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2014년 2월 파업 한번 했다고 수십억대의 손해배상금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기업에 맞서, 한 여성이 놀라운 운동을 제안하였다. 배춘환 씨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손해배상금 47억을 10만 명이 4만7천 원씩 모으면 책임질 수 있지 않겠냐는 편지와 함께 4만7천원을 잡지사 <시사인>으로 보내왔다. 그 편지가 불씨가 되어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 캠페인은 이른바 지식인, 명망가 등이 붙으면서 모금운동뿐만이 아니라 손배가압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아래 <손잡고>)’ 운동으로 번져갔다. 단체행동권을 돈으로 무력화 시키려는 자본에 맞서 많은 시민들이 호응한 결과 <손잡고>는 불과 두 달여 만에 14억을 모았다.
<손잡고> 부당해고 사건 드러나
<손잡고>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민들의 응원이 있었지만, 운영위원으로 결합했던 한홍구 씨의 언행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016년 7월 20일 <손잡고> 활동가 부당해고 사건 인권·노동권 침해 진상조사 소위원회(박래군, 박병우, 윤지영)는 「<손잡고> 활동가 부당해고 관련 사건 인권·노동권 침해 진상조사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2014년 2월 <손잡고> 1기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한홍구 씨는 갓 출범한 <손잡고>에 “사무실과 활동가를 제공”하기로 약속하였고 1기 운영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한홍구 씨의 제안을 수용하였다. <손잡고> 운영을 하면서, 한홍구 씨는 활동가에게 평화박물관 및 개인 업무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활동가는 업무의 과도함을 호소하며 <손잡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2015년 7월 활동가는 운영위원회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결국 한홍구 씨는 활동가를 해고하였다.
한홍구 씨가 저지른 독단과 전횡도 문제지만 이것이 가능하도록 했던 <손잡고> 운동이 조직되었던 방식에 관해 질문해보려 한다. 우선, 한홍구 씨는 2013년 평화박물관 사무처를 폐쇄하고 활동가들을 해고하는 등 노동이슈에 관해 매우 권위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한홍구 씨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손잡고> 운동을 시민사회운동으로 제안하고 단체 출범을 주도하도록 두는 것이 적절했는지에 관해 질문이 생긴다.
두 번째는 어떤 운동의 전망을 그리며 물적, 인적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명망’을 어떻게 위치지울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명망이 전망을 대체하는 것과 전망 아래 명망을 의미화 하는 것은 매우 다른 접근이다. 초기 노란봉투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드러나는 풀뿌리 운동과 같은 흐름이 보였던 반면, <손잡고> 운동은 한홍구 씨와 같은 몇몇 명망가로 대표되면서 오히려 운동이 덜 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세 번째는 단체를 만들 때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역할분담의 구조와 위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위계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직책의 위계가 존엄의 위계를 만들어버린 관계를 운동의 과정에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다. <손잡고> 활동가가 조직운영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홍구 씨가 해고 통보를 날릴 수 있는 위계는 분명 재검토되어야할 관계이다. 이 점은 2013년 12월 평화박물관 사무처 활동가 집단사직 과정(사퇴의 변은 2014년 1월 발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손잡고> 운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절한 역할분담의 구조를 함께 만들고, 책임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하고 합의했다면 이런 문제가 쉽게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동의 사유화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
결국 <손잡고> 운동은 의사결정과 실행구조, 재정을 만들고 책임지는 방식, 사람들이 조직되는 관계망이 한홍구 한사람에게 쏠리다 보니, 조직 내 민주주의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한홍구 씨의 ‘명망과 업적’을 신뢰한 나머지 <손잡고> 운동을 ‘함께’ 만들어내기 위한 각자의 노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가 지금 <손잡고> 운동이 처한 현실로 보인다. 어떤 운동을 맨바닥에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논의하고 실무를 챙기며 돈을 마련한다. 이것을 하지 않고 조직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적어도 나의 상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사유화된 운동은 사유화된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손잡고> 운동은 한홍구 씨의 전횡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활동가가 해고된 이후 1기 운영위원들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여전히 한홍구 씨의 언행을 해결할 수 없었다. 2015년 10월 1기 운영위원을 그만 둔 상황에서도 한홍구 씨는 평화박물관 씨앰에스(CMS)를 통해 모았던 <손잡고> 재정의 일부를 지금껏 틀어쥐고 있는 상태이다. 2016년 4월 <손잡고>는 2기 운영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해고된 활동가를 복직시키고, 한홍구 씨에게 재정을 반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 발표 이후 <손잡고> 운동은 사회운동과 간담회를 시도하는 등 지금도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슨’ 운동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결국 이 문제는 운동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상호소통과 책임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민주주의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민주주의도 운동의 과정과 결과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한홍구라는 개인이 벌인 전횡에 대한 비판을 넘어, 운동이 조직되는 과정에서 무엇에 주목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가이다.
덧붙임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