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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2달간의 휴식. 복귀와 함께 1억남(??)이 되었어요

제법 달랐던 겨울이었습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1년 동안 보기 힘들었던 사람, 매일같이 만나던 사람, 친구 모임,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내 간의 한계치를 탐구하며 긴긴 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은 훌쩍 즐겼더니, 작년 겨울 탈이 나버렸습니다. 작년 10월 안식주에 여행을 다녀온 후 얼굴에 작은 알레르기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1주 2주가 지나고나니 알레르기는 점점 심각해져 나중에는 경기를 막 끝낸 복싱선수가 된 것처럼 온 얼굴이 붓고 빨개지고 진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알레르기가 너무 심각하다고, 약을 강하게 처방하자고 했습니다. 스테로이드에 항히스타민제에 정말 신나게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고 따가움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결국 활동을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바깥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도 한 달 정도 병가를 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몸을 바꿔야 할 것 같다며 단식을 추천했습니다.

 

11월 말에 병가를 내고 단식을 준비하는데, 민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오롱 정리해고 투쟁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데, 따뜻한 집에서 단식을 하며 혼자 투덜거리는 게 웃기기도 했습니다. 단식에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난 후에는 서울시청에서 무지개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고, 고민을 나누던 사람들의 농성인데 찾아가고 싶었지만 ‘먹을 게 잔뜩 있어’ 라는 농성단의 이야기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농성장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다른 때보다 좀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같이 고민하고 싸워야할 시점에 집에서 농성장 스토킹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한심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2월 한 달 동안 몸을 추슬렀습니다. 고향집에 내려가 밀렸던 책도 보고, 연말 시상식을 몇 년 만에 보기도 했습니다. 건강이 참 중요하단 생각을 이제야 했습니다. 만약 평소에 몸을 잘 챙겼다면 나도 서울시청에서 함께 농성할 수 있었을 텐데, 추운 겨울 어디선가 싸우는 사람들과 온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1억짜리 손해배상

 새해가 되고 사랑방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복귀한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올해 활동계획도 아닌,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온 한통의 서류였습니다.

2014년 봄부터 인권오름에 에이즈 환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방치된 자리, 수동연세요양병원]을 연재했습니다. 사람사랑 활동이야기에서도 보셨겠지만, 2012년부터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 그리고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방관하며 생긴 에이즈 환자 건강권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언론중재위에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를 요청하였습니다. 1억짜리 손해배상에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친구들에게 나 잘나간다며 장난도 치고 했지만, 마음속엔 속상함이 가득이었습니다.

작년 연말에도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는 인권오름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했었습니다. 당시 대응을 통해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언론중재위에 또다시 가야하는 상황이 되자 이와 같은 제도가 도대체 누구를 지키기 위함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언론에 의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존재합니다. 다만 그보다 훨씬 많이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와 같은 제도를 이용합니다. 언론에 이름이 나가는 건 대부분 사회의 명망가나 가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러한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의 조력을 구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제도라고 이야기 되지만, 정작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지키려고 하는 건 자기 재산과 이득인 경우가 많습니다.

속상하고 화가 났던 건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시점에, 그 병원에서 나왔던 에이즈 환자분이 홀로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양병원의 인권침해와 폭력으로 인해 그곳에 있던 환자분 중 일부는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또 다른 환자들은 병원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새로운 요양병원을 찾지도, 많은 활동가와 당사자가 요구하는 국가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을 만들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었고, 그렇게 이 사건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가운데 결국 환자 한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론중재위에 입장을 이야기하러 출석한 날 그 병원의 원장이 변호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답니다. (제가 너무 멀리 앉아서 몰랐습니다.) 집에 오니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도리어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떠올라 너무 화가 났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 늘어나는 상황이 계속 생겨나는 것에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언론중재위 출석 이후 어제 중재불성립이 결정이 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피해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을 사회에 알려내는 게 인권활동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한 달 남은 인권오름 편집인의 자리이지만, 1년 동안 인권오름 편집을 하며 그것만은 제대로 배운 것 같습니다.(물론 맞춤법도 배웠습니다. 한글 어렵네요;;) 올 한해 또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작년 한 해 배운 그것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