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면서 우선 국가폭력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보통은 국가 권력 기구나 공권력 행사 기관에 의한 피해와 침해를 국가폭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군대, 경찰, 검찰에서 행하는 인권침해와 폭력을 국가폭력이라고 봅니다. 국가공무집행자에 의한 폭력, 전쟁, 학살, 고문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가혹한 폭력은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이 잔혹을 목격하고 알게 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공포의 결과는 마비입니다. 국가폭력의 또 다른 영향력은 그 국민에게 폭력에 대한 무반응, 즉 암묵적 승인을 싹 틔운다는 점입니다. 폭력에 마비된 국민은 국가의 행위가 아무리 비인간적이라도 이에 동조하게 됩니다. 이 경우, 이러한 국민의 동조까지 국가폭력에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동조는 실제로 국가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악화하므로, 국민의 동조와 마비를 국가폭력으로 고려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넓게 보아 국가폭력은 한 국가가 그 안에서 인간에게 범하는 폭력과 침해를 포함합니다.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강압적으로 억압하거나, 묵인하고, 방치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인권과 생존의 보장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집회나 시위, 글쓰기처럼 직접적인 표현으로도, 혹은 죽음처럼 강렬한 무언의 표현으로도 나타납니다.
국가라는 단위가 정치체제의 틀이 되는 세상이 되면서,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넓은 의미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인권의 보장의 목소리를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점에서, 모든 인권 침해에서 국가는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폭력은,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마치 폭력을 폭력이 아닌 것으로 둔갑시키는 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폭력을 행하는 국가는 가해 상대를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아니니까’, ‘국가에 반하니까’, ‘제도를 위협하니까’, 혹은 ‘국민에게 피해가 되니까’는 아주 유용한 구실이 됩니다. 인권을 위협받는 자가 ‘국민’에서 ‘비국민’이 되는 일은 너무 쉽습니다.
원래 국민이 아니었던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고 묵인하는 일은 그래서 용이하고, 원래 국민이었던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국민이 아님을’ 세뇌하여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제 생각에 국가폭력이란, 국가의 고유한 역사에 의해 형성된 한 사회의 문화와 제도적 배경에 따라, ‘배제되어야 하는 누군가’에게 발생하는 폭력과 비인간화가 아닌가 합니다. 누구를 배제하는가는 그 사회의 역사, 문화, 제도를 좌우하는 이들이 결정합니다. 여기서 이들이라 함은 한 정권, 권력 기구, 하나의 커다란 혹은 작은 집단일 수도 있고, 국민으로서 개인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이들이라 함은 ‘국가와 국민’입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침해를 받은 사람은 국민이 아닌 사람,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국가가 국민으로 인정하기 싫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국가폭력은 급작스러운 신체적(물리적) 폭력과 위협으로, 감시와 낙인을 동반하는 심리적 감금으로, 혹은 만연한 스트레스 환경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핵심은, 상대를 ‘비국민’으로 고립시키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에 국가폭력이 아주 빈번하게, 암묵적으로 행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는 어떤 국가폭력이 행해지고 있나요? 누가 비국민으로 낙인 받고 비난 받나요? 그 낙인과 비난 속에서 폭력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나요? 과연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누구냐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나요?
덧붙임
최현정 님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