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록
아무래도 요즘 버틴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박근혜를 보면서 한 가지 배우긴 하는 것 같다. 버틴다는 것은 어떤 이유나 근거도 없이 일단 버틴다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다른 국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
미류
버틴다는 말에 마음이 잘 달라붙지 않는다. 버티는 것도 능력이긴 한데 버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 작년에 요가를 배우면서 까마귀 자세를 알게 됐다. 적어도 버티는 게 힘써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됐다.
바람소리
체력적으로 버티기를 잘한다. 중고등학교때 운동도 순발력이나 근력, 운동신경을 요하는 것들은 못했다. 잘하는 것은 하나, 바로 오래달리기였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버티기를 못한다. 굳이 왜 버텨?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성격이 급해서일지도 모른다. 박근혜를 보면 버티기는 가진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인가 싶다.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버티기는 무엇일까? 그것이 생을 겨우겨우 유지하는 것이라면 버티기라기보다는 안간힘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절벽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는 것 말이다.
ㅎㅊ
사무실 의자에 잘 앉어 있는 것,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들은 다 버티는 것의 일종이다. 내가 이걸 참 잘 못한다는 걸 보면 난 버티는 건 잘 안맞나 보다. 근데 나 오래달리기는 정말 잘했는데.... 버티기를 못한 게 아니라 글쓰기랑 책읽기를 잘 못하는 건가;;
디요
버티기 하면 딱 생각나는 장면은 수원에서 평택까지 자전거를 타고 쌍용자동차 공장까지 가던 순간이 떠오른다. 2015년 3월 당시 고공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체력에 자신은 없었지만, 자전거야 워낙 청소년 시기에 많이 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타다 보니 웬걸? 평택 시내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발도 마음처럼 안 굴러가고 속도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가도가도 안 나오는 쌍용자동차 공장을 원망하며 결국 버티기를 중단하고 자전거에 내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준비팀에서 내 자전거를 트럭에 실어줄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뭐 지하고 쳐다보니 차 안에 있던 분이 손가락으로 앞으로 보라고 가리켰다. 그제서야 헉헉거리던 숨을 가다듬고 앞을 보니 어둑해진 하늘 사이로 쌍용자동차 간판과 굴뚝이 보였다. 결국, 난 다시 자전거에 탔고 버티고 버텨 꼴등으로 완주한 사람이 되었다. 그때처럼 뭔가를 버텨냈던 순간이 뿌듯함으로 남는 그런 감각이 다시 찾아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