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논리와 이해당사자 배제 속에 이루어진 연금 논의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5월 2일 여․야간 합의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으로 평가하면서 공무원연금 개악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보험료 29% 인상과 10.5%의 보장성 삭감을 담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해 공무원과 교사의 동의과정은 보장되지 않았고, 실제 이해당사자의 의견과 무관하게 사회적 대타협이 성사된 것처럼 포장되었다. 그러면서 모든 사회적 이슈는 국민연금 50% 상향에 대한 실현 여부를 두고 청와대, 복지부의 재정괴담으로부터 이에 맞서는 의견으로 지난 한 달이 숨차게 지나갔다. 이렇게 흘러왔던 지난 한 달간의 과정에 대한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한다.
첫째, 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역연금(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공적연금 제도이다. 이러한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개혁 방향은 재정논리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제도를 축소시켜왔다. 기초연금의 경우, 국가재정 건전성을 내세워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시기 공약했던 ‘65세 모든 노인에게 20만원’대신에 ‘소득하위 70%에게 차등적인’ 기초연금이 도입되었다. 국민연금은 연금기금의 규모와 소진시기를 재정안정화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서 보장성을 축소하면서 보험료를 증가하는 방식으로 개혁되어 왔다. 특수직역연금은 제도별 차이가 있지만, 고용주로서 국가가 부담하는 몫에 대해 조세논리로서 국민의 세부담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포장되었고, 꾸준하게 제도는 축소되었다. 결국 일련의 공적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적정성 보다는 재정논리의 판단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이번 5월 2일 국민연금 보장성 상향에 대해서도 청와대 및 복지부의 지나친 재정논리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결국 5월 29일 본회의에서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된 방안이 통과되었다. 종합적으로 공적연금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정책의 구조는 재정 안정성과 편의성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볼 수 있다.
둘째,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제 혹은 비존중적인 태도이다.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대해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은 ‘야합’으로 규정하면서 개정안 폐기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배제된 채, 공무원과 교사들의 아름다운 양보를 전제로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가 합의됐다고 평가됐다. 이러한 구도는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반대하는 주체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자,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재정책임을 결국 국민 내부의 분할정치를 통해 자본책임의 강화 없는 연금개혁의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향후 공적연금 강화 운동진영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원칙은 철저하게 재정논리로 연금개혁이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가입자 중심의 재정책임 강화가 아닌 사회적 부양비용에 대한 자본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노후소득보장과 국민연금
자본주의의 발전 이후 생산성과 과학의 발전으로 조직된 사회제도에서 노화, 질병, 의존 등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부정적인 관념은 노인을 사회제도에서 배제시키고 약자화 시키는 논리로 이어졌다. 노후의 사회보장이 취약한 조건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은 강조되어 왔고, 그 결과 노후소득보장과 같은 공적 기능 축소가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노령’이란 조건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서 사회보장권은 당연한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의 1에서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역무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불구,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그 밖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다른 생계 결핍의 경우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했다. 이와 같은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각 국가별 노동권 및 시민권이 헌법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수준에서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수단으로서 국민연금제도가 존재한다. 국민연금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노령이란 변수를 위험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이 보장될 수 없다면 노년기는 두 가지 방향으로 극단화 될 것이다. 소득과 자산이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철저한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고, 전자는 금융시장을 통한 사적 보장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에 공적 노후소득보장 강화는 경제활동 시기 임금 및 소득으로 노령소득까지 보장받지 못하는 대다수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삶의 문제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보험료 3%, 명목소득대체율은 70%로 도입되었다. 예를 들면, 100만원 소득자가 3만원씩 40년간(물가인상, 임금인상 변수 고정) 보험료를 불입했을 때, 60세 이후부터 70만원의 연금급여를 받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설계는 연금 지급개시 20개월 만에 수급자 개인이 불입했던 보험료수입이 모두 지출되면서 후세대 기여금에 의지된다. 이에 ‘저부담-고급여’로 비판받으면서 보험료는 9%까지 인상되었고, 연금수급 개시연령도 65세로 늦춰졌다. 급여보장성은 1999년 60%, 2008년 50%로 이미 인하되었고, 향후 2028년까지 매년 0.5%p씩 하락하여 40%까지 축소될 예정이다(2015년 현재 46.5%). 이렇게 40년 동안 보험료를 거르지 않고 완납할 경우를 명목소득대체율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노동자와 서민의 삶은 40년간 보험료납입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지 못한다. 이에 국민연금 가입자가 실제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 즉 실질 가입기간을 기준으로 급여보장성을 산정하는 것을 실질소득대체율로 본다. 그러므로 명목소득대체율 50%인상이 실질소득대체율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 고용이 안정되어 있는 사업장 가입자의 경우 10%p 인상되는 명목소득대체율을 통한 보장성 강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 및 소득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나 지역가입자의 경우, 명목소득대체율이 증가하더라도 실질소득대체율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향후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방향은 실질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한 제도내적․제도외적 정책정비이다. 고용안정 및 임금인상과 같은 노동정책은 공적연금의 제도적 지속성을 위해서도 절실한 전제조건이 된다.
공적연금 강화, 가입자중심의 연금 정치가 필요해
국민연금은 평균 자신이 기여한 보험료보다 많은 급여를 보장받도록 설계되어있다. 여기서 자신이 기여한 보험료 이외의 추가 재원은 후세대의 보험료로 연계된다. 이처럼 공적연금은 세대간 연대를 원칙으로 하고, 이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세대간 연대로 해결해야 할 노후부양비용을 세대간 갈등을 촉발시키며 각 가입자의 재정책임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져 왔다. 만약,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동일한 임금이 적용된다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도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료 수입이 확보된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이러한 변화는 저출산의 경향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는 전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의 재생산비용을 축소시켰다.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서 자본이 기본적으로 부담해야 할 재생산비용조차도 제대로 투입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가입자로는 구분되지 않는 자본과 노동의 일괄적인 재정책임이 아닌 자본의 재정책임을 강화시켜, 연금사각지대를 위한 보험료 지원사업의 재정을 마련하고, 유연화된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통해 임금비용을 증가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제조건이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기간의 제한 없이 직접적인 노동자와 서민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중요한 운동의 원칙은 민주성과 노동자 및 서민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이해당사자 정치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 및 전문가 중심의 연금논의는 그 기본적 원칙과 참여 방식이 재고되어 가입자 중심의 연금정치로 확대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제갈현숙 님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