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RNA정량검사는 면역검사, 내성검사와 더불어 HIV/AIDS감염인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효과를 판단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검사이다. 정량검사와 면역검사결과는 에이즈치료제 복용을 언제 시작할지,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경우에 치료효과가 개선되지 않거나 건강상태가 나빠지면 내성검사를 하는데, 이것은 약에 내성이 생겼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약에 내성이 생겼을 경우 약을 바꾸게 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RNA정량검사를 7월 1일부터 민간기관(의료기관 및 임상검사센터)에서 시행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 내성검사도 민간기관으로 이관할 예정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민간기관으로 정량검사를 옮김으로써 환자부담금이 특진비명목으로 최고 73,230원이 생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량검사와 면역검사를 의료기관에서 할 경우 특진비는 최대 101,500원까지 증가하게 되고, 내성검사까지 의료기관으로 옮겨지면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특히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감염인의 경우, 한 달에 약 40만원(1인가구 기준)의 수급비를 받아 10만원 가량의 검사비를 내라는 것은 검사를 받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HIV/AIDS감염인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지속적인 에이즈치료를 가로막는 이번 조치에 대해 그 도입배경을 묻고, 대책을 촉구하기위해 감염인들은 6월 29일에 질병관리본부와 면담을 하였다. 질병관리본부는 특진비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못했다며 감염인의 의견을 듣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를 하였고, 유예기간을 두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질병관리본부는 검사체계 변화에 대한 결정과정 및 대책에 대해 아무런 답변없이 검사를 민간기관에서 수행하도록 강행하였다. 삼성병원에서는 7만 원이 넘는 정량검사 특진비를 부과하는 일이 발생했고, 서울중앙병원 등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질병관리본부가 7월 9일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감염인이 증가함에 따라 검사건수가 매년 증가하여 검사결과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약 30일 소요) 감염인 진료에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검사기관을 확대하면 검사결과의 신속 하게 확인(약 7~15일 소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검사결과가 신속하게 확인되면 좋은 점이 있다. 치료과정에서 검사결과를 빨리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감염인에게 검사결과의 신속한 확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통 3개월마다 1번씩 병원을 가기 때문이다. 신규 감염인이 처음 검사를 할 때, 수술 등을 앞두거나 약물에 내성이 생겼거나 입원중인 감염인의 경우에는 검사결과를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 의사가 질병관리본부에 신속하게 검사해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는 일이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인력과 장비를 더 갖출 수도 있는 일인데, 일괄적으로 의료기관으로 이관하는 방법을 택한 이유가 뭘까?
HIV정량검사 이관의 속내
환자입장에서는 검사를 어디에서하든 검사질이 보장되고 필요한 때에 어떠한 장벽 없이 검사를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의료기관으로 이관한 것에 대해 감염인이 우려를 한 이유는 민간중심의 의료체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첫째, 특진비 발생으로 드러났듯이 환자의 부담이 발생했다. ‘선택진료’를 받는 대신 환자가 특진비를 부담하도록 되어있는데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감염인을 진료하는 병원은 대학병원, 종합병원급이기 때문에 거의 자동으로 ‘선택진료’를 받게 된다. 둘째, 감염인에게 필수적인 검사가 ‘돈벌이 대상’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2008년 12월말 기준으로 신고된 누적감염인은 6120명, 생존감염인은 5036명이었다. 생존감염인 5천여 명이 평균적으로 3개월마다 정량검사를 받는다면 연간 2만 건이다. 이에 대한 보험수가는 약 30억 원이고, 특진비를 고려하면 45억 원이 의료기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감염인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재정지출이 큰 검사이다. 더욱이 정량검사보다 더 비쌀 내성검사까지 의료기관으로 이관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셋째,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필요’에 따라 검사장비와 인력을 갖출지도 미지수이다.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진료거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감염인들에게는 당연한 우려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정량검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성검사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에서 꺼려했다고 한다.
특진비 부과에 따른 감염인의 부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가 고려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시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이 강행하여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자 질병관리본부에 책임을 촉구하기위해 감염인들은 어제 질병관리본부를 다시 찾았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과장은 우리를 보자마자 ‘이거 뭐하는 짓이야? 무슨 피해가 발생했어?’라고 했다. 당장의 피해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검사를 의료기관으로 옮기고 나면 질병관리본부는 검사에 대해 어떤 개입도 책임도 지지 않고 손을 털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질병관리본부장실에 앉아버리자 실무부서인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에서 나왔다. 의료기관에서 그동안 많은 불평을 제기했다고 했다. 검사, 치료 등은 의료기관에서 해야지 왜 질병관리본부가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잡한 내성검사는 질병관리본부에서 하란다. 결국 이것이었구나. 그래서 더 괘씸하다. 감염인에게 신속하게 검사결과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며 포장을 했으니 말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에 특진비 면제요청을 해놓았으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라고 했다. 각 병원들이 현재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시급한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병원 한곳이라도 특진비를 부과하면 다른 병원들도 특진비를 부과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검사에 대한 보험수가인상 압박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치료권을 방기한 질병관리본부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와 관련한 정책을 결정할 때 감염인의 참여는커녕 감염인의 필요와 처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유엔에이즈(UNAIDS)는 감염인을 통제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정책결정의 ‘참여자’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길 때 에이즈유행에 대처할 수 있다고 하였다. 2월 26일에 감염내과 교수 2인,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7인, 질병관리본부 6인이 참석한 가운데 정량검사, 내성검사를 민간기관으로 이관할 것을 결정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특진비 발생으로 인해 환자의 치료권이 제한당할 것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았다.
둘째,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인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해야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감염인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나 전망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푸제온’을 비롯한 에이즈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촉구했을 때도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할 일이라며 상황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검사도 의료기관으로 이관하면 이제 질병관리본부가 아니라 의료기관에 가서 항의하라고 할 것이다.
셋째, 이제 돈벌이가 될 만하다고 판단한 의료기관이 나섰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감염인들은 진료를 받을 병원이 없었다. 감염인 수도 적고, 병원에서조차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병원 이미지때문에 진료를 거부했다. 감염인 수가 증가하고 있고, 에이즈는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지속적으로 적절한 약을 복용하면서 평생 관리해야하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돈벌이 대상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번 정량검사 이관은 감염인을 배제한 상태에서 감염인의 치료권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없는 질병관리본부와 돈벌이에 나선 의료기관의 합작품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감염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덧붙임
권미란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