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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이해받는 관계, 인정받는 공간이 목마르다

<메종 드 히미코>

어떤 조짐

며칠전 '평범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평범한' 한 여성이 영화 <왕의 남자>를 보다가 연산군과 공길(광대)이 키스하는 장면에서 주변 관객들이 "우", "엑" 하는 소리를 듣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도 관객들의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바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요즘 가장 기대되는 영화가 <브로크백 마운틴>이라고 했다. 세 영화 모두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동성애자 캐릭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짐작이지만 '평범해' 보이는 사람에게 이런 평범하지 않은 영화감상 이력을 듣게 되는 것도 어떤 변화의 조짐이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관객들의 출현만큼. 어쨌든 이 대화 중에 빠트린 게 있다면 <메종 드 히미코>에 대한 것이다.

성소수자들의 실버타운 '히미코의 집'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 성소수자들의 실버타운 '히미코의 집'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소리소문없이 관객 2만을 불러 모은 이 영화는 얼마 전 장애여성의 자아와 사랑, 독립에 대해서 담담하게 그려내어 많은 호평을 받았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인 이누도 잇신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를 위한 실버타운(히미코의 집)을 배경으로 해서 성소수자의 공간과 관계,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오리는 게이 바(Gay bar)인 히미코의 2대 사장의 딸이며, 아버지가 '다른' 세계로 떠나고 어머니가 '하늘' 나라로 떠난 후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게 된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는 사오리에게 아버지의 젊은 연인인 하루히코가 찾아와 히미코의 집에서 일해주기를 부탁한다. 사오리는 빚을 갚기 위해 그 부탁을 수락하지만 투병중인 아버지를 만나면서, 하루히코와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히미코의 집에 사는 성소수자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에 접어든다.

'히미코의 집'에 처음 들어선 긴장한 사오리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 '히미코의 집'에 처음 들어선 긴장한 사오리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나는 너를 '인정'한다

사오리는 그가 아버지였기 때문에 동성애자로 인정할 수 없었고, 가족을 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보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오리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애정을 가진 관계로 발전하면서 사람을, 사랑을, 성소수자의 문제를 이해하게 된다. 감상평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많은 여성관객들은 내가 며칠 전에 만난 독특한 영화감상 이력을 가진 평범한 여성처럼, 사오리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이 영화를 만나갔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꽃미남, 가족, 유쾌함이라는 코드가 한 몫을 하고 있지만 동성애자 아버지를 둔 가족이 실제로 처하게 될 현실적, 감정적인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동성애자를 사회 속에서 살아있게 만들고, 관객과 소통하게 만든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과장하거나 삶을 동정하지 않는 시선은 그 소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괜찮아, 나는 너를 인정하거든"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에 대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 이성애자를 누가 인정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은 동성애자의 존재자체를 인정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 있는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오리가 그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이해이고, 인정해야 할 것은 존재가 아니라 조건과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를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담벼락에 혐오낙서를 해놓은 꼬마들도 그렇고, 예전 벽장 속에 있을 때 알았던 직장 상사도 그렇고, 젊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대학생 동성애자들도 자신을, 그리고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조건을 인정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성찰적으로 보여준다.

커밍아웃 이후 단절되었던 관계를 잇는 히미코와 사오리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 커밍아웃 이후 단절되었던 관계를 잇는 히미코와 사오리 [출처] cafe.naver.com/spongehouse



다른 인생곡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영화는 성소수자를 위한 실버타운을 배경으로 하면서 나이와 공간의 문제를 엮어나간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문제를 피할 수 없는데, 그런 자연스러운 인생의 주기는 그동안 특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 당연한 문제이기 때문에 혹은 너무나 특별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 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노숙인이, 어떤 장애인이 혼자서 추위에 죽어갔다는 안타까운 신문기사나 사회문제로만 드러날 뿐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역사를 지켜볼 수는 없는 것이다.

운영난에 처한 히미코의 집에서 전신마비가 와서 24시간 돌봄이 필요해진 루비를 결국 자식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였을 때 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결국 "결혼안하고 자식 안낳으면 나중에 힘없고 돈 못벌 때 누가 너를 거두어줄 것 같느냐"라는 오랜 (사회적)아버지의 말씀이 뒤통수를 친다. 물론 사오리가 그랬듯이 루비의 자식들도 아버지를 만나서 성전환 수술을 한 그의 몸을 돌보며 인정과 이해의 과정을 허락받을 수 있다. 하지만 루비는 이미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고 자식들과 대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떠밀렸고, 너무 늦어버렸다.

몇 년 전 여성주의자들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마을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고 수용시설이 아니면서 장애인을 위한 요양원을 건설하기 위해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단체도 있다. 여성성소수자들도 일찍부터 그런 고민들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고, 나이가 들기 때문에 더더욱 예민하게 고민되는, 자신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나가면서 노후를 준비할 것인가에 골치 아픈 장애여성도 있다. 가족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나가면서, 치열하게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갈 것인지 조율해나갈 수 있는 우리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공간에서 서로의 유언을 들어주고 한 인생을 기억하고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히미코의 집'이 없어서 홀로 쓸쓸히 죽어갔다는 지인의 소식을 뒤늦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오리가 그랬던 것처럼 변화를 겪을 사람도, 같이 지켜줄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 너무 늦지 않기 바란다.
덧붙임

타리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