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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당연한’ 결혼은 없다

2015년 5월 21일은 ‘비혼인의 날’입니다. (언니네트워크가 2014년 제정한 이날은, 올해 첫 기념일을 맞이합니다.) 비혼운동을 열심히 해온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들에겐,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늘 따라다닙니다. 퀴어운동을 열심히 하는 여성단체라, ‘동성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마주칩니다. 이글은 나이를 좀 먹었습니다. 정확히 2013년 9월 10일에 최종 원고가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언니네 특집 ‘동성결혼 피로(疲勞)연’을 위해 쓰여졌으나, 당시 활동가들의 반대(예시들이 너무 광범위하고, 결혼에 대한 주장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동성결혼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리지 못한 글입니다. 첫 번째 ‘비혼인의 날’을 기념하며, 오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의 한 자락으로 이글을 꺼내놓습니다. -글쓴이

어느 날 아침, 책상 위에 청첩장 하나가 놓여있는 걸 발견한다. 앞면에는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그들은 결혼식 앞에 ‘당연한’을 붙였다. 그것은 ‘당연한’ 결혼식이 아니라는 역설일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건, 동성커플을 혐오하는 사회․문화적 시선과 동성커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결혼’이라는 법․제도적 ‘권리’일 것이다. 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저항과 욕망이 그들의 결혼식 앞에 ‘당연한’을 붙이게 했으리라 이해한다. 하지만 또한 이 문구는 사회․문화적, 법․제도적으로 용인되어 온 이성애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거나, 이치에 어긋남이 없거나, 합리적이거나, 공평하거나, 마땅히 그러하다는 뜻의 ‘당연한’... 그런데 어떻게 ‘결혼’이 당연할 수가 있지?

뒷면을 본다. ‘예쁘게 입고 오세요. 대한민국이 로맨틱해집니다.’라는 문구가 환하게 웃는다. 그들의 결혼식 콘셉트는 ‘로맨틱’이라던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그들은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당연한 그들의 결혼은 로맨틱하다고 한다.

몽상에 가깝게 낭만적이거나,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의 ‘로맨틱’... 그런데 어떻게 ‘결혼’이 로맨틱할 수가 있지?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인간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포유류’다. 사자, 호랑이, 곰, 하마, 코뿔소, 코끼리, 돼지, 양, 말, 사슴, 침팬지 등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에게는 성문법이 없으니 뻔한 소리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혼‘생활’을 하지 않는다. 포유류의 대부분은 홀로 생활하거나 무리지어 살아간다. 인간들이 행하는 결혼의 가장 주요한 요건인 일부일처제(한국은 중혼금지국 중 하나다)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포유류는 단 3%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혼자 산다. 그들은 완전한 독립생활을 영위한다. 사랑은 필요할 때만 하면 그뿐이다. 제 자식을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젖을 물리던 어미도, 엄마 없인 못 산다며 행여 놓칠세라 안간힘을 쓰던 새끼도, 어느 시기가 되면 서로 깨끗이 남남이 된다. 그들은 서로의 독립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잠시 스쳐 지나는 섹스파트너에게야 잘 가란 인사조차 남길 필요도 없을 거다. 그들에게 일부일처제가 바탕인 결혼제도을 들먹거린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결혼? 그게 뭔데? 걸리적 거리니까 일단 비켜봐.”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또 아들을 낳아 인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를 아무리 뒤져도 그들이 결혼했다는 얘기는 없다. 법적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이니,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진 못했다 하더라도. 결혼식은? 온갖 생명체가 빛을 발하던 에덴동산에서 맛난 과실이라도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살자 약속했나. 한아름 꽃을 따다 엮어 머리에 씌워주며 너와 함께 살고 싶다 고백했나. 한이불 덮으며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니, 요즘 법대로 하자면 사실혼 관계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포즈도 결혼식도 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기록되지 않았을 뿐, 그들이 결혼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OK. 쿨하게 받아들이겠다. (나는 그런 비혼인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놓쳐선 안 되는 키포인트 하나. 아담과 하와가 결혼을 했다면, 그것은 인류 최초의 중매결혼이라는 거.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고 클릭해서 아담 옆에다가 드래그해놓은 거라는 거. 그들에게 ‘결혼은 로맨스라는데’를 들먹거린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로맨스? 그게 뭔데? 먹는 거면 하나 줘 보던가.”

결혼은 인간의 발명품일 뿐

‘결혼’은 인간이 발명해낸 제도다. 결혼이 발명된 이유로 꼽는 가장 유력한 설은 ‘부족 간의 분쟁과 다툼을 예방 또는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다. 결혼식의 마르고 닳은 주례처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위한 맹세 따위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데 부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결혼이라는 놈이 어쩌다 이처럼 개인의 인생사에 절대적인 지표가 되었을까? 또 이놈은 어쩌다 이처럼 공고히 법적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대답은 어떤 동물보다 긴 인간의 육아기간 때문이라는 거다. 인간은 불행히도 성인(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생식이 가능한 나이를 뜻한다)이 되기 위해 적어도 1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적 성인이 되기 위해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니 이 기간 동안 안정된 육아를 위한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것으로 결혼을 합리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아래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하나, 양육기간이 10년 이상 걸린다는 아프리카코끼리는 모계 중심의 집단생활을 한다. 무리를 이끄는 것은 가장 크고 지혜로운 암컷이다. (그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아를 겨누며 싸우는 무식한 짓도 하지 않는다!) 다 자란 수컷은 무리를 떠나야 하며, 어른 수컷이 무리 안에 편입할 수 있는 경우는, 2세 잉태를 위한 관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시적인 시간뿐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물체인 아프리카코끼리가 양육을 위해 선택한 파트너는 남편이 아니라 자매들이다.

둘, 유럽에 위치한 사회복지국가들의 혼외출산율(법적 혼인관계 없이 태어난 아기의 비율)은 50%를 웃돈다. (2008년 기준 스웨덴 55%, 노르웨이 54%, 프랑스 50%, 덴마크 46%, 영국 44%, 미국 보건통계센터) 유럽연합(EU) 평균은 39.5%(2011년 기준)이다, 중요한 건, 혼외출산율이 도표상 높은 수치에 점을 찍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2012년 기준 혼외출산율은 전체의 2.1%에 불과하다. 유럽국가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아 보이지만, 해당 통계를 낸 1981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란다.) 선진국의 기준처럼 이야기되는 북유럽 국가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안전장치로 선택한 건, 결혼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스템이다.

결혼이 로맨스가 아닌 이유

또 다른 통계자료를 보자. 대한민국에서 2012년 결혼한 이성애 커플 중 36%가 중매결혼이었다고 한다. 현재 영업 중인 결혼정보회사의 수는 1000개가 넘는다 하고, 중매결혼을 부추기는 광고는 아무런 제재 없이 전파를 탄다. 2007년에는 결혼중개업법도 생겼다. 그런데도 결혼이 로맨스라고 우길 건가.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라고 믿는 건(믿게 만드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의 허물을 덮기 위해 고안된 속임수일 뿐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다. 결혼이라는 포장지를 덧씌운다고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 (과대포장은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할 뿐!) 다시 말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애초에 다른 분류다.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했으니까 사랑해야지도 아니고, 사랑은 사랑이고, 결혼은 결혼인거다. 우리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각종의 통신망들로 서로 소통을 한다고 해서 컴퓨터=소통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 국가 35~39세 여성의 비혼률은 일본 22%, 대만 21%, 홍콩 20%, 싱가포르 17%, 한국 12.6%이다.(2010년 기준, 각국 인구조사 결과) 소위 노처녀에 해당하는 이들의 비혼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증가율이 동성애자 혹은 무성애자 여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뜻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 중 대부분은 이성과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사랑하니까 영원도 약속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하길 원할 것이다. (그것이 순간이든, 결과론적으로 거짓이든.) 다만 ‘결혼’이 그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

결혼이라는 괴물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결혼은 자연법칙도, 양육을 위한 필요충분조건도, 꿈에 그리던 로맨스도 아니다. 결혼만큼 부자연스럽고,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으며, 비합리적이고 편파적이며, 편협한 것도 없다. 그러니 동성결혼까지 확대해서 더욱 다양한 ‘결혼’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안일 수 없다. 결국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든 결혼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걸 피할 수는 없다는 거다. 더 많은 먹이를 먹은 괴물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질 뿐, 결코 해체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보자. 동성커플에게 진짜 필요한 건, 결혼이라는 제도가 수행해왔던 사회적 안전망과 그에 따른 권리이지 ‘결혼’이 아닌 거다.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차근차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지, 그 권리를 담보하고 있는 결혼제도를 덥석 물었다간 이빨만 몽창 나가는 수가 있다. 이미 공고히 만들어진 제도이니, 그것을 차지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손쉬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공동체와 파트너쉽을 돌아보지 않는 동성결혼은 불완전할 뿐이다. 나팔꽃이 보고 싶다면, 나팔꽃씨를 심어야 한다. 호박씨를 아무리 정성껏 키워도 나팔꽃이 피진 않으니까.
덧붙임

난새 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