념이 진리인양, 중립인양 이념논쟁만 하기에 바빴다.
교과서는 근대교육의 생성물이다. 노동과 삶을 통해 후대로 이어지던 예전의 교육이 근대에 들어서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과서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근대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수동적이고, 애국심 강한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전히도 주입식 교육이 판치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교과서에 드러나는 이념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교과서 이념논쟁을 보며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는 교과서 서술내용과 서술방식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관점만을 ‘단정적 서술형’ 문장으로 교과서의 내용을 외우게만 만들고 있는 교과서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이념논쟁은 끝나지 않고 학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는 이성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 걸 맞는 교과서는 다양한 고민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져야 한다. 국가가 정해준 교육과정과 내용들이 하나의 미리 고정되어 있는 진리로 여기며 소위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서 이미 정해진 ‘정답’에 대해 의심을 품지 말고 일단 외워야만 하는 교육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서에 주어진 주제들을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로봇일 수 없어
지난 촛불집회에 쏟아져 나온 중․고등학생들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저마다 그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를 분석하기에 바빴다. 누군가는 ‘논술교육’의 결과라 하였고, 누군가는 386세대를 부모로 둔 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였다. 수많은 분석들이 나왔지만 그 분석들의 공통전제는 아이들을 ‘수동적 주체’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다하여 부당함을 외치러 나온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다 누구 덕이다’라는 껍데기를 씌우느라 바빴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에서 학생들을 ‘주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정도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교육의 도구로서의 ‘교과서’를 장악한다면 그들의 신념, 그들의 ‘충성’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한홍구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MB정권이 꿈꾸는 교과서보다 ‘더 쎈’ 교과서로 공부했던 학생들이 대학에만 갔다 하면 다 ‘극렬 좌경 용공’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념을 주입식 교육으로 세뇌만 시키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을 우매한 어른들의 자의적 판단일 뿐이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교과서 논쟁은 ‘학생들을 위해 진정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가?’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 현지 님은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