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뚝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대단하다. 인권감수성, 경험, 식견 등 어느 하나 국가인권위원장에 맞지 않는 그이지만 비판하는 소리에 양 귀를 닫고 묵묵히 출근 도장을 찍는 그의 뚝심 하나는 감탄할 만하다. 스스로 표명했듯이 인권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그는 눈치도 없나 보다. 아님 눈치도 살필 필요도 없이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지난 11월 1일. '문경란'이라는 이름이 한 유명 포탈 검색순위 1위에 랭크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이 사퇴를 표명했던 것이다. 2009년 7월 이명박 정부의 비호 아래 명백히 자격미달임에도 임명된 현병철 인권위원장. '고사단계로 전락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고 있는 그에게 상임위원도, 전직 직원들도 그리고 국민도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병철 위원장은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다며 요지부동이다. 현 정부에 한결 같은 애정을 보내는 로맨티스트인 그가 1년간 위원장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를 보면 기가 찬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이념 논쟁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보적' 인권이어서 또는 '보수적' 인권이어서의 문제가 아닌, 인권 자체가 잣대가 되지 못하고 있는 '텅 빈' 인권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텅 빈' 인권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현병철 위원장의 독재체제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 조국 비상임위원에 이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문·자문·상담 위원 등 61명이 동반 사퇴하여 인권위를 떠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에 '국가'라는 말이 붙었다고 해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한 파워레인저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인권침해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기부터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어 그 독립성을 훼손하려 시도 하였다. 그 시도가 먹히지 않자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채워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11월 25일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 진지 9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에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한다.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위해 추운 겨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13일간 단식농성을 하였다. 그를 통해 어렵게 독립성을 지켜낸 국가인권위원회였다.
다시 추운 겨울이다. 지난 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서 옆에 앉은 9년 전 명동성당을 지켰던 한 활동가에게 "진작 만들 때 좀 잘하지 그랬어. 저런 사람 위원장으로 못 들어올 장치를 마련했어야지." 하고 삐죽거린 적이 있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힘든 싸움을 통해 만들고 지켜왔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는 그 활동가의 마음은 어떨까. 이제라도 제대로 다시 국가인권위원회를 바로 세워보자. 그리고 그 바로 세움의 첫걸음은 현병철 현 위원장의 사퇴로 시작될 것이다.
덧붙임
은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