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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불만이 시가 된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선생님, 내 부하해」

「선생님, 내 부하해」라고 하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보자마자 한 때 나와 함께 사는 어린이가 “이명박 물러가라, 엄마 물러가라!” 크게 외쳤던 때가 떠올랐다. MB와 같은 자리에 섰다는 것이 무척이나 씁쓸했더랬다. ‘아, 내가 어른 권력을 행사하는구나.’ 하고 통렬한 반성의 기회를 가졌다. 요즘도 종종 나도 모르게 슬쩍 어른 권력을 내세울 때가 발견된다. 그럼에도 내가 수시로 어른 권력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질 ’하는 그 어린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그 ‘지적질’, 여기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겠다. 어린이 인권교육을 할 때 종종 듣는 소리가 있다.

“왜 우리는 말대꾸 하면 안 되나요!”

어른들에 대한 ‘지적질’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고, 금지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교육을 통해 변화되어야 할 존재이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항변하고자 하면 그 자체로 ‘말대꾸’가 되어 거부된다. 하지만 ‘지적질’, 그렇게 위험하고 나쁜 일일까?

당신은 그 시절에 어른에게 불만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없었던 건 용기였겠죠.
불평불만이 없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불평할 때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정당한 논리가 어른들 때문에 왜곡되려고 할 때, 어린이들은 불평을 합니다.
……
모든 어른 여러분, 이 점을 잘 생각해 주세요. 불평불만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신을 북돋우고, 그렇게 북돋워진 정신이 하나로 뭉쳐 세상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요.

-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내 부하해」 중에서


제목이 단지 미끼만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가진 불만이 그 무엇이든 솔직하게 터놓도록 용기를 북돋고 있지 않은가. 불평불만이야말로 우리 정신의 시작이라고 추켜올린다. 불평불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사실!
이처럼 매력 있는 말을 전해주고 있는 하이타니 겐지로는 일본에서 17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우리에게는 동화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로 잘 알려져 있는데, 어린이 입장에 서서 존중하고자 하는 교사의 노력이 진솔하게 담긴 책이다. 「선생님, 내 부하해」는 시 교육론이면서 동시에 그가 어린이를 어떻게 만나 왔는가가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는 시 쓰기 교육을 통해 어린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겪도록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어른들의 이런 잔소리 때문에 머릿속이 왱왱 울리는 사람은 지금부터 갱단이 되기로 합시다. 하지만 잠깐, 갱단에 들어갈 때도 시험을 봐야 합니다. 시험에 붙어야 갱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
- 2학년 히로타 요시노리

비행기를 타고
똥을 마구 뿌려 보고 싶다.

오줌도
하늘 위에서 실컷 싸 보고 싶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눈곱만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갱단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럼 합격했다는 증거로 총을 나눠 주겠습니다. 총은 종이, 총알은 연필입니다. 이것이 갱단의 무기죠. 이것으로 어른들을 습격하는 거예요. 자, 성적이 우수한 갱단이 한 발 쏘아 볼까요?

“선생님, 내 부하해”

-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내 부하해」 중에서


이 책이 ‘불평불만’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몰입’하는 마음, 훌륭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 무언가를 반드시 해내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욕심에서 비롯된 마음을 상상하는 마음으로 키워나가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지구상에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등 시를 쓰기 위해 필요한 마음 몇 가지를 전해준다. 다만 이 책에서 주목하는 바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데 처음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불평불만’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은 대체로 자기표현이 가로막혀 있다. 여러 감정들이 존중되기 보다는 거부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거부되었거나 숨겨두었던 마음이 너무 많다. 특히 어른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불만은 엄청나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이런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평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쏟아져 나오도록 하고 그것을 다시 시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과정을 겪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보기에 눈을 찌푸릴만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도 어린이 스스로 자기 삶을 표현해나가는 중요한 연습일 수 있다. 이렇게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삶, 사회, 인간을 생각하는 힘도 길러질 수 있다. 자기 스스로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가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아닐까.
덧붙임

이선주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