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 내년 4월이 되면 참사가 일어난 지 5주기다. 숫자로 읽히는 세월의 무게가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요즘이다.
이렇다 할 진상규명이 없는 상황 속에서 이른바 ‘촛불혁명’을 거치며 교체된 새로운 정부에 의한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는 부쩍 높아진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정권 교체 전에 비해 저조해진 듯하다. 참사 4주기 추모 행사에서 안산 체육관에 설치된 분향소는 공식적으로 철수되었고, 9월에는 동거차도 선체 인양 감시초소와 팽목항 분향소가 정리되었다. 최근에는 광화문 광장의 분향소와 그 주변의 기억공간들에 대한 리모델링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고 지켜져 왔던 공간들은 하나씩 둘씩 없어지고 축소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아직 참사의 원인은 밝혀진 게 없는데 ‘벌써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이 생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노란리본인권모임은 재난 참사 시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살펴보고, 정치권 안팎에서 이야기되는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재난조사위원회 설치 논의를 두 차례의 워크숍에 걸쳐 진행해 보았다.
재난 참사 시 피해자가 박탈되는 권리, 반복되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워크숍은 한국에서 일어난 재난 참사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상황을 권리의 언어로 만드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참사의 국면을 세 가지 1) 직접적인 위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 2) 의문을 제기하고 싸우는 시기 3) 치유와 회복의 시기로 나누었고,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한국형 재난 참사에서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참사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어온 바 있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직접적인 위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던 권리로, 위험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을 권리, 현장을 보존받을 권리, 끝까지 구조받을 권리, 모여서 말할 권리,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구조 과정에 대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피해자의 행방을 알 권리 등이 이야기되었다. 워크숍에 모인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가 전파되었던 기억과 진도 체육관에 모인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라고 절규해야만 했던 시간들, 피해자들의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았던 공간들, 경쟁적으로 참사의 현장을 다루지만 오보를 퍼트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언론의 모습들 등 참사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박제된 기억처럼 당시의 장면들이 워크숍 공간을 둥둥 떠다녔다.
두 번째 국면인 의문을 제기하고 싸우는 시기에 공통적으로 언급된 권리들을 국가전복 세력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진실을 찾는 주체로 인정받을 권리, 비난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었다. 이러한 권리들은 그간 한국형 재난 참사에서 피해자를 겪은 혐오와 낙인 더 나아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상황을 목도한데 대한 일종의 분노의 토로였다. 참사의 원인이 사회 시스템의 붕괴 내지는 실패로 이해되고 피해의 원상복귀를 위해 전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감각이 살아나야 한다고 워크숍에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촛불 집회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던 차에 이날 워크숍은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을 때, 피해자의 모습은 하나의 모습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일이 국가전복 세력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전복 세력이 되겠노라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의 시기에 필요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특성에 맞는 섬세한 지원이 필요한데, 특히 의료지원과 같은 경우 생애주기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과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참사이니 만큼 피해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피력되었다.
왜 한국에서 일어나는 참사의 피해 양상은 이토록 반복적일까? 또한 진상규명은 왜 이렇게 더딘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국회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주요 내용인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재난조사기구의 설치가 위 두 개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까?
법안에 따르면 해당 조사기구는 국회의장 산하에 두며 재난 발생 시 전문성 있고, 책임 있는 조사 및 연구와 재난 대응태세를 점검하는 역할을 수임하게 된다. 현재 부처별로 22개의 사고조사기구가 있고, 이 중 상설 조사기구로는 국토부 항공 철도 사고조사위원회와 해양수산부 해양안전심판원 등 두 곳이 전부이다. 나머지 기구들은 비상 설기 구들인 셈이다.
피해자의 비빌 언덕 같은 상설독립조사기구를 상상하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때로는 노숙을 하고, 때로는 공권력과 몸 부딪혀 싸워 특별법을 만들어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상설적이고도 독립적인 재난 참사에 관한 조사기구가 있다면, 사고가 발생한 즉시 해당 기구를 떠올리며 적어도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할지 막막해하진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상설기구의 그 첫 번째 기능은 무엇보다 피해자가 혼돈 속에 지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제일 처음 만나는 기관으로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일 처음 듣는 귀’로서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그런 기관 말이다.
한편 재난조사기구가 사고 조사 이후 책임자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궁극의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수의 의견이 피력되었다. 사법적 처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진상규명이 곧 책임자의 사법처벌만으로 국한될 때 사회 정의를 세우고 변화를 꾀하는 일이 사법처벌로만 이해되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또 한축으로 여전히 책임자 처벌은 중요한 화두였다. 늘 책임의 말단에 있는 사람이 처벌을 받는데 그쳤던 참사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비처벌의 역사는 높은 직책에 오른 사람에게 더 높은 책임을 부과하기보다는 더 높은 면책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해온 역사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참사의 발생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된다. 이미 사회와 제도에 대한 불신은 팽배해있다. 한국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적 정보의 정확성을 믿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고, 구조하지 않는 국가를 경험했다. 이토록 심각한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에게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가 발족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많은 위원회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현존하는 기구들에 대한 정비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국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 이전에 해당 기구가 아무리 전문성을 갖추고 재난 참사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재난을 예방할 것이라고 말한들 곧이 들릴 리 없다. 그리고 이 신뢰를 회복하기에 가장 유효한 방법은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끊임없이 추구되고 밝혀져야 한다.
최근 세월호 참사 2기 특별조사위원회는 그 인적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하는 듯하다. 선체조사위원회가 침몰 원인에 대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리기보다 내인설과 열린설이라는 두 개의 큰 가능성을 제기하는 서로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1기 특조위는 여러 정치, 사회적 악조건 속에서 결과보고서 조차 작성하지 못했다. 새롭게 출범한 2기 특조위는 한 축으로 앞선 두 개의 조사 줄기를 붙들고 또 다른 한 축으로 아직 밝히지 못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해야 하는 조건에 놓인 상황이다. 다시금 상상해본다. 수많은 참사 이전에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어디까지 왔을까. 어떤 확신도 할 수 없지만 마냥 비관하고 싶지도 않다. 속는 셈 쳐야 하는 신생 기구의 탄생은 원하지 않는다. 부디 수많은 무책임과 진실규명 없는 참사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