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리가 운다. 거의 자지러진다. 하루 종일 저러고 있다. 열도 나고 입가에 뭔가 나서 아픈가보다. 방문을 닫고 최대한 글에 집중해보려 한다. ‘내일이 원고 마감이라고!’ 그러나 나는 그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이제 막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발악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까 우리 집에 있는 여자 셋이 뚜리를 감싸고 간신히 부~펜 시럽을 떠먹였다. 뚜리 엄마는 “역시, 디온이 이런 일은 능숙해.”라며 안도했다. 뚜리는 돌을 갓 넘긴, 우리들의 아이다.
뚜리는 나와, 몇몇 친구들과 한 집에 사는 아기 이름이다. 나는 *‘해방촌 게스트하우스 빈집/빈마을’이라 불리는, 이제는 제법 인지도가 높아진 마을의 세 번째 집에 살고 있다. 처음 빈집 1호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는 일주일에 3-4일을 빈집에 들러서 밤 시간을 함께 했었다. 근처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 30만원의 월세에 혼자 살고 있던 나에게 한 달에 공간분담금 6만 원 이상, 식비 2-3만 원 정도인 빈집의 경제적 조건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함께 살 장기투숙객들의 면면이 참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난 개와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싫었다. 더럽고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나에게 의존할 것 같은 존재들. ‘아, 나는 나 하나도 버거워요. 워워- 제발 내게 도움의 시선 따위 보내지 말 것!’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내가 남들에게 같은 이유로 불편을 끼치는 것이었다. 나는 잠잘 때 이를 심하게 빡빡 간다. 또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언제나 피곤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훈훈한 분위기를 깰 것 같았다. 더욱이 비평가 스타일로 남의 단점을 잘 꼬집는 못된 성미를 가졌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조차 불편하고 피곤할 것 같았다. 최근 5년 사이에 나는 이미 다른 친구들과 동거를 하면서 그들에게 거의 살의에 가까운 증오를 느끼며 헤어졌던 일도 몇 번 있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정말 피곤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빈집 입주를 미루던 내게 방 하나를 온전히 내어주겠다, 남자친구를 데려와도 좋다는 천사 같은 친구들이 나타났다. 올 2월, 그 집을 빈집 3호로 소문내고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나와 내 남친, 그리고 다른 친구들 둘, 그렇게 넷이 살았다. 방이 3개 있었으므로 남는 방 하나에 몇몇 손님들이 오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투숙객이 나타났다. 그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신분상으로 ‘엄마’였고, 인도인인 ‘아빠’와는 결혼증명서를 발급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당시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이 집에 들어왔다. 그 아기가 뚜리이다. 나는 단번에 그들이 장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웠으나 함께 살기로 했다. 아니 이 말에는 어패가 있다. 함께 사는 것에 동의했지만, 그것은 나의 의지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나도 이 집의 손님이고 그도 이 집의 손님이니까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언제든 원할 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우리 집엔 빈방이 있었고 그녀와 아기는 입주를 신청했다. 그 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참을 수 없는 너, 그리고 나
다른 사람의 입주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울 일은 아니었다. 게스트하우스라는 게 원래, 밖에서 일보고 들어와 잠만 자도 그만이고, 내가 쓰는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면 마주칠 일도 별반 없으니. 물론 그러려고 빈마을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건 아니었지만 유사시 언제든 그런 삶의 방식을 채택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뚜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뚜리의 울음소리에 의해 나는 밤마다 잠을 설치게 되었고, 이른 새벽(그야말로 졸려 죽겠다 싶을 때)에 잠을 깼다. 독자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난 이 사건에 무척 당황했다. 도저히 대화나 소통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의 이 불편을 어떻게 조율한단 말인가. 까탈스럽고 짜증이 많으며 신경질적인 내가(독자들이여, 이 부분은 겸손함이나 자격지심이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실로 그러하다) 아기랑 살게 될 줄이야. 난 아기를 싫어한다. 개나 고양이도 싫어한다. ‘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같은 것은 먹히지 않고 아예 그 정당성 자체를 주장할 수 없는 난국에 처할 때, 난 그저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당시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강의를 준비하던 시절이어서 더 그랬다. 그저 뚜리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존재의 허약함을 탓하며 견딜 수밖에 없었다. 견뎌라,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있는 견딤이다. 굳이 따지자면 뚜리도 이 집에서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걸 인도주의적 처사로 볼 수 있을까. 그가 ‘아기’이기 때문에, ‘한부모 가정’ 상태의 소수자이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뚜리는 그저 이 마을의 투숙객, 손님이고 나와 같은 이방인일 뿐이다.
물론 함께 사는 데에는 공감, 연민, 죄의식과 정치적 올바름 등 모든 것이 다 동원되었다. 아기를 혼자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한 아기 엄마는 늘 피곤해 보였다. 한 마디 위로를 하려해도 나는 그런 일에 익숙치 못했다. 아기 엄마는 그저 말없이, 졸린 눈을 부비며 아기를 달래곤 했다. 아기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며 팔이 무거워 끙끙거리는 그녀를 보며, 나도, 내 남친도, 옆방 친구들도 시간 쪼개서 아이를 업고 달래기도 하고 재우는 일을 거들게 되었다. 화장실에 쌓여가는 똥 기저귀와 기타 잡스러운 아기 용품들. 아기는 점점 자라 더 많은 것들을 요청하고 아기 엄마는 점점 무너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서너 달을 보낸 후, 결국 뚜리의 엄마는 뚜리를 데리고 인도에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뚜리의 아빠인 인도인 남성과 혼인신고 서류를 만들고 비자 신청을 하느라 온갖 고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와 뚜리, 그리고 새로운 장투인 인도인 남성이 돌아왔다.
함께-살기, 가족을 새롭게 하기
이렇게 새 식구가 생겼다. 밖에서 볼 때, 빈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사는 것 정도로 보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로, 남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색하고 힘겹게 부대껴 사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함께-살기는 그런 말들로는 부족하다. 굳이 해명하자면 타인과 나의 경계, 가족의 새로운 구성 등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표현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족 구성이 아니라 가족의 새로운 구성 아닐까. 이미 한 집에 살고 있는 이 특별한 가족을 두고 혈연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가족과 다르다고 평가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 이 집에서는 혈연관계로 맺어지더라도 그 가족관계는 기존 가족관계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동질성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이기 때문에 모여 살게 된 가족. 그래서 빈마을에서는 새로운 구성원이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뚜리를 사랑함에도 그의 울음소리와 불화하던 나에게 한 가지 해법이 제시되었다. 방의 배치를 바꾸는 것 그리고 내 스스로 소리에 강해지도록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뚜리가 자는 방이 방 맞은편으로 옮겨지고 자고 깨는 시각이 일정해지면서 마술처럼 숙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귀도 소리에 적응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뚜리는 좋다. ^^ 다행히도 이 까칠한 이웃마저 뚜리에게 약을 먹이거나 좌약을 넣는 등 응급조치를 해야 할 때 꽤 도움도 되는 것 같다. 이밖에도 나는 다양한 손님들과 이웃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인내심과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더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빈마을로 놀러 오시거나, 다음 연재를 기다려 주시기를.
*빈집/빈마을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말 그대로, 일단은 남산 밑 해방촌이라는 동네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이다. 거기에 단기투숙자(줄여서 ‘단투’)와 장기투숙자(줄여서 ‘장투’)들이 모여 살고 있다. 즉 함께-살아가기를 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니까 당연히 손님과 함께 살아가고, 그러다 눌러앉는 장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장투들이 우글거리게 되자 집들을 더 늘리기도 하고, 이런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자기 집을 빈마을의 하나로 끼워넣고 살기도 해서 지금은 해방촌에 총 4채(+1채 : ‘빈농집’이라 해서 수색에 터를 잡은, 도시에서 농사도 짓고 살고자 하는 친구들의 분가가 있다)에 스물 댓명의 장투들이 모여살고 있다. 간단히 산수를 해 봐도 여느 집들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서울 한 가운데, 우리 집의 경우는 방 3칸짜리 집에 7명이 모여 산다.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는 블로그 (http://blog.jinbo.net/house)와 홈페이지(house.jinbo.net/xe)에 빼곡하게 있으니 참고하시길. 하여간 나는 빈마을의 세 번째 집인 ‘옆집’에 방 한 칸에 살고 있다.
덧붙임
김디온 님은 빈마을 장기투숙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