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퍽, 픽...”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인천에 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세 어린이를 때리자 아이는 휘청거리다 쓰러진다.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동영상을 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노가 보육교사 개인에게 몰리는 것은 불편했다. 또한 대책이라는 것이 CCTV 확대로 해결되는 냥 떠들어대는 것도 불편했다.(실제 인천어린이집에 CCTV는 있었으나 폭력은 막지 못했다.) 무엇보다 불안한 부모의 목소리, 답답한 보육교사의 목소리, 태만한 정부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정작 아이들의 인권에 선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에 불편했다. 아동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 가능한지,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어떤 심경이었는지 ‘아동폭력의 서사’는 들리지 않았기에 불편했다.
공공어린이집 확대와 보육 교사 처우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이집 아동학대 대책에는 CCTV설치 외에도 보육교사 처우 개선 및 자격 취득요건 강화 등이 포함됐다. 가해보육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구조적인 보육정책의 문제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처벌로는 아동학대가 없는 보육시설은 가능하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16일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에도 ‘보육교사 양성 체계 강화, 인·적성 검사 의무화’, 보육교사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보조교사 확대와 정서·심리 상담 프로그램 제공’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론 이것도 복지부가 2013년 5월에 낸 아동학대 방지대책의 짜깁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아동학대 근절과 안심보육 대책위원회'도 "보육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긴급 정책간담회도 개최하고 일선 국공립어린이집을 찾으면서 CCTV설치, 보육교사 처우 개선 및 자격 취득요건 강화, 체벌금지 조항 마련,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 비슷한 방안을 제시했다.
왜 이러한 방안은 사건이 터지면 나오지만 실제로 이행되지 않을까? 아동학대가 2013년에 비해 14.2% 증가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2012년 무상보육이 확대되자 장삿속으로 설립하는 민간어린이집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번에 아동학대가 일어난 어린이집이 민간이다 보니 국공립어린이집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같은 보수언론에서는 무상보육을 없애는 것이 답인 양 말하지만 무상보육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국공립 인프라 확충보다 민간부문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의 발표에 의하면 정부가 어린이집을 지원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보육료는 5년째 동결됐다. 작년 보건복지부가 연구용역한 결과에서는 표준보육료를 약 10% 인상해야한다고 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민간어린이집의 경우 개인 투자 형식이기 때문에 이윤을 내려는 목적이 강하다. 민간어린이집 원장은 투자비용을 보존하기 위해 임금이나 인력수를 낮추다보니 보육의 질이 낮다. 이로 인해 부모들의 선호도가 낮고 해마다 국공립어린이집에 애들을 보내려고 1년 이상을 대기 한다. 게다가 민간어린이집은 인증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보육교사의 폭력을 눈감는 경우도 많다. 박근혜 정부가 2017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비율을 30%까지 늘리겠다고 했지만 2013년 현재 민간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87.7%다. 2013년 기준 전체 어린이집 총 정원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의 정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서울이 22.3%나 돼 전체 평균 9.5%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적다보니 상대적으로 재정이 안정된 지방정부에서는 국공립어린이집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육 교육서비스 이용 기회의 형평성’의 격차는 커져간다. 게다가 서울시는 어린이집 아동학대사건 이후 국공립어린이집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육아정책연구소에서 2012년도에 실시한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육교사 1명이 최대 23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하루 평균 9시간 28분을 일하며 월평균 총 급여 155만원(월평균131만원, 수당 24만원)을 받는다. 국공립 188만원, 사회복지법인 182만원, 법인․단체 약 179만원, 민간 145만원의 차이가 있다.
보육교사의 일이 많고 처우가 낮으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폭력적일 수 있다. 자기 삶을, 자기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는 어린이집의 노동환경에서 생긴 직무스트레스를 보육교사는 상급자나 고용주인 원장에게 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동에게 푸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체벌과 폭력은 어린이집에서만 금지돼야 할까
그렇다면 보육교사의 처우가 나아진다고 아동에 대한 폭력이 사라질까? 보육교사에 자격 강화로 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니 거꾸로 말해 아동학대는 어른(보육교사)의 처우가 나빠지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동폭력을 용인하는 문화의 근원을 봐야 하지 않을까.
집에서, 학교에서 아동청소년을 체벌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국에서 아동폭력이나 학대는 언제든 쉽게 등장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신체적으로 물리력에서 우위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를 사람으로,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아동은 쉽게 ‘스트레스 해소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이나 학교에서 아동청소년을 때리는 선생님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붙이면 되는 걸까? 때리는 강도나 맞는 대상(아동)의 나이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 것일까? 어린이집에서만 체벌이 금지되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는 체벌이 온존되는 모순을 어린이도, 어른도 해결할 수 없다. 보육교사로 아동을 때리면 안 되는 사람이나 장소를 제한 한다고 아동학대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체벌)을 금지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와 법제도가 없는 한 아동학대의 굴레는 사라지기 어렵다. 보호와 폭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 한 보호는 언제든 폭력의 명분이 되기도 하는 현실이니까. 인권의 보편성(언제, 어디서든, 누구나)은 아동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도 해당된다. 2011년 9월 한국 4차 심의에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아동의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논평 13호(2011)를 고려하라.”라고 왜 권고했겠는가.
한국도 가입되어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과 ‘아동견해의 존중’을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가정, 학교 및 모든 여타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하게 금지하도록 관련 규칙의 제정할 것을 2차‧3차‧4차 심의에서 반복해서 권고했다. 물론 2014년 9월「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아동학대 친권박탈이나 신고의무가 확대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러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에서 금지한 체벌을 교육과학기술부가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하는 등 아동폭력에 대한 한국정부의 법제도는 일관성이 없다. 따라서 지금 문제는 보육교사의 인권과 아동의 인권이 얽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아동폭력 감수성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동의 권리의식을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이번 어린이집 아동학대 동영상을 보면 아이는 수차례 폭력을 당해서인지 울지도 않았고 주변에 있는 아이들도 침묵하고 있다. 정말 끔찍하다. 만약 아이들이 보육교사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어린이집 교육과정에 부모이든 교사이든 어떤 사람도 내 몸에 폭력을 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되고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왜 폭력을 쓰세요. 저를 때릴 권한은 당신에게 없어요.’라는 것을 말하도록 교육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자기 친구가 맞는 것을 그냥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교사에게 따질 수 있다면 그렇게 쉽게 자주 폭력이 행사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동성폭력을 교육하듯이 자기 권리를 알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교육을 아동에게 했다면 달라질 수 있다. 아니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그렇게 말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놀이터나 장난감이나 과자 등에 쓰여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곳곳에 보육교사와 아동을 감시하는 CCTV를 설치하기 보다는 아동에게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을 말할 권리가 아동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이 더 유익할 것이다.
따라서 아동학대에 대한 예방적 조치는 신고의무 확대가 아니라 당사자인 아동의 권한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 무력하게 폭력을 당하고 그렇게 손상된 자존감이 아이의 몸과 마음을 더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동폭력 근절은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교사들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어리니까 훈육차원에서 매를 들거나 머리를 가볍게라도 쥐어박을 수 있다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아동폭력 문화를 바꾸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행위자인 비아동(어른)에 대한 아동폭력감수성, 인권교육뿐 아니라 아동도 권리의 주체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주체인 아동에 대한 다방면의 교육과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린이집에서 아동과 보육노동자가 함께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비어 있는 권리의 주체인 아동들이 스스로 자신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음을 알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었으면 한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