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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의 인권이야기] 행복한 밥상을 먹기까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들

밥상이야기

어릴 때 학교급식을 먹기 적에 꼭 기억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소중한 밥상에 농축산물이 올라오기까지 피땀 흘려 고생한 농부들을 떠올리면서 절대 밥 한 톨이라도 남기면 안 된다고 배웠고 편식이 유독 심했던 나는 몰래 음식을 버리는 게 양심상 참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 때 9박 10일간 농활을 간 농촌에서는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있던 농부들과는 좀 다른 모습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한국말이 서투른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분과 항상 웃으면서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켰던 이주노동자들이 농촌 곳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농민회 삼촌도 마흔에 베트남여성과 국제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이제 농촌에도 이주여성들이 많이 오게 된다는 짐작 정도를 했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 와서 한동안 노동자라면 떠올리게 되는 공장(제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만났고 공단지역을 다니면서 7~80년대에나 있을법한 공장이나 기숙사가 아직도 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근로기준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상대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근로시간, 최저임금, 가산수당 등이 존재했다.

근로기준법 63조 예외 = 소처럼 일만 하기

근로기준법 63조(적용의 제외)에 따르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연장근로나 야간․휴일 근로에 따른 가산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휴게시간이나 휴일 없이 주구장창 일을 시켜도 기본급만 계산해서 지급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정말 현대판 노예, 아니 한국적으로 표현하자면 현대판 머슴제도나 다름이 없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 올라오는 온갖 농축산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만이 아니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산골짜기 깊숙이 위치한 비닐하우스에서 나 홀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슬픈 이야기

산 속 깊숙이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매일같이 라면을 먹다 고기를 먹고 싶어 농장주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농장주는 외출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은 강가에서 직접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는 것이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존재하지 않아서 비닐하우스 옆에 땅을 파고 볼일을 봐야만 했던 노동자들도 있다. 내가 노동부에서 만난 농장주는 1년 이상 일한 이주노동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단돈 30만 원만 주며, 이건 내가 수고했다고 용돈을 준 거니까 이거 받고 끝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세 가지 연대

이런 이주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STOP EPS”를 검색하면 안산지역에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진짜 정류장은 아니에요)에서 촬영한 진짜배기 이주노동자 삶의 현장을 볼 수 있다. 특히 “라이의 바꿔주세요”라는 영상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침해가 존재하는지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 설명]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촬영하여 YouTube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었다. 사진 출처: 라이의 이야기 중 일부

▲ [사진 설명]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촬영하여 YouTube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었다. 사진 출처: 라이의 이야기 중 일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뭔가 내가 직접 이들의 현실을 바꾸는데 동참을 하고 싶다하는 분들이 있다면 좋은 기회가 있다. 국제엠네스티에서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근로기준법 63조를 폐지하는 등 21개 권고를 발표하고,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개선을 위한 ‘소비자도 이주노동자도 행복한 인권밥상’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http://amnesty.or.kr/mw2014/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 기숙사, 인권침해 영상까지 한 번에 볼 수 있고 한국정부에 직접 온라인탄원을 넣을 수 있다. 오늘 먹은 아침밥상에 올라온 음식이 마음에 걸린다면 얼른 클릭해보자. 국제엠네스티에서 2년간 조사한 보고서도 함께 읽어보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주노동조합에서도 여러분의 연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 11월 8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여의도광장에서 이주노동조합 활동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의 밤 행사를 진행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이주요리를 안주삼아서 뜨거운 술 한 잔의 연대를 나눌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인 만큼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행복한 밥상이 필요하다

큰 대형마트에서 한 봉지에 990원하는 야채를 보면서 저렇게 싼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 농장 저 농장을 끌려 다니며 오로지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제대로 된 급여는커녕 젊은 농장주를 피해서 도망쳐야 다니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도, 꽁꽁 언 방안에서 가스레인지로 몸을 녹여야 하는 베트남 노동자의 이야기도, 사업장 바꿔달라고 하니까 당장 너네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기숙사에서 맨몸으로 내쫓긴 네팔 노동자의 이야기도 우리들이 매일 마주하는 밥상 안에 녹아들어있다. 우리에게는 보다 행복한 밥상이 필요한 요즈음이다.

덧붙임

박진우 님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