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
교실...은 좀 어려운 것 같다.
대부분 교실은 나에게 좋은 기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의 강의실은 자유로웠으며 교실과 강의실의 다름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언제나 나는 자유로운 교실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정말 기대로만 머물러 있다. 다시는 그런 '교실'로 가기는 어려울것 같고 가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 회사는 내 과거의 교실과 비슷하기에 나는 가끔 안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자유로운 공간이 있기는 한걸까...............?
정록
대학 강의실을 교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강의실은 항상 불편한 곳이었다. 왠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함. 주변의 시선까지. 아주 나중에야 재밌는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서 정체모를 불편함이 사라졌다. 교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사람이 문제지
바람소리
처음 단원고 기억교실을 가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그 따뜻함에도 먹먹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장소를 만든는 건 사람들의 오간 자리가 아닐까.
승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 혼자 교실을 찾아 들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동안 엄마랑 같이 교실을 찾아들어 갔던 것 같다. 2학년 올라가서야 교실을 찾아 들어가는 것에 적응을 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몇 번의 반복 후에 교실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디요
교실의 전제는 학교다. 어떤 네모 반듯한 공간이 교실이라고 불리려면 학교 안에 있어야만 한다. 그런 학교의 이미지 때문에 교실은 권위적, 배타적인 공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때 다른 반 친구들을 만나러 교실에 들어가면 그 반 담임선생님이 쫓아냈고, 중고등학교 때도 교실은 정해진 시간에만 출입할 수 있었다. 언제나 교실은 나의 공간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도 나보다 낮은 학년의 교실은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고 주말에만 축구를 하러 학교에 오던 어떤 이가 교실에는 왜 들어가지 않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미류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을 떠올리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다. 일제 시대에 한글을 배웠던 교실 같달까. 교실 두 개가 건물의 전부였던, 바닥은 널찍한 나무 마루가 닳고 닳아 윤이 나기도 하던 곳. 언제 지어진 건물인지 알 수 없지만, 평화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며 운동장에 모두 모여서 집회(?)를 하던 기억(이건 5학년 때인데 ㅡ.ㅡ)까지 겹치면서 뭔가 내가 겪었던 시간이 아닌 역사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온 기억처럼, 그 교실이 잊히질 않는다. 그게 내 역사이기도 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