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인권을 꿰고깨고]의 필자였던 박래군 활동가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번호에 [인권을 꿰고깨고] 기사를 싣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박래군 활동가가 재판부에 보낸 공개서신을 <인권오름>에도 게재합니다. "무책임하게 도피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장담당 재판장께
저는 귀 재판부가 기일을 잡은 영장실질심사에 두 번이나 불출석하였습니다. 오늘로 구인장이 만료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재판장께서는 저의 신변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심중으로는 아마도 영장 발부를 결정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법정에 출두하여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나갔다가 구속된다면, 지금 제가 맡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법정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검찰이 말하는 것처럼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도피’ 중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 일신이 구속되는 것이 두려워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재판장께서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면서 지낸 날이 오늘로 두 달이 되었지만, 아무런 일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 올라갔던 망루에서 불에 온몸이 타버린 시체로 내려왔던 철거민들입니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어버리고도 도리어 테러집단이니 자해공갈집단으로 망자가 모독당하는 꼴을 고스란히 본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주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버티는 동료들이 용역에 매 맞고, 경찰에 끌려가고, 망루에 올랐다가 부상당해 지금까지 입원해 있지만 아무데도 하소연할 데 없는 철거민들이 있습니다. 두 달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다시 폭력적인 철거와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6명이나 죽은 사건을 공권력으로 누르며 그대로 묻고 가려는 현 정권의 방향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이라도 출두해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된다면 저는 오히려 편할 것입니다. 인신의 자유는 지금보다 더 제한될 것이지만 이 무겁고 버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짓입니다. 이십년이 넘는 세월 나름대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권활동가로서는 일신의 편함보다는 무겁더라도 함께 짐을 지고 이 일의 해결을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으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것은 실정법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용산화재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한과 눈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자 함이며 제가 스스로 짊어진 책임에서 도피하지 않고자 함입니다.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유가족들과 경찰의 연행과 탄압에도 끈질기게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많은 이들과 함께 유족들의 한을 풀고 돌아가신 철거민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한 뒤에 성심껏 장례를 치루고 법정에 출두하려 합니다. 국가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졌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고통이 있었는지 분명히 법정에서 진술하려고 합니다. 헌법과 국제인권조약들이 보장하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들이 대한민국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얼마나 쉽게 부정되고 있는지도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불어 실정법상 제가 받아야할 처벌이 있다면 그 역시 받아들일 것입니다.
피하지 말아야 할 책임
검찰과 경찰은 서전구속영장 청구에서 밝힌 범죄사실 항목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가 해왔던 일들을 모두 범죄시하고 있습니다. ‘전과 8범’이라고 명시하면서(지난 1월 확정된 집행유예 건을 추가하면 9범) 시작되는 범죄 사실은 무려 15쪽에 이릅니다. 그 범죄 사실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MB 악법 저지 비상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입니다. 차별에 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반민주, 반인권 악법들을 무더기 날치기 처리하려는 것을 저지하려던 그런 일들이 인권옹호활동을 벗어난 불법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일들입니다. 지난 1월 19일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 소속 회원들과 전철연 소속의 다른 단위 철대위 회원들이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에 망루를 지었습니다. 철거저지투쟁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 망루는 공격용이기보다는 방어용입니다. 다른 철거지역에서처럼 용산4구역에서도 용역깡패들의 협박과 모욕, 폭행은 이미 무법천지의 그것이었습니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세상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처음에는 용역과 경찰들을 향해서 화염병도 던지고, 새총으로 골프공도 쏘면서 저항했지만, 일단 망루를 쌓는데 성공하자 1월 19일 오후에는 휴식도 취하면서 건물 옥상에서 안타깝게 건너다보는 가족들을 향해 머리 위에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이웃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저씨와 형님들인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권력 핵심부는 19일의 상황을 도심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과장했고, 곧이어 특공대까지 투입하는 진압작전을 성안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이,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삼성물산과 같은 건설자본의 힘이 이 잔인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도록 경찰을 움직였습니다.
1월 20일, 철거민들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1월 20일 새벽, 새벽 6시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살인진압계획은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1시간동안 그 겨울날 물포로 공격해대고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박스를 올려 특공대를 투입하고, 용역과 합동작전을 펼쳤습니다. 1차 화재가 났던 7시 5분경, 특공대는 망루에서 빠진 상태에서 다시 공격이 감행됩니다. 그때에라도 진압이 중단되었다면, 그리고 위험천만인 망루에서 그들을 구해내려고 했다면, 그들은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전기에서는 연신 ‘죽여!, 죽여!’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연행된 철거민들은 죽을 정도로 맞고 기절해버렸습니다. 그리고 7시 20분경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망루는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그 안타까운 절규들 속에, 간신히 불길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이 베란다 난간에 매달렸다가 떨어지고, 그리고 다른 이들을 구호하기까지 했던 이성수, 윤용헌마저 새까맣게 불에 타버린 시체로 발견되었던 그날, 거기에는 생명을 가진, 존엄성을 지닌 인간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체가 되어 그곳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만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검찰은 27명의 검사와 백 명 가량의 수사인력을 동원하여 검찰수사본부를 설치한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시신을 압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강제부검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폭행의 흔적을 지워버리기라도 할 요량으로 서둘러서 부검했고, 시신인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쳐 울부짖는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한 것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가능했습니다. 검찰의 수사는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에 맞춰져야 했고, 참사를 부른 재개발 조합과 시공업체, 그리고 정비업체, 철거용역업체, 구청, 시청과의 비리사슬들을 겨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20일 동안 어마어마한 수사인력을 동원하여서 내놓은 결론은 경찰은 정당한 공무집행을 수행한 것뿐이고, 농성 철거민들이 자신들도 죽을 줄 모르고 화염병을 던져서 집단자살을 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경찰 죽은 책임을 물어서 공동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런 뒤에 불구덩이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집회도, 평화적인 행진도 경찰은 단 한차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차량을 동원해 집회 장소를 원천 봉쇄했고 엄청난 경찰병력과 장비들을 동원하여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척적으로 침해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경찰은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3월 11일부터 용산4구역에서 용역회사 직원들을 앞세우고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폭력철거와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온갖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재개발 조합도, 폭력의 온상이었던 호람과 현암 철거용역업체가 동원하는 깡패들도 그대로입니다. 시공업체인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포스코건설도 그대로인 채, 건설자본만 수조 원대의 이익을 남기고 세입자들은 빈손으로 쫓겨나야 하는 재개발 계획도 단 한줄 수정이 없이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민들은 포크레인 바퀴 앞에 드러눕고 힘에 부치는 용역직원들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유가족들의 심정
유가족들은 아마도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죄스럽게 살아남았다는 뜻의 그 유가족들은, 매일매일 돌아가신 이들과 함께 삽니다. 전화 올 때가 되었는데, 술 한 걸치고 문을 열고 돌아올 시간인데, 그이가 밤에 들어와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먹을 텐데…온갖 추억들이 생생하게 살아서 그들을 괴롭힙니다. 어떤 어머님은 영정 앞에 멍하니 앉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웁니다. 소주 한잔 힘을 빌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고 추모대회에서 경찰 방패에 맞아 깨어진 아버지 영정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자식의 한을 눈물로 삭혀야했습니다. 경찰에 맞아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수술을 받은 아들은 목발을 집고라도 추모대회에 나가고 싶어합니다. 아침 7시에 아버지 영정에 문안인사를 하고 책가방 대신 세상에 대한 원망과 한을 짊어지고 등교하는 어린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이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이미 20여 년 전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동생을 잃어본 유가족인 저로서는 앞으로 유가족들이 어떻게 이 한 맺힌 삶을 살아갈 것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망루에 올랐다가 생존한 농성 철거민들은 그때의 폭행과 죽음의 바로 앞까지 갔던 그 공포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이들을 두고 어찌 저만 편한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재판장님, 글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검찰과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도피 중이 아니라 용산범대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용산범대위 일로 바쁜 중에도 남대문서에 자진출두하여 2회에 걸쳐서 16시간 이상을 조사에 응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은 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도주의 의사도 없고, 인멸할 증거도 없는 저에게 경찰 조사 이틀 뒤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들의 부당한 탄압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용산범대위 다른 집행간부들에 대한 탄압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당한 탄압으로 용산참사 문제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강력한 탄압만으로 일관하는 공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길은 오직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법원의 판단밖에는 없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기대하며
순천향병원에는 경찰들이 제 사진을 들고 저를 검거하겠다고 배치되어 있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어딘가 개나리도 피고, 벚꽃도 피었다고 하는데, 저는 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갇혀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 딸들을 얼굴도 보지 못하고, 팔순 노인이 되신 부모님 농사도 거들지 못하고, 서울과 수원의 사무실에도 갈 수 없고, 동지들과 함께 집회에도 나가지 못하는 이 답답함, 그리고 이 끝에는 구속되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야겠지요.
앞으로 범국민 청원․고발운동도 성사시키고, 국민참여재판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고, 용산4구역에서 폭력이 없고, 주거권이 보장되는 그런 재개발의 모델을 만든 뒤에 성심껏 장례를 치러 철거민 열사들의 한 맺힌 원혼을 달래드리고 나면 제가 해야 하는 일의 최소한의 책임이 끝날 것입니다. 그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법정에 서서 잘못이 있다면 처벌을 받고 부당하고 억울한 부분들에 대해서 밝힐 수 있도록 재판장님께서 배려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일을 마무리한 다음 반드시 재판을 받겠습니다. 재판장님과 저를 믿어주고 아껴주는 모든 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법정에 출두하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3월 20일
피의자 박래군 드림
덧붙임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