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과 6월, 대한민국에는 시국선언이 끊이지 않았다. 그 때 대한민국에는 대학교수부터, 교사, 작가, 청소년, 블로거 시국선언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국선언이 쏟아졌다. 위키백과에는 ‘2009년 대한민국의 시국선언’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올라와 있을 정도이다. 6월 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16171명의 선생님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민주주의의 싹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 상식과도 같았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당국은 시국선언 주도 교사들에게 정직 또는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리겠단다. 더구나 1989년 전교조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중징계 사태라니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교조 서울지부 이 헌(46) 선생님을 만나 이 웃지 못 할 현실을 물어보았다.
시국선언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너무 당연한 질문 아닌가?(웃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사 시국선언을 두고 “교육과 관련없는 정치적․이념적 시국선언으로 교장교감과 참여교사와 비참여교사간의 갈등, 학생학부모의 불안과 혼란가중으로 궁극적으로 학생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국선언이 “교육과 관계없다”는 건, 교육을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는 관점이다. 삶 자체가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선생님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육의 한 방편이다. 물론 학교 관리자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와 교육부, 교육청에서 시국선언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국선언이 이루어졌으니까. 관리자들과의 갈등은 있었지만, 동료교사들 간의 갈등은 없었다. 미안해하면 했지, 갈등이라니……. 어불성설이다. 교사는 자라는 세대에게,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하나의 모범이 돼야 하는 건데, 시국선언은 어른으로서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중징계 조치가 내려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황당하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정부 이전에도 시국선언은 있어왔다. 그것이 이번 경우에만 문제가 된 것이다. 설마 이런 일 가지고 징계를 내릴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오바’를 한 거다. 지금 본인에게 통보만 안 된 상태인데, 전교조 서울지부 같은 경우에는 징계조치에 저항하는 농성조차도 하고 징계대상이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다. ‘설마 이런 일로 징계를?’ 이런 반응이다. 우습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으레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분노하거나, 어이없어 하거나. 지금은 후자 쪽이다. 어이없는 상황이다.
시국선언 참여를 후회한 적이 있나?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학교 측과의 갈등은 없었나?
전임자들은 학교를 떠나 있는 거라서 잘 알 수 없고, 현장의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확인서’를 요구했다고 하더라. 1차 시국선언에서는 참여명단을 전교조 <교육희망>에 소속 학교 없이 이름에 따라 가나다 순서로 올렸다. 그래서 동명이인이 많았고, 그러다보니까 그것을 일일이 가리려고 방학 동안에 개별 교사들에게 시국선언 참여 확인요청을 한 모양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거기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2차 시국선언에서는 참여명단을 전교조 홈페이지에 내려가는 자막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교조 입장에서도 참여명단을 그런 방식으로 발표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선생님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신념과 현실이 부딪칠 때, 현실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신념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신념과 현실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하나?
사실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부모로서, 또 이 땅의 교사로서 내가 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항상 노력한다.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우리가 사는 사회보다 좋아져야 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신념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시국선언을 통해 ‘교사’로서 특히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번에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좀 더 정의로운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했던 것 같다.
자녀분들의 반응은 어떤가?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라 알 건 다 안다. 아빠가 늘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정당한 행위였고, 그렇게 사는 거 보기 좋다고 얘기한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도 어이없으니까 같이 분개도 하고, 뭐 엄청난 일도 아니고 이런 일로 징계를 받았느냐며 시시하다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한다.(웃음)
가끔 아이들이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인격체로서, 이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 입장으로 같이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앞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정권 하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 누군가 뭔가를 해 주길 바라는 것보다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교사는 교사들 나름대로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 바꿔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물론 교육 하나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구조가 변화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렇다고 구조적인 변화만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없다. 교육을 통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학생이 ‘주체’가 아닌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 함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반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다 힘들어져서, 교육문제만 따로 얘기하는 게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명박 정권이 끝난다고 해서, 변화가 크게 올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단시일에 변해야 될 것이 있고, 장기간에 걸쳐 변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 전교조를 포함해서 교육계가 다 같이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급급해서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 건 아니다 싶다. 전교조도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 많이 한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다보면 전교조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노력하자.
덧붙임
융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