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지금 위기상황에 있다. 교육개혁안이 세 차례나 발표되어도 학교 현장에 개혁다운 개혁은 찾을 길 없다. 보충·자율 학습은 더 강화되고, 학력간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교육개혁에서 '신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으로 제시한 "더불어 사는 인간, 슬기로운 인간, 열린 인간, 일하는 인간"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로 떨어지고 있다. 수백억원을 들여 교육개혁박람회를 연다고 개혁의 실종이 가려질 일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 있는 우리는 정작 세 차례나 개혁안이 준비되는 동안 공청회 한 번 참가할 기회가 없었으며, 설문에 한 번 응해 본 적도 없다. 학생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사는 동참은커녕 늘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려왔다. 학교 현실에 근거하지 못한 채 위에서 마련된 개혁안은 이미 현장을 바꿀 수 없고 교육계의 수구적인 입김에 의해 다시 왜곡되거나 실종되었다. 교사들이 하나로 나서 우리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실천할 때만이 오늘의 교육을 바꿀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대통령은 노사개혁을 교육개혁과 함께 '국가의 핵심 전략'이며, '구국 운동'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국민이 뽑은 '교육대통령'의 약속을 진실로 믿고 싶다. 이른바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산업화 시대 그 이전의 봉건적인 논리를 들이대며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사의 90.3%가, 노동법학자의 92.7%가, 국회의원의 83.3%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원의 노동기본권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확인되지도 않은 국민 정서를 앞세워 이를 더 이상 왜곡해서는 안된다.
지난 7월 노사개혁위원회는 개혁의 기본방향을 보고하면서 '국제적 노동기준과 관행의 존중'을 중요한 원칙의 하나로 밝혔다.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집행이사회에 들어간 ILO에서 4차례나,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이 된 UN의 사회권위원회에서, 가입 예정으로 있는 OECD에서 사회적 인권차원으로 즉각 보장할 것을 누차 촉구해 왔다. 세계화 시대에 더 이상 국제적인 보편규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른바 문민시대에 53년 노동법이 제정될 때 이미 보장되었다가 5·16 군사쿠데타로 금지되었고 89년 여소야대시절 국회에서 통과되었다가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거부된 교사들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시키는 일은 너무도 마땅한 역사바로세우기이다.
노동은 새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성스런 전문직 교육 노동자로 창의적인 인간을 키우는 교육개혁에 나서고자 한다. 교원의 노동조합이 아닌 그 어떤 단체로도 교육개혁을 할 수 없음은 반 백년의 한국교총 역사에 의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따라서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모르쇠 하는 일은 교육개혁의 부정이며, 노사개혁이 개혁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뢰받는 국민의 교사로 아이들의 꿈과 겨레의 미래를 보듬어 키우고 싶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학교 현장에 교육개혁을 뿌리내리는 민족사적 과업에 방관자가 아닌 당당한 주인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오늘 우리의 목소리를 묶어 널리 알린다.
1996년 9월
올바른 교육개혁과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국교사 일동
- 729호
- 1996-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