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1등의 고민
나는 어쨌든 장애인인 것 같다. 장애인등록이 되어 있는 것이 이 사회에서 내가 장애인이라는 확실한 징표이지만, 그 외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비장애인이었던 때가 한 번도 없으니 비장애인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그렇다고 시각 장애인의 장애나, 휠체어 장애인의 장애를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그저 내가 생각 하는 것, 그것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으니까’ 그들도 ‘무엇인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리고 ‘장애’라고 규정된 것들을 그들도 겪고 있으니 나처럼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으로 ‘장애’가 있음을 꽤 오래전에 알았다. 이것은 주변의 영향 때문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장애를 아주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신체적인 부분에서 아주 확실하게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100미터를 30초에 뒤뚱뒤뚱 뛰어 꼴찌를 해도 나의 팔목에는 1등 도장이 찍혔다. 그러면 나는 1등줄에 쫄래쫄래 가서 앉아있었고 운동회가 끝난 후 1등 상품을 받곤 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게 해줬지만, 그 때 나와 같이 1등 했던 친구들, 2등 했던 친구, 3등 했던 친구들의 마음 그리고 등수에 들지 못했던 친구들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의 내가 선생님이라면 모두에게 똑같이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고 달리기 기념품을 나눠줬을 것이다. (뭐 의미없는 칭찬을 뭐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이 상황이 어떤 것일까? 장애가 있던 나를 비장애인과 똑같이 100미터 선에서 뛰게 했던 것이 나에 대한 심각한 차별 행위일까? 그리고 꼴찌 한 나에게 1등 도장을 찍어준 행위는 공정한 것일까? 1등은 좀 심하고 한 3등 정도 찍어주면 괜찮은 것일까? 게다가 그 덕분에 ‘상품’까지 받았으니…. 또한 체육 시험을 볼 때 친구들이 어떤 행위를 열 번 성공해야 점수를 얻었다면 나는 세 번 성공해서 점수를 얻었다. 어떤가?
‘존재’가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내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은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 입학 후 완전히 산산 조각 나 버렸다. 더 이상 나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싫었고 부탁하기도 싫었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장애’는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장애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단지 내 평생 함께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살기에 장애는 확실히 ‘불편’한데다가 ‘심각’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것일 수도 있었다.
대학 안에서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 나는 장애인이자 학생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명확했다. 그렇기에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필요한 것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 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사회에서는 더 이상 내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었다. 단지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내가 하는 노동은 권리가 아니라 회사가 내어준 일자리이고 노동을 통해 얻게 되는 노동소득으로 생활을 해야 되는 ‘동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냥 단지 주어지는 임금으로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물’이 되었다. ‘존재’가 아닌데 ‘권리’가 있을 리가 없다.
어떤 것에 사람이 느끼는 ‘가치’는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기울인 스스로의 ‘주관적’ 노력 정도에 비례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 의미가 생기는 것 같은데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서 ‘주관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은 더욱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사회에서 더 이상 내 ‘권리’를 마음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졌다. ‘환경’을 인정하지 않는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성숙하지 못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인식되어지는 것들(육체적인 영역들)을 나는 하기가 어려웠기에 역시 ‘권리’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학교 내에서는 그것을 주장해도 ‘약자를 돌본다’는 도덕적 관념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다. 대학에서는 ‘우리는 지성인’이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사회에서 이 역할을 대신할 것은 국가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본의 가치’에 이 역할이 압도 되고 있고 사회는 ‘격렬한 스포츠 경기’가 되었으며 국가는 ‘심판’의 역할만 하게 되어 버렸다.
‘존재’를 만들어가는 길
현재 한국사회에서 삶은 스포츠 경기처럼 지더라도 어깨를 서로 토닥거리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심판은 더욱 공정해야 한다. ‘노력’과 소위 말하는 ‘능력’, 그리고 그에 따라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머문다면 그것에서 언제든 배제될 수 있는 ‘존재’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단적으로 인간 생존의 근원인 노동의 영역에서 언제든 약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입장에서 나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다. 근원의 경쟁요소에서 언제든 배제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어디까지 주장해야만 하는가? 나는 ‘노력’, ‘능력’, ‘생존 방법’들의 우열이 갈리는 지점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된 이상 스포츠가 아닌 삶 전체를 개인 수준에 맡기는 것에 나는 찬성 하지 않는다.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개인의 영역 밖으로 벗겨내려면, 사람은 모두 같지만 다르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기회’의 ‘공정’함이 반드시 ‘결과’의 ‘공정’함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 결과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돈’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결과에 승복하게 된다면 당장 영역 밖으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은 이것 모두를 인정하는 것을 쉽지 않게 한다. 또한 제도의 제정과 삶의 연대를 한 방안으로 생각하지만, 개개인이 모두 다른 현실에서 원칙을 만드는 순간 그 원칙은 공정하지 않다. 나의 학창 시절에 체육시간의 세 번이라는 기준은 나에게 적합한 기준일 뿐이다. 또한 연대가 어디까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장애라는 나의 존재의 한 부분에서 시작 했지만, 그것이 나이고 내가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나는 나만의 세상을 익혀가고 있다. 어떤 생각들은 내가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내가 대학생이기 때문에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 돋움활동까지. 이러한 삶의 길을 걷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돋움활동이 훨씬 재밌어졌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해도 더 재미있어 질 것 같다. 나의 삶이 들어있기 때문에.
덧붙임
세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