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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그놈의 보호주의가 대체 뭐길래?!

청소년 보호주의 아작아작 씹어먹어 보니…

'레드존(청소년 금지구역)을 탈출하라!‘ 지난 4월 11일 오후 3시, 레드존 탈출이라는 미션을 갖고 청소년 보호주의를 아작아작 씹어 먹어보자는 '빨강 물고기'가 열렸다. 빨강물고기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준비한 인권놀이터다.

보호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고 새롭기도 했다. 그 후 동생 앞에서 보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보호주의를 반대하면서도 때때로 이용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혼란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다가 빨강물고기에서 보호주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고민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슬쩍 놀러가는 기분으로 참여했다. 그럼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스타트!


보호주의 vs. 보호주의 탈출하기

[1] 담배를 살 수 없는 청소년. 비청소년인 당신에게 담배 값은 줄 테니 담배 좀 사다달라고 조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

[2]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청소년. 오늘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비청소년인 당신에게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3] 당신은 교사. 그런데 당신의 학교 앞에 어떤 인간들이 일제고사 반대 어쩌구 이러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당신의 선택은?

[4] 당신은 청소년. 집에서 야동을 보고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뭐라고 할 것인가?

이 네 가지 상황을 모둠마다 하나씩 나눠가진 다음, 보호주의를 벗어나서 이 상황에 대처한다면 과연 어떻게 할지를 의논해서 상황극으로 발표했다. 제시된 상황들은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한번쯤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본 적이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 때문인지 비슷한 경험과 고민이 풀어져 나왔다.


첫 번째 상황에서 보호주의 입장에서는 “어린 게 싹수가 노랗구만! 담배는 무슨 담배야! 너 학교 어디야!”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럼, 보호주의를 벗어난 비청소년이라면? 상황극에 등장한 비청소년은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당신이 청소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담배 자체에 대해 반대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설득할 기회도 주지 않고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법을 이용해서 가로막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담배를 사주긴 할게요.” 그러나 이 비청소년은 결국 담배를 사지 못했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느라 신분증을 발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극이 끝나고 담배나 술 같은 것들이 왜 청소년들에게만 금지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담배나 술이 나쁘다면 그걸 규제해야지 왜 청소년만 규제할까, 19살 마지막 밤까지는 몸에 너무 안 좋다가 자정을 넘기고 20살이 되면 괜찮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다 “대학이란 하나의 출구만 만들어둔 채 청소년들이 그 출구만 바라보도록 다른 모든 욕망을 통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건강 건강 하지만 진짜로 우리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일꾼이 될 몸, 아이를 낳을 몸’으로만 생각하는 거 아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내가 함께했던 팀에서는 두 번째 상황극을 만들었다. 보호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외박은!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다음날 학교도 가야 하구. 어서 집에 들어가!”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청소년은 무조건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 특히 '여자는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소년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안 되는 걸까? 학교라는 틀에 꼭 매일 들어가야 하나? 밤거리가 위험하면 위험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면 되지 왜 청소녀의 발을 묶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갖고 우리 팀에서는 외박을 하겠다는 청소년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쪽을 택했다. 그렇지만 거짓말은 노노~ 거짓말을 하는 것도, 거짓말을 부탁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청소년들이 왜 거짓말을 하게 될까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꾸만 이런저런 이유로 청소년을 가두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거짓말을 해서 숨 쉴 구멍을 만드는 게 아닐까?


세 번째 상황에서는 보호주의에 물든 교사라면 “애들이 뭘 안다고 이런 서명을 받아? 우리 애들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얼른 치워!”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알고 들을 권리, 정치에 참여할 권리, 청소년의 주체성을 아예 무시하는 입장이다. 반면 이 상황극에 등장한 교사는 “비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다 성숙하지 않은 것처럼 청소년도 다 미성숙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잘 모른다면 그만큼 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학생들을 불러모아 서명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일제고사 문제라면 청소년이 당사자인 만큼 충분히 알 기회를 주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당연하다. ‘너희는 어려서 몰라’라는 식으로 정치와 담을 쌓게 하고 감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야동을 보는 것도 권리다?

야동을 보고 있는 동생을 발견한 마지막 상황은 좀더 상황이 복잡하다. 청소년이라고 보호주의적 입장을 가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야동이라는 것 역시 그냥 넘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청소년이라면 “뭐 이런 걸 보냐! 얼른 안 꺼?!” 이런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 상황을 맡은 모둠에서는 동생이 보고 있는데 뭐라고 하면 반발할 수 있으니까 일단 모른 척 한 뒤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발표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보호주의는 ‘보지 마!’ 하고 금지하는 입장이고, 보호주의를 벗어난 것은 ‘네 자유니까 난 상관 안해!’ 하고 외면하는 입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야동에는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성(性)에 대한 청소년의 권리, 야한 것을 볼 동생의 권리는 인정되어야 하지만, 야동에 담긴 내용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또 하나, 비청소년들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 한 가지! 왜 그렇게 성적인 장면은 못 보게 난리를 치면서 집단구타나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관계가 미화된 장면이 수두룩한 드라마나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 보는 걸까?

우리도 보호주의에 길들여져 있었네!

상황극을 보며 쟁점토론을 하고 난 다음에는, 보호주의를 벗어나려고 하는 우리들조차 보호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자기고백(?)을 말풍선에 적는 시간을 가졌다. 청소년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보호주의를 비판하지만, 사실 스스로 켕기게 행동하는 경우도 되게 많다. 말풍선에 담긴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비청소년들과 밥을 먹을 때 돈을 미리 준비하지 않거나 당연히 돈을 안 내도 된다고 나도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어. 사실 가난한 비청소년도 많은데…….”
“비청소년이 나에게 무턱대고 반말 쓰는 건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나보다 나이 어린 청소년을 보곤 내가 반말을 쓰고 있더라.”
“청소년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달라고 얘기하면서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걱정되고 챙기게 되더라.”
“행사 끝나고 청소년들은 놀고 흥겨워하고 있을 때 비청소년들이 알아서 뒷정리할 때. 청소년은 행사에 초대받은 거고 비청소년은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인가?”
“‘청소년을 왜 잡아가냐?’ ‘청소년을 석방하라’ 이렇게 얘기할 때 좀 켕기는 게 있지.”

스스로 찝찝했던 부분들을 톡 까놓고 이야기하고 나니 다들 얼굴이 불그스레해졌다.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청소년도, 비청소년도 보호주의에 물들어 있거나 보호주의를 이용해 편한 길을 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 보호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고 그만큼 강렬한 것이다.

우리가 찾아냈던 실마리들

이 날 했던 이야기들은 청소년과 비청소년 모두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던 것 같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특히 가장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건 ‘보호주의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청소년을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우리가 보호주의를 탈출하기 위해 찾아낸 이런저런 실마리들은 여전히 미흡하고 혼란스럽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고민을 해나간다면 ‘청소년 보호주의와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분리할 수 있겠지. 그리고 물론 우리 속에 숨어있는 '보호주의'의 조각들과 혼란스러움도 극복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끄덕끄덕 맞장구] 보호주의는 참으로 질긴 껌이야~

안녕~쩡열.

이번 빨강물고기를 준비하면서 청소년보호주의(아래 보호주의)를 아작아작 씹어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더랬지. 하지만 쩡열의 말대로 요 놈이 여간 질긴 녀석이 아니더라구. 그대 말대로, 보호주의를 넘어선 관계, 보호주의를 넘어선 세상은 여전히 희뿌옇기만 해. ‘보호주의를 넘어서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해답을 당장 내놓을 수는 없다 해도 보호주의가 미심쩍은 이유, 시비를 걸고 싶은 이유를 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자.

보호주의나 그 결정체인 청소년보호법을 보면 청소년은 이런 존재로 규정되고 있지. 나약하다, 충동적이다, 자기규제 능력이 없다, 스폰지 마냥 쪽쪽 받아들인다, 본대로 따라한다 등등. 그래서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고 제대로 보호하려면 ‘하지 마!’, ‘보지 마!’, ‘가지 마!’, ‘민증 까봐!’와 같은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 여기엔 청소년에 대한 털끝만큼의 존중도, 대화의 여지도 없어. 이래서야 청소년 인권 주장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 턱이 있나.

게다가 보호주의는 엉뚱한 곳에만 왕 쫀쫀 감시시스템을 쳐두고 있어. 청소년 보호를 그토록 읊어대는 사람들이 체벌이나 청소년노동 착취 현장에는 왜 그토록 관대한 걸까. 게다가 ‘약자’라서 보호가 필요하다던 청소년이 자기 힘을 보여준다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잖아? 그런데 요놈의 보호주의는 그게 여간 달갑지 않은가봐. 지난해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조갑제라는 양반이 야간 광화문을 청소년 통행제한구역으로 정하자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은 속셈이 뭐였겠어? 청소년이 정치적 힘을 드러내는 것을 억누르고 싶었던 게지.

그렇지만 보호주의를 막상 벗어던지고자 할 때 우리 자신도 주저되는 점들이 있지. 담배나 폭력매체, 폭력적인 성 경험 등이 청소년에게 나쁜 건 분명하지 않나? 뭔가 ‘보호’가 필요한 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지. 이럴 때면 나도 머뭇거려지곤 해. 하지만 무언가가 청소년에게 더 나쁠 수 있다는 ‘차이’에만 주목하다 보면, 본래 문제였던 것은 그대로 둔 채 청소년 접근을 막는 데만 골몰하게 되더라고. 반면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나쁠 수 있다는 ‘동질성’에 주목하면, 본래 문제였던 것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를 찾게 되지. 그래서 후자가 더 현명한 길이 아닐까 싶어.

물론 보호주의를 없애자는 말이 청소년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없애자는 말로 오해되어서는 곤란할 거야. 청소년이 보호자로부터 독립해 생활하고자 할 때, 보호주의가 나쁘다고 했으니 너 알아서 살라는 식으로 대해선 안 되지. 경제적 약자임을 고려해 소득과 주거를 보장할 방도를 찾아줘야 해. 청소년고용금지업소에서 일하는 청소년을 발견했을 때도 무조건 일하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더 괜찮은 일자리를 지원해 줘야 하고. 사법절차에서나 학교 징계절차에서 청소년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보조인 동석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지. 물론 그 보조인이 청소년의 의견을 거슬러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보호주의를 넘어선 관계와 질서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일단 보호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구. [배경내]
덧붙임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