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움터의 새로운 꼭지로 [인권단어장]을 시작합니다. 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말들이지만, 그 의미를 얼버무리거나 소통이 어려운 단어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인권단어장]은 [인권문헌읽기]를 마치고 새로 시작하는 기획입니다. 인권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의 의미를 대화를 통해 생각해보는 기획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하게 시작하지만, 점차 나아지는 기획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글쓴이
- 에휴!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어.
- 쯧쯧! 한숨이 하늘을 찌르겠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인간 존엄성’이 어디 가겠어?
- 인간 존엄성? 그게 뭔데? 난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무력하고 막연해서 화가 나.
- 인간 존엄성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라 존엄성에 대한 상상력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걸 연결해줘. 이를테면 모든 인권의 마중물이라 할까? 네가 지금 인간의 가치가 대접받지 못하는 걸 한탄하는 것도 존엄성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 뭐, 그렇긴 하지만…. 뭐 내세울 만한 지위나 자랑거리가 있어야 대접받지, 나같이 하찮은 ‘노바디(Nobody)’에게 무슨 존엄성이 있겠어?
- 그건 아주 과거로 후퇴하는 생각이야.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 기간, 사람들은 존엄성에 대해 네가 말한 것처럼 생각했어. 높은 서열의 지위(신분)에 속하거나 뛰어난 덕을 지녀야만 존엄하다고 여겼어. 존엄성의 어원인 ‘dignitas’에는 그런 위계적 요소가 담겨있어. 존엄성은 원래 ‘공경을 요하는 가치’인데 우러름을 요구하는 가치란 게 평등하기보다는 차별적일 수밖에 없는 거야. 높은 집안에 잘 태어나거나 재산이 많거나 명예로운 자질을 갖거나 인데, 명예로운 자질을 키울 수 있는 것도 상당히 여유로운 삶을 조건으로 하는 거였어. 그러니까 어차피 존엄성의 조건은 동어반복이야. ‘천한’ 다수와 구별되는 ‘귀하디귀한’ 소수를 위한 용어가 존엄성이었어. 요즘 말로 하면, 보통 사람이 아닌 위대한 사람의 특성인 거지.
- 그런 존엄성이 어떻게 인권의 마중물이라는 거야?
- 존엄성의 성격을 싹 바꿨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저항으로 존엄성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어. 즉,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것으로,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게 아니라 평등한 것으로 탈바꿈했어.
- 도대체 무슨 말인지….
- 현대의 인권에서 말하는 인간 존엄성은 ‘잘’ 태어나는 걸 조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으로 충분해. 특별한 소수의 존엄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것이니 보편적인 거야. 존엄성을 지위‧재산‧덕과 명예 등 외적인 성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된 가치로 본거야. 또 모든 사람이 일체의 특질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갖는 존엄성이니 평등한 거야. 어떤 사람의 존엄성도 다른 누구보다 덜하거나 더하지 않다는 거지.
- 어떻게 그런 큰 변화가 생겼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 근대인권혁명을 통해 존엄성의 위계적 요소를 떨어뜨리고 부숴왔어. 결정적으로 인간 존엄성의 의미를 확인한 것은 세계인권선언의 제정이야.
- 왜 하필 세계인권선언이 계기가 된 거지?
- 세계인권선언의 배경을 생각해봐.
-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핵폭탄…. 존엄성과 상반되는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지.
- 맞아. 결코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될 참상을 겪은 사람들에겐 근본적인 가치의 전환과 재확인이 절박했어. ‘다르게 살자’는 구호만으론 될 일이 없어. 구체적인 실천의 기준과 약속이 필요했지. 그게 세계인권선언의 제정이야.
- 그 이전 시대에도 인권선언은 많았잖아? 인간 존엄성이 세계인권선언에서 특별할 게 뭔데?
- 뭘 근거로 인간이 인권을 갖느냐, 왜 인간이 존엄하냐는 질문에 대한 접근방식도 답도 다르기 때문이야. 이전 시대의 인권선언은 절대자(신) 또는 신을 대신한 ‘자연’에 기대거나 인간의 ‘이성’을 근거로 인간 존엄성을 정당화했어.
- 세계인권선언의 존엄성은 뭐가 다른데?
- 신이나 자연의 권위를 빌려서가 아니라 존엄성을 ‘인간끼리의 약속’으로 강조한 점이 달라. ‘인간이 조물주의 형상대로 창조됐으니 존엄하다’거나 ‘만물의 영장’이니까, ‘이성을 가졌으니까’ 등등의 설명을 모두 제쳐두었어. 특정 종교나 사상을 뿌리로 하는 일체의 것들을 무시하자는 의미에서가 아니었어.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과 신념, 역사와 문화를 가진 다양한 사람과 민족과 국가들이 있어. 이들 중에 누구의 것을 선택하거나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차이 속에서도 ‘중첩되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봤어. 아무리 달라도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자는 데서는 겹치는 합의가 있다고 본거야.
- ‘중첩되는 합의점’이라 …. 그럼, 합의의 목적은 뭐야?
- 실천을 강조한 거지. 인간 존엄성이 이런저런 근거로 정당화된다고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실천을 위한 초석으로 삼는 걸 중요시한 거야.
- 그럼,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인간 존엄성의 의미는 뭐야?
- 선언의 제정자들은 그 개념에 대해 콕 집어 정의하지 않았어. 인간 존엄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많다고 봤기 때문이야. 아주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 사상과 신념들 속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있다고 봤어.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란 게 어떤 특질이나 본질을 근거로 한다는 시각을 거부했어. 섣부르게 본질을 규정하는 게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고 배척하는 구실이 돼온 역사가 있잖아.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인간 존엄성은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동등한 내재적 가치일 뿐 어떤 특별한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야. 내재적이란 건 기본 장착된 거니까 분리할 수도 없고 줬다 뺐었다 할 수 없다는 거야. 다른 말로 하면, 불가양성과 불가침성을 갖는다는 거야. 모든 인간은 단지 인간임으로 해서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지. 이런 존엄성을 경제적‧정치적 이익이나 그 어떤 것과도 거래할 수 없는 비타협적인 가치로 삼자는 게 세계인권선언의 기본적 약속이야.
- 흉악 범죄를 저지르거나 파렴치한 사람의 존엄성도 그렇다는 거야?
- 물론이지. 존엄성은 성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거니까,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치러야 하는 것은 그 죗값이지, 존엄성을 박탈당할 수는 없는 거야. 흔히 행실이나 업적을 따져서 ‘인간 자격이 있네 없네’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에 걸맞은 평가와 처벌 또는 보상이지, 인간 존엄성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타인의 존엄성을 재단하고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흔들리는 건 바로 나의 존엄성의 뿌리야. 인간 존엄성은 상호적이고 관계적인 거니까.
실천을 위한 약속의 전제
-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간 존엄성이란 게 너무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거 아니야?
- 나는 오히려 다른 예를 들고 싶은데. 인간 존엄성을 ‘너는 온 우주에 하나뿐인 존재’, ‘너는 뭐든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란 식으로 말로 치켜세울 뿐이거나 ‘사회가 너를 어찌 대하든 네 자신이 무시하면 괜찮다. 내면의 평화와 자존감을 키워라’는 식으로 주문하는 것이 오히려 존엄성을 낭만화하는 것 같아. 정작 존엄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같이 뭘 실천하자고 하면 내빼잖아? 그런 게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아닐까? 존엄성은 실천을 위한 약속의 전제란 걸 기억했으면 해.
- 지금 하는 말은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관계의 문제를 가리키는 거야?
- 맞아. 인간 존엄성이 인권의 기초이긴 하지만 둘이 같은 건 아니야. 인권은 인간 존엄성을 현실로 구체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어. 존엄성을 실현하는 삶이 목적이라면, 인권은 그것을 위한 사회적 실천의 세트라고나 할까. 인간 존엄성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게, ‘적어도’ 이걸 지켜줘야 한다는 테두리를 만들도록 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기준과 합의가 있어야 실천 여부를 따질 수도 있지.
- 그럼, 구체적인 권리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존엄성은 쓸모없는 거 아냐?
- 존엄성은 ‘쓸모’에 종속되지 않아. 설령 우리가 특정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또는 다수의 타인이나 국가가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려 들려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우리 존엄성을 갖고 있고, 이 존엄성은 결코 앗아갈 수 없는 거야. 쓸모가 있고 없고를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인간 존엄성이니까. 흔히 인간 존엄성을 인권의 초석이라고 하는데, 기본 중의 기본 원칙이라는 말이야. 세상에는 쉽게 합의할 수 없고 서로 다투는 권리와 원칙들이 많아. 이것들이 다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심판 역할을 하는 게 존엄성이야. 서로 간에 조정이 필요한 여타의 권리나 원칙들과 달리, 존엄성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기 때문에 모든 권리와 원칙들의 토대이고 초석이라 하는 거야.
- 결국 존엄성의 쓸모가 있다는 말 같은데.
- 하하. 쓸모란 수단을 강조하는 것 같으니 존엄성의 ‘힘’이라고 말하는 게 어떨까? 때론 무력하고 모호해 보여도, 존엄성은 인간다운 삶의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버티는 힘이 돼. 현실적으로 권리의 보장이 잘돼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존엄성을 호출하진 않을 거야. 존엄성은 눌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과 모욕을 드러낼 수 있어. 존엄성에 호소함으로써 사람들은 부당한 처우를 문제 삼고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존엄성은 지금은 안 보이는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버팀목이야. 또 존엄성은 권리의 왜곡을 막을 수 있어. 흔히 재화나 서비스를 받으면 권리가 충족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재화나 서비스가 전달됐다고 해서 존엄성이 존중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오히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낙인을 찍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재화와 서비스가 이용될 수도 있어. 권리의 가면을 쓴, 존엄성을 위협하는 접근을 가려내는 것이 존엄성의 고유한 힘이야.
- 존엄성의 힘? 존엄성을 말하면 코웃음 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 왜 우리가 인권을 받아들이고 인권을 실천하려 하는지, 환기가 필요할 때가 있어. 탁하게 고인 공기를 환기시키듯이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의 감정,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을 환기시키는 공기의 주입이 필요해.
- 그러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존엄성을 느낄 수가 없는 것 같아.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존엄성에 찬물을 끼얹는 걸 거야. 아주 가끔이라도 존엄성이란 말에 스파크가 일었으면 좋겠어.
-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자동적인 게 아니야. 스파크를 일으키려면 뭔가 계속 자극하고 부딪쳐야지. 존중도 익히고 가꾸고 훈련하는 게 아닐까?
- 존엄성도 어렵지만 존중이란 말도 어려워. ‘존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존중받지 못하는 건 수치스럽고 우울하고 화나고, 감이 좀 오는데, 존중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 존엄성을 존중한다고 말하지, 평가한다고 말하진 않잖아. 왜 그런지, 존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다음에 얘기 나눠보자.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