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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월담 임금교실에 함께하면 월급날이 달라집니다.”

위에 제목은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에서 공단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임금교실을 홍보하는 멘트입니다. 저희가 정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문구입니다. 약간 모호하지만, 중의적인 말들이 상상력을 자극해서 그런 것 같아요. 가령, 정해진 날에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지도 못하는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월급날이 달라진다는 뜻이 어떻게 들릴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 임금체불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그동안 밀린 임금을 받게 됐을 때 느낌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하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임금교실을 함께하며 각자가 받는 노동력의 대가로서 ‘임금’, 그 임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만큼 월급날은 충분히 그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죠.

제 이야기가 너무 순진해 보이시나요? 하긴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광장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는 노래를 다 같이 부르지만, 여전히 공단에서 대한민국은 그저 임금체불 공화국에 불과하니까요. 2014년 임금채불액은 1조3천억을 넘겼다고 합니다. 이 규모는 일본의 10배는 된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90%는 3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즉 대부분 영세업체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죠.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체불이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설마 대기업 사장님들이 마음씨가 곱고 영세업체 사장님들은 나빠서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대기업이 경제가 어렵다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며 만만한 하청업체와 그곳의 노동자들을 쥐어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그 하청업체 사장님은 다시 그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작용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당연하게 영세업체 사장님들은 ‘월급’ 이야기만 나오면 길길이 날뜁니다. 딱히 더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차피 모두가 모두를 쥐어짜는 마당에 본인만 노동자 생각하는 좋은 사장이 되기란 성인군자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공단에서 선전전을 하거나 상담을 하다 보면 공단 노동자들 중에서 임금과 관련된 내용을 저희보다 더 잘 알고 계신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영세업체 노동자라고 몰라서가 아니라 ‘어차피 우리 사장은 원청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말할 것도 없고 싸울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지난 임금교실에 참여한 분들 중에서는 지금이야 일요일은 유급휴일이고 회사가 물량이 없다고 휴업을 하면 수당을 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파견직으로 시작해서 일당제로 임금을 받고 휴업을 하거나 쉬는 날 돈이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당연함이 누구의 입장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노동자분들 중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를 두고 지금 당장 6000원도 힘들게 주는 마당에 1만 원은 과도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런데 월급으로 환산하면 겨우 200만 원이 넘는 209만 원이 됩니다. 사장 입장에서 갑자기 월급을 올려주려면 당연히 힘들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월화수목금 8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면 월급 200만 원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노동자한테만 악다구니를 쓰면서 월급 하나, 수당 하나를 제대로 지급 못 하는 사장의 사정 더 이상 궁금하지 않습니다. 월담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이 한 번쯤은 겪었던 임금의 문제가 사실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겪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제가 앞서 말했던 월급날이 달라지는 상상이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일이 될 테니까요. ‘임금에 대한 권리’는 옳고 당연하지만, 지금은 멀게 느껴지는 이상한 주장을 진짜 일터의 현실로 만들기 위한 외침임을 월담 임금교실에서 앞으로도 함께 나누는 과정이 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