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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3] 국가 폭력과 예술 표현의 자유

자유를 위해 권력과 불화(不和)하는 예술가들

홍성담씨는 저항이 분출하던 80년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그는 80년대 역사가 변화하는 현장 속에 있었다. 79년 남민전 사건, 80년 광주 항쟁, 87년 6월 항쟁 등 첨예한 역사적 현장 속에서, 광주 시민군의 일원이나 현장을 조직하는 활동가로 활동했다. 89년에는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그해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낸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간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4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사회 비판적 실천으로서의 예술

지식인들이 글로써 사회를 비판한다면, 예술가들은 문화예술 작품으로 한다. 사회 비판적 실천으로서 예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문화예술 작업은, 일반적인 문자 매체에 비해 감성적인 측면과 이성적 측면 양쪽을 동시에 발휘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우리 일상의 보편성을 갖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만큼 예술이 갖고 있는 파급력이 매우 큽니다.

게다가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관객이 그것을 관람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해석 행위를 넘는 실천 행위가 됩니다.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당위성을 갖고 현실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건 그 작품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관람하는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예술작품이 다른 것들과 다른 점입니다.”

국가 폭력을 드러내는 예술

화가 홍성담에게 국가 폭력과의 싸움은 평생의 주제다. 광주 항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작업한 50여 점의 판화 연작, 고문과 감옥에서의 경험을 그려낸 1999년 전시회 ‘탈옥’, 지금 준비 중인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을 다룬 연작 등이 그렇다. 재작년부터는 동경, 제주, 서울 등에서 <야스쿠니 연작>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이 연작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 폭력의 핵심으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국가 폭력은, 국가라는 것이 어디까지 참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지요. 그런데 그런 국가 폭력이 지금은 희미한 안개 속, 야스쿠니 신사라는 문화적 상징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야스쿠니가 저런 형태로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일본인들은 국가 폭력에 동원될 정신적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겁니다. 이런 국가 폭력의 상징을 그림으로 드러내 보고 싶었어요.”

야스쿠니의 迷妄 _ 2 / 100 x 41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08.02.09

▲ 야스쿠니의 迷妄 _ 2 / 100 x 41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08.02.09


“그런데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국가 폭력과 한국의 그것은 한 몸이지요. 가령 박정희가 그렇습니다. 여론조사 해보면 국민 70%가 박정희를 지지합니다. 개발과 경제 성장을 위해선 국가가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이 이명박 파시즘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간코쿠 야스쿠니-1 / 130 x 324 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09.08.02

▲ 간코쿠 야스쿠니-1 / 130 x 324 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09.08.02


국가 폭력의 현장에 몸을 담그는 예술가들

첨예한 국가 폭력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홍성담 화가 자신도 80년대 내내 광주 항쟁이나 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군의 일원이나 현장을 조직하는 활동가로서 살았다. 올해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의 현장에는 철거 전의 빈 집을 전시장으로 꾸미기도 했고,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도 마을을 꾸미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런 예술 활동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다.

“모든 땅에는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시대의 고유한 문화가 있지요. 그것이 국가의 토지 강제 수용이나 강제 철거로 단 한순간에 깡그리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예술가들의 작업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새롭게 다시 복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통해 예술의 보편성을 갖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국가 폭력의 문제를 알려낸다는 의미 또한 중요하지요.

또한 그런 국가 폭력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들을 끊임없이 자기화하면서, 시대의 리얼리티를 자기 안에 반영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추리든 용산이든 국가 폭력이 언제 어떻게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곳에서 자기 작업들을 분연히 이어가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저는 이런 첨예한 현장에 자기 온 몸을 담그고 있는 이들 중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미술문화를 정말 건강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올곧은 작가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은 이렇게 현실 참여를 내세우며 조직된 저항 운동의 하나로 성장했다. 한편으론 그 표현의 직접성으로 인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았는데, 지금은 어떠할까.

“지금은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인간정신의 내밀하고 섬세한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다루는 귀한 화가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지금 경기도 미술관에서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정치 미술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사회 모순을 가볍게 엿보거나 폭로하는 것을 세련되게 잘 표현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80년대 민중 미술보다 상당히 발전된 형태이고, 저항성은 좀 부족하다 싶은 면도 있지만 저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괄목할만한 것은 인터넷 매체나 중앙지의 만평을 그리는 아주 좋은 화가들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손문상 씨라던가, 저는 그 그림들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신출귀몰하는 만평을 그리는 몇 사람들 때문이라도 우리 사회는 절대 국가 권력이 원하는 대로만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있습니다.”

예술가들을 향하는 국가 폭력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의 날카로운 모순을 비판하는 예술가들 역시 국가 폭력의 표적이 되곤 한다. 홍성담 씨 본인을 비롯하여 미술가 신학철 씨, 사진작가 이시우 씨 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경험한 바 있다. 최근에는 극단 ‘우리나라’에 대해 공안 기관이 사찰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예술 극단을 사찰한 일이 언론에 폭로되었으니 이제 저들은 주춤할까요? 아니, 오히려 저들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 사건으로 국가 권력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자유로운 표현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예술가들조차 감시당하고 탄압받는다, 그러니 모두들 입조심 하라는 것이지요. 예술가들도 이런데 하물며 국민 개개인들은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두려워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술을 하며 산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할 것, 그것은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탄압하는 모든 권력에 대해 과감하게 폭로하고 그것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국가 폭력이 다시금 강화되는 시대이지만, 이런 저항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단지 노골적인 국가 폭력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만큼 권력을 가진 자, 특히 자본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야박한 사회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서구의 경우 돈 많은 수집가들은 심지어 자기의 사업적 근간을 비판하는 그림들도 수집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본 권력은 야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어쨌든 화가들이나 예술 창작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본 권력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들이 있었죠. 그러다보면 리얼리즘 상상력의 동력도 떨어지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10년간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상업자본이 휘두르는 또다른 폭력으로서, 매스미디어의 광고 얘기도 나왔다.

“광고도 자본권력에 봉사하는 예술의 일종이지요. 그런데 우리시대 시각적 폭력을 가장 행사하는 것이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상업광고라고 생각합니다. 별 차이 없는 다른 상품이 있어도 그 상품이 아니라 이 상품을 사게 되는 것은, 이걸 갖고 있으면 마치 장동건이나 이효리 처럼 될 것처럼 광고가 세뇌하기 때문입니다. 소비 조건 자체가 변화한 것이죠. 장동건이나 이효리 처럼 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그것을 주입하여 내가 그렇게 되기를 욕구하게 만드는 것, 이건 대단한 폭력입니다.

이런 은밀한 자본의 폭력, 혼란한 시대를 어떻게 잘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인가 하는 것도 문화 예술인들이 갖고 있는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참 천박하지요. 앞으로 국가 폭력보다도 자본의 폭력이 더욱 무섭게 진행될 것이구요. 노무현 대통령도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걸 제어할 힘이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한계입니다. 그런데 국가 폭력은 촛불이라도 들고 저항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은밀한 자본의 폭력은 어떻게 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국가 폭력보다 더 은밀하고 막강한 자본의 폭력으로 파편화되고 쓰러져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슬쩍 엿보기나 비틀기 같은 방식을 넘어서서, 80년대 소위 그 저항의 미술로 이것들을 접근해보고 싶습니다. 제 능력으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자유를 위해, 권력과 불화해야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국가라는 시스템이 갖고 있는 제도에 대해 불신해야 합니다. 그것과 불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러한 거대한 권력의 구조가 갖고 있는 그물망에 갇혀버립니다. 예술가의 기본 바탕은 자유로운 영혼인데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을 어떤 식으로든 탄압하고 압박을 하는 그 모든 행위에 대해 예술가는 반드시 저항을 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영혼, 인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꼭 예술가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엄한 삶을 위해 자유를 필요로 한다.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예술가들만의 역할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임

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