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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노란리본인권모임을 시작하며

목포역에서 택시를 탔다. “세월호 보러 오셨어요?” 기사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세월호 보러’라는 말에 내가 구경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목포신항 인근은 도로 통제를 하고 있었다. 바다를 매립한 땅이 휑하게 펼쳐진 길을 따라 걸었다. ‘세월호 보러’ 다녀가는 사람들도 많은 듯했다. 누군가의 손에 쑥이 한 움큼 들려 있는 걸 보니 씁쓸했다. 팽목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목포신항 주위로는 철망이 쳐져 있다. 목포대교를 건널 즈음부터 멀리서 뿌옇게 보이던 세월호는 철망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뿌옇게, 그러나 현실적으로 누워있었다. 바닥을 내보인 세월호에서 고통의 밑바닥도 보이는 것 같았다. 세월호가 반잠수선에 선적된 때부터 펄을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유해가 발견되었으나 동물의 뼈라고 했다. 애타게 기다린 희생자들의 유품에 앞서 이준석의 여권이 먼저 발견되었다. 모든 것들이 뒤섞인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우리 앞에 누워 있다.

 

수습-조사-보존을 위한 인양

 

3월 22일경부터 준비 작업을 마친 세월호 인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31일 오후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오고, 박근혜가 구속된 금요일에 세월호가 돌아왔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필연 같고 필연이라기엔 억울함이 북받쳐서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이렇게 될 일이 이토록 오래 걸리다니. 그러나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인양을 늦추고 집요하게 진상규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파면된 지금도 정부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양은 수습과 조사와 보존을 위한 과정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던 정부의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듯하다. 해수부가 작년에 선체를 절단하겠다고 발표한 후 절단 계획의 문제점과 우려가 지적되어 왔으나 다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미수습자를 수습하겠다는 말을 하지만 뒤져보겠다는 말 외에 계획이 없다. 보존도 마찬가지로 계획이 없다. 이러자고 온 국민이 세월호 인양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양의 과정에 피해자 가족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1일 전국의 64개 인권단체들이 “세월호 인양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 인권 보장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양은 피해자 가족의 권리 보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참사의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신체의 훼손이 덜하도록, 최대한 존엄이 유지된 상태로 가족에게 인도될 권리가 있고 피해자 가족 역시 국가에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수습뿐만 아니라 진실에 대한 권리를 위해 선체조사도 충실히 진행되어야 한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이상 선체는 이미 유해발굴 현장이고 증거조사 대상이다. 수습과 조사의 기본원칙을 마련하고 인양 과정 전반에서 피해자 가족의 정보 접근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목포시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천막 안에서 모포를 덮고 바닷바람을 피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세월호 투쟁의 두 번째 국면

 

작년 가을 특조위가 해산되면서 세월호 투쟁의 한 국면이 마감되었다. 박근혜 퇴진의 촛불과 함께 시작된 세월호 투쟁의 두 번째 국면은 인양-수습-조사-보존을 당면한 과제로 맞고 있다. 연말이 되기 전 2기 특조위를 세우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피해자지원특별법에 따른 4.16재단이 내실 있게 설립되도록 하는 과제도 있다. 안산에서는 4.16안전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는 진실을 보존하고 안전을 만들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현안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지만 더욱 긴 호흡도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다른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도 잊지 말아야 할 3주기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이런 고민 속에서 ‘노란리본인권모임’을 만들었다. 세월호 투쟁의 두 번째 국면은 참사 이후의 사회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국면이다.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안들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 바꿔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참사 이후의 사회를 그려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현안도 마찬가지다. 1기 특조위 청문회 등을 통해 해경 지휘부가 적절한 퇴선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은 밝혀졌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을 배의 바깥쪽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은 해난 사고 대응의 기본이다. 현장에 있던 해경 123정장뿐만 아니라 구조 활동에 책임을 져야 할 지휘부 역시 승객들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처를 지시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해경 지휘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국회에 특검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국회도 추진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을 파면 사유에서 제외한 것도 다르지 않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책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국제인권규범이 인권의 실현을 위한 의무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인권을 내팽개친 국가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구조적 책임을 물을 구체적 방안

 

세월호 참사는 단선적 인과관계로 책임을 규명하기에 너무나 광범위한 책임이 연루된 참사다. 이러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은 국가를 바꾸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노란리본인권모임은 ‘구조적 책임을 물을 구체적 방안’을 탐구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길에 함께 하려고 한다. 일차적으로는 해경 지휘부를 비롯해 인명 구조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담론을 만들고 활동을 벌여갈 것이다.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에 대한 국가 의무 담론도 살피고 기존의 재난참사 경험도 되짚어보며 구체적인 과제를 찾아가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되짚어볼 때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진실, 안전, 기억, 추모, 치유, 지원 등 하나하나가 한국사회에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참사 이후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이 만들어온 새로운 사회의 씨앗들을 놓치지 말고 하나하나 천천히 짚어가려고 한다. 올해의 활동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아직은 막연하지만 내년에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되길 바라며, 세 번째 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