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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어쩔 수 없는 죽음은 없기에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나눈 고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시작한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지금까지 10차례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함께 해왔어요.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박근혜 정부는 무능과 거짓, 배신만을 반복해왔습니다. 공적인 권력을 철저히 사유화했던 지난 정부들의 부정부패와 온갖 공작 사실을 연일 뉴스로 접하면서 “이게 나라냐”던 외침이 탄식으로 계속 나오는 요즘입니다. 헌법을 개정하면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는 것도 이야기되고 있다는데, 법조문 안에 갇혀있을 뿐 현실에서는 멀기만 한 우리의 권리들이 개헌이 된다고 얼마나 보장될 수 있을까 별 기대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가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보자는 것이 노란리본인권모임의 목표였어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면서 우연히 발생한, 어쩔 수 없었던 사고에 왜 국가 책임을 묻냐는 말도 많았습니다. 책 <재난을 묻다>와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에서 소개된 국내외 사례들을 보면서 사고가 발생된 직접 원인도 있지만, 사고의 피해를 키운 것은 다양한 간접 원인들이 얽히고 쌓이면서였습니다. 사고 이전, 사고 당시, 사고 이후로 나누어 볼 때 퉁쳐지거나 빠져나간 것들이 더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더라고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밝히는

 

얼마 전에는 함께 유럽인권재판소의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국가의 적극적 보호 의무에 대해 면밀하게 따지는 판례들을 보면서,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국가라면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을 정말 아무 것도 안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침몰이 아니다, 사고를 참사로 만든 것은 국가(국가의 부재)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국가의 의무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하는데,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가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유럽인권협약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인권재판소는 생명권(협약 제2조)을 중심으로 국가의 적극적 보호 의무를 적용하는데, 점점 다른 조문으로까지 확장하여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의 의무를 실체적 의무-절차적 의무, 국가와 개인 간 관계에서의 국가의 의무-개인 간 관계를 조정해야 할 국가의 의무, 국가가 입법이나 행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의무-일회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의무 등 다양하게 유형화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여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면밀하게 따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볼게요.

 

러시아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정부는 산사태 발생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 마련도 안하고 이를 위한 예산 편성도 안하고, 관측소 설치 등 경고 시스템 마련도 안했다. 주민 안전에 문제가 있을 게 충분히 예견되는데도 예방조치와 응급구호조치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국가의 안전보장의무에서 실체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산사태 발생 이후 관련 기관의 형사적․행정적․기술적 책임을 묻는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배상을 요구하며 청구한 사건이 법원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국가의 안전보장의무에서 절차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자연재해, 환경오염과 공해, 건강 및 의료, 폭력 등 생명과 안전이 위협된 다양한 상황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어야 했고, 해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짚더라고요. ▲위험에 대해 알았거나 알았어야 했을 때 어떤 보호조치를 취했나? ▲대중이 객관적 정보를 전달받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했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했나? ▲사고 발생 후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나?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가 이루어졌나? ▲실효적인 사법체계를 운영했나? 등등 여러 사례 속에서 반복적으로 던져진 질문들을 통해 국가의 적극적 보호 의무가 무엇인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밝히는

 

박근혜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생명은 기본권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포괄적 의무가 있는데, 세월호 참사로 많은 국민이 사망했고 대응조치가 미흡하고 부적절했지만, 그렇다고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뭐라도 했으니가 아니라 적절하고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의무 위반임을, 자신의 임무만 했거나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무 위반임을, 몰랐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알았어야 하는 걸 몰랐다는 그 자체가 의무 위반임을 세월호 참사와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들을 연결지어보면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강렬하게 남은 건 ‘어쩔 수 없는 죽음은 없다’는 거였어요. 당연한 그 말이 낯설어진 현실에서 더는 낯선 말이 아닐 때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박제화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권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는 지금까지 고민 나눴던 것들을 정리하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더 벼리면서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쯤 소책자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싸움을 함께 해온 분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면서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10월 14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모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박근혜 정부에서 강제종료된 세월호 특조위에 이어 2기 조사활동을 착수할 사회적 참사 특조위의 설립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상규명의 과제가 많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 함께 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노란리본인권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막막하기도 하고 어려운데요,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새겨가는 시간으로 막막하고 어려운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해나가려고 해요. 깊어가는 가을만큼 우리의 고민도 더 무르익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두 번째 시간이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밝히는 우리 모두의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