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듯이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서로의 노동과 서로의 감정에 기대고 빚지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인권의 권리목록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정치공동체이든 생활공동체이든 간에 그 공동체의 삶을 전제로 권리와 의무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옆을 보는 순간, 내가 처한 위치를 자각하는 순간에 ‘인권’의 소리는 시작된다. 같은 인간인데 왜 옆에 있는 누군가는 폭력을 당해야 하지, 왜 모욕적인 순간에 처해야 하지, 왜 난 차별받는 거지, 뭔가 불합리한 거 같은데 등등의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누구나 인권운동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어렵게 표현하면 누구나 유엔에서 말한 인권옹호자가 될 수 있다.
1998년 유엔 총회에서 정한 인권옹호자 선언에서 말하는 인권옹호자란 바로 나의 인권이나 타인의 인권을 찾기 위해서 하는 활동하는 사람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즉 모두에게 인권옹호자가 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국내적․국제적 차원에서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고 이를 보호 및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인권옹호자선언 1조)
그런데 그 권리를 행사했다고 해서 탄압하는 사회나 국가가 많다. 그래서 인권옹호자 선언을 만든 후인 2000년에 인권옹호자 상황에 관한 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두었다가 2008년과 2011년에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을 두었다. 인권옹호활동을 했다고 고문당하거나 구속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다시 천명하고 각국 정부가 이를 위해 노력하는지 살펴보겠다고 한 것이다. 인권옹호자에 대한 탄압은 전 세계에 있지만, 나라마다 인권옹호자를 탄압하는 방식이나 양상은 다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행동하겠다는 약속과 실천이 인권옹호선언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이 하는 말이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였다. 세월호 참사에서 짓밟힌 인권을 되찾기 위해 실천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약속했고 그 약속을 행동에 옮겼다. 하루 종일 방송을 보며 홀로 눈물 흘리다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든 사람, 노란리본을 만드는 사람이 그렇게 생겨났다. 때로는 1인 시위를 하는 일이고 때로는 집회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고 인권옹호활동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배에 탄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무슨 이유로 배에 탔건 간에 그/녀도 존엄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 같은 사람으로서 생명이 무참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행동한 것이다. 이렇듯 인권은 존엄에 대한 상호인정, 책임감 등 유대관계의 차원을 포함하는 말이다. 한편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응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지가 나를 큰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민지와 예진이는 친했어요. 민지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고 우리 애는 살았어요. 사람들이 물어요. 아이가 살았는데 왜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일을 하느냐고. 이유는 여러분하고 똑같아요. 못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예요.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요, 아빠 진상규명할 거지에요.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는데요. 민지아빠하고 약속을 했어요. 끝까지 가겠다고. 1년 동안 유가족하고 같이 한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할 거예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장예진 님의 아버지)
“배에서 나온 CCTV에서 식당으로 가는 우리 수인이의 밝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습니다. 왜 우리가 CCTV 로 그 마지막 모습을 봐야 합니까? 왜 정부는 우리에게 그런 아픔을 줬을까요? 세월호 구조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정부가 구조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진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곽수인 님의 아버지)
“나라에서는 치유네 뭐네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이라도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다시 회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 저도 한 사람의 국민입니다. 참담합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국민 여러분, 끝까지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김민지 님의 아버지)
“인권이 무너진 이 정부에서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인권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304명을 몰살시키고 물에 수장시킨 이 정부에 과연 인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량한 시민 앞에 인권은 무너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456일째인데 여러분들 무엇에 대해 말씀 하려 하십니까. 저는 세월호 인양 없이는 이 나라에는 어떤 인권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아직 제 아이가 물속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아이 아빠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지금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찾겠다는 신념으로 그저 버티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하루빨리 (세월호) 인양해서 진실을 찾아야지요. 국민 여러분이 여태 도와주셨잖아요. 인양하는 것도 함께 하셔야지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미수습자 허다윤 님의 아버지)
가족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고 호소한다. 때로는 유가족들이, 때로는 미수습 가족들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달라”는 소리를 듣고 각자 마음의 소리를 찾아 실천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그렇게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과 함께 해왔다.
압수수색이나 구속으로도 우리의 발을 묶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정부, 경찰 등의 권력기관은 그 소리를 차단하고 그 소리를 못 듣게 하려는 짓을 많이 한다. 집회를 금지하거나 차벽을 세우고 연행을 하고 기소를 하면서 사람들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416연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박래군, 김혜진 416연대 활동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일이다.
경찰은 올해 4월과 5월에 열린 세월호 참사 집회에서 불법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에서 인권옹호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은 바로 집회시위의 권리이고 결사의 권리이다. 그런데 그 권리(집회시위)를 이유로 탄압한다니, 사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인 셈이다. ‘당신은 인권(옹호)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2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인권 및 기본적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평화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2. 국가는 이 선언문에 언급된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어떤 폭력이나 위협, 보복, 사실상 또는 법률상의 불이익, 압력, 기타 자의적 행위로부터 관할 당국이 모든 사람을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개인, 집단 및 사회 기관들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선언(약칭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 중, 유엔총회 결의 53/144 (1998년 12월 9일)
2. 국가는 이 선언문에 언급된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어떤 폭력이나 위협, 보복, 사실상 또는 법률상의 불이익, 압력, 기타 자의적 행위로부터 관할 당국이 모든 사람을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개인, 집단 및 사회 기관들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선언(약칭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 중, 유엔총회 결의 53/144 (1998년 12월 9일)
그런데 얼핏 생각해도 경찰의 대응은 과하다. 백번 양보해서 경찰의 주장대로 그들이 불법시위를 했다면 그건 현장 사진으로 충분하다. 집회시위법 위반이나 일반교통방해 등은 압수수색으로 찾아낼 증거가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경찰들이 집회시위 장소 곳곳마다 국민 세금으로 엄청나게 좋은 채증장비를 갖고 불법 채증을 마구 벌이고 있으니 경찰 주장대로 불법시위를 했다면 증거는 이미 넘치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속영장 청구도 과하다. 신체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이기에 불구속 수사가 기본 원칙인데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 도주 우려의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과한 수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탄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 시민들, 활동가 등 모두에게 하는 경고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협박이다. 이른바 위축효과를 노린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 인권의식이 생기고 인권옹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에, 이들을 협박함으로써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인권의식을 뒤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국가권력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협박이 쉽게 통할까.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당일 단 2시간 만에 규탄성명을 함께 낸 모임만 전국 600개가 넘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답이다. 우리는 304명이 속절없이 죽는 절망의 밑바닥에서부터 희망의 행동을 시작했기에 어떤 절망스럽고 끔찍한 정부의 탄압에 맞닥뜨릴지라도 쉽게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도 안다. 그것으로 우리의 연결을 막을 수도 없고 우리의 걸음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을.
정의를 확신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할 수 없듯이 인간 존엄성을 확신하지 않고 인권을 실현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믿기에 우리는 ‘인권’을 향한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말로 국가권력의 탄압에 맞선 우리의 의지를 갈음한다.
“어디까지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국민대책회의만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가족을 탄압하는 거죠. 세월호 시행령이 발동됐으니까 국민들이 많이 붙을까봐 그걸 막으려는 거지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박성호 님의 어머니)
“416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어요. 이제부터 탄압을 시작하려나보다 싶었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세상이 잠잠한 거 같아서…. 주변이 너무 안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위축되지 않아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김다영 님의 어머니)
“우리가 싸울 건덕지를 만들어주는구나 했어요. 이슈를 만들어주는 거지, 더 자극을 하면 우리가 뭉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정부가 감추려고 하는 게 더 많다는 생각도 들고. 의혹이 커지는 거죠. 국민들과 우리를 고립시키려고 하니까 더 큰 의혹이 들죠.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임세희 님의 아버지)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