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인사권은 수장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보니 국가기관의 인사권을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이 아니다. 인사청문회가 전부인 경우도 있고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드러나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처럼 대통령이 무시하면 임명할 수 있을 정도다. 최순실 씨가 자신의 측근을 청와대나 국가기관에 집어넣는 인사비리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탓이다. 창조경제추진단장까지 지낸 광고감독 차은택 씨나, 전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최씨의 헬스트레이너 윤전추 씨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씨에게 측근인사청탁을 했다니, 그 끝은 어딘지!
헌법상 독립기관인 사법부의 대표적 기관인 대법원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도 결정과정이 투명하거나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돼 있지 않다. 그나마 2011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의 영향이 강해‘밀실인선’을 막기에는 부족하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10명 가운데 과반이 넘는 6명은 당연직 위원(선임대법관,법원행정처장,법무부장관,대한변호사협회장,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으로 모두 위계가 강한 법조사회의 영향을 받는 법조인이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비당연직이 4명이라고 하지만 부족하다. 후보추천위원회의 회의 절차나 내용도 비공개라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어떻게 누가 대법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인권위원 인선은 지명권자 맘대로
그런데 또 다른 독립적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인사시스템은 어떠한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같은 것도 없다. 지명권이 있는 기관만 명시됐지 어떤 절차를 거쳐서 인권위원을 인선하는지 그 절차는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 올해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Global Allianc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의 등급심사를 잘 받기 위해 개정했다고 하는 인권위원 자격 요건도 엉터리다. 대부분 법조인이거나 교수 등이면 마치 자격이 되는냥 법에 명시돼 민망할 정도다.
가장 중요한 인선절차인 후보추천기구는 개정된 인권위법에 한마디 언급도 없다. 다만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라고만 돼있다. ‘인권위원 후보추천을’ 어디에서 들을지, 어떤 공적 기관을 통해 들을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지명권이 있는 기관인 청와대, 국회, 대법원 등에 투명하고 공개적인 후보추천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인사권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자신과 코드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인권위원으로서 임명해도 상관없다. 그가 인권위원 자격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임명할 수 있다.
제5조(위원회의 구성) ①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한 11명의 인
권위원(이하 "위원"이라 한다)으로 구성한다.
②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개정 2016.2.3.>
1. 국회가 선출하는 4명(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다)
2. 대통령이 지명하는 4명(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다)
3.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③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신설 2016.2.3.>
1.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부교수 이상의 직이나 이에 상당하는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2. 판사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3. 인권 분야 비영리 민간단체ㆍ법인ㆍ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등 인권 관련 활동에10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
4. 그 밖에 사회적 신망이 높은 사람으로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람
④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을 선출ㆍ지명하여야 한다. <신설 2016.2.3.>
-국가인권위원회법
권위원(이하 "위원"이라 한다)으로 구성한다.
②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개정 2016.2.3.>
1. 국회가 선출하는 4명(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다)
2. 대통령이 지명하는 4명(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다)
3.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③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신설 2016.2.3.>
1.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부교수 이상의 직이나 이에 상당하는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2. 판사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3. 인권 분야 비영리 민간단체ㆍ법인ㆍ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등 인권 관련 활동에10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
4. 그 밖에 사회적 신망이 높은 사람으로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람
④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을 선출ㆍ지명하여야 한다. <신설 2016.2.3.>
-국가인권위원회법
그래서 올해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에서 등급심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정부와 한국인권위에 ‘단일한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오래된 요구였다.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인권위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누구보다도 청렴해야하고 권력과의 친화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임명권자의 ‘보은인사’로 임명된 인권위원이 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일중 하나는 소수 권력자가 국정을 좌우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이다. 그 중 국가인권위원회 인선절차 마련도 포함돼야 한다. 이상한 대통령이 무자격 반인권 인물을 인권위원으로 인선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훼방 놓았던 역사와 현재를 상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가 처음 임명한 인권위원이 최이우
그러면 박근혜가 임명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에 인권위원을 직접 임명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 때 임명한 인권위원을 연임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피해왔다. 그런데 2014년 처음 지명한 사람이 최이우 씨였다. 그는 인권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청와대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반동성애 차별활동을 주로 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래목회포럼이라는 단체의 이사장과 상임이사를 역임하면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활동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그러한 내용의 칼럼을 쓰는 등 동성애 혐오를 선동한 인물이다. 심지어 국제인권기구에서 수차례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교회가 철저하게 거부해야한다고 했다.
어버이연합이 앞장선 동성애혐오, 그와 함께 한 일부 보수기독세력
청와대가 일부 보수기독교의 반동성애그룹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짐작은 되지만, 반인권적 인물을 인권위원으로까지 임명하는 것은 문제다. 사실 올 봄 <어버이연합게이트>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왜 어버이연합에 돈을 줬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어버이연합(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노동자들 시위를 비난하는 집회도 많이 하니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전경련의 이승철 부회장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그 뒤에서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있었다. 전경련과 청와대, 최순실이 다 얽혀있는 일이 <어버이연합게이트>다. 아직도 어버이연합이 “박근혜 대통령 힘내세요!”라는 집회를 JTBC 방송사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건 아주 긴밀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버이연합이 주로 하는 일은 크게 다섯 가지로 ▵세월호유족 비난, ▵노동자 등 시위자들 비판, ▵차별금지법 반대 및 동성애 혐오, ▵박원순 시장 비판,▵대북강경정책 주장 등이다. 이중 동성애 혐오는 시국현안에 같이 끼어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소수자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차별시정기구가 인권위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쉽게 먹힐 수 있는 차별선동의 키워드 중 하나가 동성애혐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득권이 있는 일부 보수기독교의 목사들이 합세한다면 이러한 차별선동은 금세 힘을 받는다.
2010년 인권단체들이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사퇴운동을 할 때도, 어버이연합이 갑자기 나타나 ‘동성애 조장하는 인권위 규탄’ 등을 외치며 인권활동가들을 공격했다. 때로는 현병철 전 위원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따라서 어버이연합을 박근혜정부가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만연한 혐오정치 중 주요한 것 중 하나가 성소수자혐오였다. 그걸 앞장서서 한 것이 어버이연합이고 그들과 함께 한 세력이 보수기독세력이다. 그러니 박근혜 씨가 처음 임명한 인권위원이 최이우 씨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현직 인권위원이 인권에 반하는 미래목회포럼 활동을?
지난 10월 29일 아시아투데이 기사에 의하면 10월 27일 미 미래목회포럼(대표 이상대 목사)이 개최한 ‘한국기독교인권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포럼에서 최이우 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내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문제는 많은 인권 문제들에 묻혀 교묘하게 넘어 가는 상황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차별사유 등을 명시한 법이 인권위법이다. 현직 인권위원이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사유로 포함된 인권위법의 내용을 부정하며 동성애 차별행위를 해도 되는 것인가? 이는 인권위원의 직무에 어긋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그를 그대로 현직 위원으로 둬도 되는지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씨도 곧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아니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 김에 그가 임명한 무자격자들도 스스로 인권위원직을 사퇴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그러면 무자격 인권위원의 사퇴운동을 벌여야 하나?)
덧붙임
명숙 님은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이자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