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기숙사는 당연히 여남 공용…일 리는 없고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가 마주 보고 따로따로 있었다. 어느 가을날, 내가 속해 있던 만화동아리는 중간고사가 끝난 걸 축하하며 동아리 회식을 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노래방으로 고고씽. 주구장창 일본음악에 애니메이션 OST를 불러대서 ‘일반인’들과는 도무지 눈치 안 보고 노래방을 즐길 수 없는 인간들이 많았던 동아리 특성상 회식 후 노래방은 나름 필수 코스였다.
그렇게 노래방까지 갔다가 기숙사 근처까지 왔을 때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반쯤. 조경이 잘 되어 있는 학교를 다닌 터라, 기숙사 옆에는 나무들과 잔디가 살고 있는 공터가 있었다. 해가 붉은 색조를 띠기 시작하고 조금씩 어둑어둑해져갈 무렵, 그 공터에서 만화동아리 사람들 10여 명이서 얼음땡과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그런데 채 30분도 하기 전에 여학생들이 가야 한다면서 빠지는 게 아닌가! 왜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대답. “기숙사 통금이 8시.” 남자기숙사에만 살아봐서 통금 시간은 여남 기숙사 똑같이 10시인 줄만 알았던 나는 그야말로 깜놀했다. 8시에 방별로 점호를 하고, 8시 이후에는 기숙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니. (물론 남자 기숙사의 10시 통금이라고 해서 좋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8시는 너무하지 않나?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회식하고 수다 좀 떨다가 노래방 갔다 오면 8시는 눈 깜짝할 새 아닌가. 이처럼 성차별은, 결코 다른 어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밤길을 되찾자, 달빛시위
달빛시위라고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다. “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매년 하는 시위다. 여성들에게 위험하니까 밤중에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여성 단속(?), 성폭력 피해는 ‘야한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닌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 식의 헛소리들, 그리고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사회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라고 외치며 달빛 아래를 누비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는 어떨까? 문득 작년에 있었던 촛불집회 때가 떠오른다. 경찰들은 밤이 깊어지면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밤 10시가 넘었으니 청소년 여러분은 귀가해주십시오.”라고 방송을 해댔다. 한 촛불단체는 집회를 열면서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들을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꼭 촛불집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평소에도 피씨방도 노래방도 찜질방도 모두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금지다. 무슨 청소년들이 신데렐라고 밤 10시가 마법이 풀리는 시간인 것도 아니고. 청소년들이 위험한 밤길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들은 집요하다.(유일한 예외는 학원, 자습 등 ‘공부’뿐이다.) 여성들의 경우에 맞먹을 정도다. 아니, 적어도 여성들의 경우는 밤 10시 이후에 출입금지 이런 게 제도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럼, 여성 청소년들은? 여성이면서 청소년인 그들은 더 많은 제약에 마주해야만 한다. 남자기숙사는 통금 시간이 밤 10시인데 여자기숙사는 밤 8시인 바로 그 차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차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살아보면 이게 그렇게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숙사 통금시간 뿐 아니라 집집마다 있는 ‘통금시간’도 보통 여성 청소년의 경우에 더 이르다. 그냥 밤길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 혹시 외박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청소년들의 외박이 대체로 잘 허락이 안 되지만 여성 청소년들이 외박하겠다고 하면 집에서는 더 난리가 날 공산이 크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체감하게 된다. 같이 밤늦게까지 집회를 하거나 회의/토론을 하거나 놀려고 하면 청소년들은 꼭 집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 그냥 알아서 집에 잘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너그러운 집이다. 외박이 까다롭기 때문에 MT를 가기도 힘들다. 여성 청소년들은 그게 더하다. 밤 9시만 되어도 자리를 떠나는 청소년들은 여성 청소년들이 더 많다. 일반적으로, MT나 밤샘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청소년 활동가들 중에는 남성이 많다.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고미숙은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라고 질문하고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비판적으로 추적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김현철,고미숙,박노자,권인숙,나임윤경『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60쪽)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집(가족)과 학교(그리고 학교의 연장선상인 학원)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청소년들이 밤길을 돌아다녀선 안 되고 외박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속에는 청소년들은 가족(부모, 보호자) 또는 학교(교사, 학원)의 감독과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이 사회의 룰이 있다. 외박은 이런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들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다른 곳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허락받지 않는 외박을 이렇게 부르지 않던가? 가출(家出:가족으로부터 나감.)이라고.
사실 여성들에게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와 청소년들의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는 고만고만하다. 여성들/청소년들에게 밤길은 위험하니까. 여성들/청소년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니까. 그리고 여성들/청소년들은 집에 있어야 하니까.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여성들의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소 약해진 듯하다. 꾸준한 여성운동의 결과로 여성이 남성 가부장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식/청소년들은 부모/보호자들의 소유물이라는 식의 생각이 강고한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데렐라가 되어간다. 밤 8시, 10시, 혹은 12시에.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신데렐라가 되길 거부한다. 80년대에 사라진 통금이 여성&청소년들에게만 존재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밤길을 되찾자!”는 여성들만의 구호가 아닌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르러서 더욱 강고해지는 이 ‘밤길 금지’, ‘외박 금지’ 논리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는 누구보다도 여성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여성주의(페미니즘)와 청소년인권은 바로 이런 지점들에서 만나며 서로 힘을 더해가는 것이다.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